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초 1주기' 장대비 속 전국서 모인 교사들… 서울 곳곳서 추모 행렬
행진·전시회·토론회… 다양한 방식 추모
"무너진 교권 회복, 공교육 정상화해야"
검은 점들의 모임이었던 교사들은 지난 1년 동안 검게 일렁이는 파도가 됐습니다.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순직 1주기를 맞아 이 학교 앞에서 시작된 추모 행진에 참여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교권 추락 문제가 발생하면 이전에는 교사 개인이나 작은 조직 단위로 대응했으나 서이초 사건 이후 한데 뭉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이날 서울 곳곳에서 열린 추모행사의 참석자들은 한목소리로 "교권 보호로 공교육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1년 지났지만 교권 회복 여전히 먼 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 교사유가족협의회는 이날 오전 서이초에서 국회까지 7.18㎞(교사 사망일을 뜻하는 숫자) '추모걷기' 행사를 진행했다. 세찬 빗줄기에도 참가자 100여 명(주최 측 추산)은 결연한 표정으로 검은 우비와 모자를 쓴 채 한 손엔 흰 국화꽃을 들고 행진에 나섰다. 서초경찰서 앞에 선 이들은 '악성민원은 엄중 처벌하라' '억울한 교사 죽음 부실수사 규탄한다' 등의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순직 교사를 괴롭혔단 의혹을 받은 학부모에 대해 폭언·협박 정황은 없다며 지난해 말 사건을 내사(입건 전 조사) 종결한 서초서에 대한 유감의 표시다.
행진에 참여한 교사들은 서이초 교사 순직 1년이 지났지만 학교 현장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까지 고교 교사로 재직하다 현재 휴직 중인 이모(35)씨는 "이제껏 수많은 교사들이 집회를 했는데도 민원 공포와 과중한 행정업무 등 달라진 게 없다"며 "변하지 않는 학교 행정에 분노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행진에 참여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01년도부터 교직생활을 한 A씨 역시 민원 스트레스로 휴직을 낸 뒤 추모에 동참했다. 그는 "밤 10시 이후에 민원 전화를 받았고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학부모로부터 '애미, 애비도 없는 X'이란 말도 들어봤다"고 털어놨다.
추모 행렬을 지켜본 시민들도 공감했다. 채동수(67)씨는 "친한 지인 중에 초등 교사가 있어서 서이초 사건이 터졌을 때 남 일 같지가 않았다"며 "시대가 바뀌면서 교권을 침해하는 일들이 많이 벌어져 안타깝고 전반적인 시스템을 고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모(55)씨는 "제가 초등학생 아이들을 키울 때만 해도 선생님을 어려워하는 분위기였는데 요새는 학부모들이 자기 자신들만 생각하는 것 같다"며 "교사들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집중을 할 수가 없는 교육 현실에 화가 난다"고 씁쓸해했다.
전시회·정책토론회 추모 이어져
오후에도 곳곳에서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초등교사노조는 고인이 졸업한 대학교인 서울교대에 위치한 SAM 미술관에서 오후 3시부터 추모 전시회를 열었다.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의 배경과 경과, 교육계에 미친 여파 등을 보여주는 사진이 전시됐다. 또 고인이 재직 당시 교실 옆 빈 공간에 직접 만들어 운영했던 '마음 해결소'를 만들었는데 이 공간을 고인에게 전하는 말이 담긴 포스트잇이 가득 채웠다.
서울교사노조와 서울교대 7·18 교권회복연구센터도 오후 4시 서울교대에서 '선생님의 안부를 묻습니다'를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초등학교 교사의 직무 스트레스와 소진을 막기 위한 방안에 대한 연구 결과와, 서울시민 및 서울 교사의 여론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발제자로 나선 장대진 서울교사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지난달 서울시에 재직 중인 교사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 교사 10명 중 7명이 교직을 수행하면서 가장 힘든 관계로 '학부모와의 관계'를 꼽았다"면서 "이들 대부분은 여성이며 사회적 경험이 적은 저연령 교사로 드러나 당국의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늦은 오후 서이초 운동장에서는 헌화 행사가 진행됐다. 수업을 마치고 온 교사들은 '선생님을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 앞에 흰 국화꽃을 놓고 눈물을 훔쳤다. 현장에 방문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교사들의 정당한 훈육 활동을 아동학대로 신고하는 학부모의 민원과 소송전이 이어지고 있다"며 "교사들의 교육활동을 보호할 수 있는 아동학대 처벌법 상 단서 조항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세운 기자 cloud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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