거품 꺼지기 전 합병 강행…‘공매도 중단’이 지배주주에겐 기회?
적정 가치 찾는 순기능 실종…주가 뻥튀기, 합병 기회 활용 가능성
‘알짜’ 밥캣보다 ‘적자’ 로보틱스 고평가…밥캣 주주 “뒤통수 맞아”
9조7600억원(두산밥캣) vs 530억원(두산로보틱스).
매출 격차가 184배에 달하는 두 기업의 합병안을 놓고 소액주주들의 반발이 거세다. 저평가된 ‘알짜기업’ 밥캣과 고평가된 로보틱스의 기업가치가 주가에 기반해 비교되면서 오히려 로보틱스에 유리하게 합병이 추진된 데 따른 것이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공매도 금지 조치로 주가의 과도한 거품을 꺼뜨리는 기능이 작동하지 않아 로보틱스 주가가 뻥튀기됐고, 이를 틈타 지배주주가 합병을 밀어붙였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지난 11일 두산그룹은 두산에너빌리티의 종속회사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의 흡수합병 계획을 발표했다. 에너빌리티의 밥캣 지분을 인적분할해 로보틱스와 합병하고, 나머지 밥캣 지분의 포괄 주식 교환 방식을 통해 밥캣을 로보틱스의 완전 자회사로 만드는 것이 골자다.
자본시장법상 상장법인 간의 합병은 두 회사의 주가를 기반으로 기업가치를 평가해 합병 비율을 정한다. 구체적으론 최근 1개월과 일주일 평균 종가, 최근일 종가 평균값이 쓰인다. 두산 지주사가 68.2%를 가진 로보틱스 주가가 높은 시점을 선택해 합병을 실행하면, 지배주주가 이득을 보는 구조다.
합병 시점, 로보틱스 시가총액 규모가 기업가치를 제대로 반영했는지는 불명확하다. 일각에선 로보틱스가 로봇 테마주를 타고 주가가 뻥튀기됐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공모가 2만6000원에 상장한 로보틱스의 주가는 상장 2개월 만에 12만4500원까지 올랐다. 이후 폭등과 폭락을 수차례 넘나들다 현재는 8만원대에서 등락하고 있다. 김우찬 고려대 교수는 “누구는 테마주라 말하고, 누구는 로보틱스의 협동로봇 사업을 들어 흑자전환을 예상하고 있어 시총에 대한 평가 자체가 어렵다”고 말했다.
기업가치를 주가로 평가하는 문제는 언제나 고평가·저평가 논란이 따를 수 있는데, 이번에는 공매도까지 중단돼 시가총액을 신뢰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정부는 불법 무차입 공매도가 시장의 공정한 가격 형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며 지난해 말부터 공매도를 금지했다. 공매도는 주가 하락을 예상하고 주식을 빌려 판 뒤 낮은 가격에 다시 사서 이익을 얻는 투자기법이다. 주가 하락 시 수익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장의 과열을 막고 가격 거품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다. 로보틱스에 낀 거품이 공매도 중단으로 빠지지 않고 고평가됐을 가능성이 있고, 지배주주가 이 기회를 활용해 합병을 밀어붙였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지난해 보고서에서 “공매도 전면금지 이후 가격효율성이 저하되고, 변동성과 극단 수익률 발생 빈도가 증가”했다고 밝혔다.
두산이 이 같은 합병을 단행한 데에는 금융당국의 인수·합병 제도 개선과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를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은 것도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합병으로 밥캣 소액주주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알짜 기업인 밥캣을 보고 투자한 주주들은 이사회의 결정으로 하루 만에 고평가 논란에 휩싸인 로보틱스 주식을 받아들거나 현금만 받고 나가야 될 상황이 됐다. 두산은 로보틱스와 밥캣의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한 전략적 결정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지배주주와 소액주주의 이해가 상충될 수 있는 사안을 이사회가 강행하면서 밥캣 지분의 45.32%를 보유한 주주들은 뒤통수를 맞았다며 분개하고 있다. 당장 ‘쪼개기 상장’을 시작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주주권을 침해하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에도 국내 증시에 대한 장기투자 의욕을 저해하고 있다는 비난이 제기된다.
김경민·윤지원 기자 kim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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