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 상자 속 위험의 개인화 [세상읽기]

한겨레 2024. 7. 18.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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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아 | 한양대 교수(직업환경의학) 인간의 생존에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렇다 보니 인류는 무엇으로부터, 어떤 방식으로, 그리고 얼마나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인간의 필요에 따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냐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해왔다.

이렇게 캐낸 석탄을 태워서 집에서 난방을 했고 난방의 효율을 위해서 좁게 만든 굴뚝을 청소하는 것도 아이들이었다.

19세기 초에 개발된 성냥은 인간이 불씨를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해야 하는 시간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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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과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국토안전연구원, 고용노동부, 산업안전관리공단 등 관계자들이 지난달 25일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리튬전지 공장 아리셀 화재 현장에서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김인아 | 한양대 교수(직업환경의학)

인간의 생존에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렇다 보니 인류는 무엇으로부터, 어떤 방식으로, 그리고 얼마나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인간의 필요에 따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냐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해왔다. 그런데 오랜 시간 불이나 열로 상징되는 에너지를 전환하거나 이동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처음은 석탄이었다. 18세기 증기기관의 발명과 함께 사용량이 급격하게 늘어난 석탄은 산업혁명의 핵심 에너지였다. 폭발이나 매몰 사고가 이어지고 많은 노동자들이 사망했다. 대표적 폭발 사고로 1812년 펠링 탄광에선 92명이 숨졌는데, 14살 이하 어린이가 20명이 넘었다고 한다. 1830년에 영국 의회에서 발간한 아동노동 실태 보고서의 삽화에는 좁은 갱도를 기어서 석탄을 나르고 있는 아이들과 여성들이 있다. 이렇게 캐낸 석탄을 태워서 집에서 난방을 했고 난방의 효율을 위해서 좁게 만든 굴뚝을 청소하는 것도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최초의 직업성 암에 대한 보고라고 알려져 있는 굴뚝 청소부의 음낭암으로 이어진다.

다음은 성냥이었다. 19세기 초에 개발된 성냥은 인간이 불씨를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해야 하는 시간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했다. 최초의 성냥은 백린으로 만들어졌는데, 백린은 인화점이 20℃인 위험한 화학물질일 뿐만이 아니라 턱뼈나 간이 괴사되는 등 심각한 중독 증상을 유발한다. 동화 속 성냥팔이 소녀가 죽어가면서 바라본 가족의 행복한 모습이 백린 중독에 의한 환각 때문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1800년대 중반 성냥공장에는 10대 소녀들이 공장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하루에 10시간 넘게 일을 하면서 백린 중독으로 턱뼈가 약해져서 치통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그들은 1888년 ‘성냥공장 여성노동자들의 파업’(Match Girls’ Strike)이라는 역사 속 사건의 주인공이 되었고, 1900년대 초 영국은 백린 사용을 금지하게 된다.

이제 전기의 세상이 되었다. 전기를 만들고 저장하기 위한 많은 노력들이 이어졌다. 인류 최악의 사고라는 체르노빌 원전에서의 폭발 사고가 발생한 것은 1986년이다. 많은 노동자들이 죽어간 탄광에서 캐낸 석탄을 사용해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에서 김용균이 사망한 것이 2018년이었다. 그리고 2024년 전기를 저장하는 배터리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23명이 사망했다. 이들 중 18명이 인력공급업체를 통해 일을 하러 온 일용직 이주노동자였다. 리튬이 화재의 원인이라고 했다. 에너지 효율이 높은 배터리를 원하던 사람들은 반응성이 높은 리튬을 사용하는 1차 전지를 개발했고 1950년대부터 이러한 전지가 사용됐다고 한다.

얼마나 위험한 물질이냐, 해당 물질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이어졌는가라는 논의와는 별개로 산업혁명 초기의 탄광이나 성냥공장의 모습이 겹쳐졌다. 급격하게 늘어나는 노동력 수요를 채우기 위해 아이들까지 저임금으로 데려다 일을 하게 만들었던 그 잔인함이,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는 이주노동자들에게 그대로 투영되고 있는 것 같다. 노동시장에서 사람을 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사회적 안전망 안에서 관리하기 어려운 노동자들을 그때그때 쓸 수 있도록 만든 것이 인력공급업체라면 약 200년 전 공장법 적용이 안 되는 노동자들을 쓰던 시절과 다를 바가 없다.

석탄 발전소에서 사망한 하청업체의 노동자였던 김용균의 죽음이 위험의 외주화의 비극적 결과였다면, 배터리 공장에서 사망한 이주노동자들의 죽음은 위험의 개인화가 이루어진 노동시장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 같은 장소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서로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개별적인 대처를 할 수밖에 없는, 그래서 그 장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그런 상황 말이다.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에게 화가 난 제우스는 영원한 고통이라는 형벌을 내린다. 제우스는 불을 탐한 인간에게도 형벌을 내린다. 최초의 인간 여성인 판도라를 만들어 상자를 들려 인간세상에 내려보낸 것이다. 배터리 공장의 화재에서 우리는 위험의 외주화를 넘어 위험의 개인화가 이루어진 현장에서의 참혹함을 목도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판도라가 상자를 열었을 때 튀어나왔던 그 모든 것들처럼 무방비 상태로 개인화되어 현장에 던져진 노동자들의 현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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