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가 된 부모님 육신에서 진정한 아름다움 찾았죠”
세계적인 영상작가 빌 비올라(1951~2024)가 지난 12일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 자택에서 73살 나이로 별세했다. 필자는 과거에 그와 전시를 통해 소중한 인연을 맺었다. 그 계기는 2020년 10월31일, 관장으로 재직하던 부산시립미술관의 본관과 이우환 공간에서 ‘이우환과 친구들’ 전시 시리즈의 하나로 시작한 ‘빌 비올라 : 조우’란 제목의 개인전이었다.
이듬해 4월4일까지 열린 이 전시회는 전 세계가 코로나로 인해 팬데믹 상황을 겪는 가운데 치러졌다. 이 시기 작가는 이미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은 상태였기에, 미술관은 그의 배우자인 키라 페로프와 원격으로 소통하며 전시를 기획해야 했다. 이러한 이유로 인연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민망하기도 하지만 감동적인 영상 작품으로 어려운 시기에 한국 관객들에게 위안을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고자 이 글을 쓴다.
‘빌 비올라 : 조우’전에서 작가는 자신이 평생 화두로 삼아온 삶과 죽음, 존재와 부재, 물질과 정신의 문제를 다루었다. 하지만, 그것을 서구 중심의 이원론적 방식으로 다루기보다는 탄생과 소멸, 죽음 이후의 세계를 문지방을 넘나들 듯 경계를 횡단하며 그려냄으로써, 삶과 죽음의 본질적 문제에 집중하고 순환으로 이어지는 체계를 제시했다.
지난 12일 캘리포니아 자택에서 별세
4년 전 부산시립미술관 전시 때 인연
‘삶과 죽음, 존재와 부재’ 평생 화두
생과 사 가로지르는 순환 체계 제시
죽음을 다른 세계로의 항해로 해석한
영상 ‘우리는 날마다 나아간다’ 큰 울림
이러한 세계관은 그가 여섯 살 때 호수에 빠져 생과 사의 경계를 오가면서 겪었던, 호수 물 속의 푸른색과 초록색이 만들어낸 환상적이면서도 신비한 이미지 체험과 1980년대 초반 일본에서 만나게 된 불교의 세계관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작가가 삶과 죽음을 이원론적으로 보지 않게 된 직접적 계기는 부모님의 임종을 통해서였다.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며 엄청난 상실의 고통과 슬픔을 느끼는 와중에도 망자가 된 부모의 몸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미와 추가 동전의 양면인 것처럼, 삶과 죽음 역시 그러함을 깨닫게 된 것이다.
작가는 이런 경험들로 인해 죽음이 비극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이며 영속적 과정에 놓인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는 이후, 특유의 영상언어를 통해 인간의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여정과 수난을 그리면서 그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건네는 작품들을 제작했다.
빌 비올라의 작품은 삶과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죽음 이후의 세계가 상실이나 아픔이 아닌 또 다른 순환으로 이어짐을 드러내고, 그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세계를 엿볼 수 있는 문을 열어놓았다. 신비로움과 감동으로 다가오는 그의 작품들이 드러내는 주제의식은 코로나로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가 눈앞에 가시화 되어 있던 시절, 한국의 많은 관객들에게 삶을 반추하며 버틸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어 주었다.
특히, 팬데믹 상황을 겪는 관객들에게 많은 울림을 주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작품이 ‘우리는 날마다 나아간다’(2002)였다. 탄생, 개인과 사회, 삶과 고통, 죽음과 부활의 다섯 부분으로 구성된 이 영상물은 삶과 죽음 앞의 인간존재를 다룬다. 이 중 노인의 죽음과 그 뒤 이어지는, 정리한 짐을 배에 싣고 떠나는 장면들이 특히 인상적이다. 죽음을 의미함에도 불구하고 슬픔으로 다가오기보다 담담하게 하나의 세계를 정리하고 다른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으로 그려지며, 이러한 여정은 부활로 연결된다.
올초 일본 도쿄 인근 가마쿠라에 가서 영화 ‘도쿄 이야기’의 감독 오즈 야스지로(1903~1963)의 무덤을 찾았다. 통상적인 묘비와는 달리 그의 묘비는 “無(무)” 한 글자만 새겨놓았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떠남과 만남, 지나간 시간과 다가올 미래, 삶과 죽음 등을 다루었던 감독의 작품과 묘비명 ‘無’를 연결한 해석은 여전히 분분하다. 떠나는 감독이 ‘無’를 이야기했음에도 역설적으로 그것이 화두가 되어 다시 작품을 살피게 한다. 그런 맥락에서 어쩌면 ‘無’는 감독이 세상에 보낸 마지막 메시지라 할 수 있다.
오랜 기간 알츠하이머로 고생한 빌 비올라가 어떤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작품을 통해 인간의 삶과 죽음이 순환하는 체계를 영상의 이야기로 전달하였다. 야스지로 감독의 작품처럼 그의 작품들 또한 우리 곁에서 지속적으로 다른 의미를 던지며 순환하며 해석되기를 바란다.
기혜경 홍익대 미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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