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 65년, 쿠바는 어디로 가나? [강수돌 칼럼]
강수돌 |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명예교수
“조국이 아니면 죽음을! 우리, 승리하리라!” 인구 1100만의 쿠바에 흔한 구호다. 이 비장한 구호의 기원은 (혁명 1년여 뒤) 1960년 3월, 아바나 항구, 프랑스 화물선 ‘쿠브르’ 폭발 사건이다. 쿠브르호는 벨기에산 무기와 군수물자(76톤)를 아바나항에서 하역하던 중 두차례나 폭발, 침몰했다.
쿠바와 지리적으로 가까우나 이념적으로 극단인 미국은 1959년 1월 쿠바 사회주의 혁명이 ‘목에 가시’였다. 유럽산 무기까지 유입되니 좌시할 수 없었다. 비밀요원 침투, 체제 전복, 수뇌 암살 기도 등이 미국의 기본 대처법! 그중 하나가 쿠브르호 폭파였다. 이 폭발로 노동자 100명이 죽고 200명이 다쳤다. 그 희생자 추모 연설에서 피델 카스트로(1926~2016)는 “조국이 아니면 죽음을! 우리, 승리하리라!”를 외쳤다.
따지고 보면, 이 구호는 1차적으로 쿠바가 400년 이상 계속된 스페인 제국주의 지배로부터 해방투쟁(1868~1898)을 하던 때, 2차적으로는 미국으로부터의 독립과 사회주의 혁명(1952~현재)을 전개하던 내내 그 절실함과 단호함을 드러냈다.
같은 맥락에서, “조국이 아니면 죽음을!”에서 ‘조국’은 더는 협의의 조국이 아니다. 최소한, 세계 혁명을 꿈꾼 체 게바라(1928~1967)에게 그런 조국은 없다! 의사였던 ‘체’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지만 쿠바 혁명에 앞장섰고, 나중엔 콩고를 거쳐 끝내 볼리비아에서 최후를 마친 세계시민(!)이었다. 이런 뜻에서 앞 구호는 “혁명이 아니면 죽음을!”로 확장된다.
그런데 바로 그 혁명도 어언 65년! 내가 최근 체험한 쿠바 현실은 헤밍웨이가 즐긴 다이키리와 달리 몹시 쓰렸다. 물론 혁명 직후부터 미국의 경제 봉쇄, 1990년 이후 소련과의 단절, 최근의 코로나 사태 등이 모두 악재다. 그럼에도 사회주의를 내건 혁명 쿠바의 오늘은 ‘낭만과 열정’의 아이콘과는 전혀 딴판이다.
우선, 가장 적대국인 미국의 화폐, 즉 달러에 대한 집착이 심하다. “화폐 자신이 공동체가 아닌 곳에서 화폐는 공동체를 해체한다. 그리하여 스스로 화폐 공동체가 된다”던 마르크스의 통찰처럼, 쿠바는 페소 공동체를 넘어 달러 공동체로 변신한다. 1달러가 암시장에선 350페소까지 교환된다. 무상급식·무상교육·무상의료가 쿠바 체제의 골간이고, 그간 유기농·협동조합의 모범이었는데, 미 달러 과잉 의존은 ‘체’에겐 광기로 비칠 것! 설상가상, 2021년 화폐개혁 뒤 물가 상승은 무서울 정도다. 안 그래도 전기나 식량 부족으로 고통을 겪는데 물가가 수십배 올랐다. 자립 경제의 토대 붕괴로 인한 악순환!
둘째, 아바나에서 140㎞ 떨어진 휴양지 바라데로는 달러권 해외 여행객에겐 천국이다. 수도 아바나는 허름하나 수백년 역사의 유산으로 관광 달러를 번다. 그러나 관광 경제는 체질이 허약하다. 나아가 혁명을 오염시킨다. 사실, 65년 전 혁명을 지지했거나 체제 존속을 바라는 쿠바 본토인들에게 오늘의 쿠바는 ‘조국’보다 ‘죽음’에, ‘승리’ 아닌 ‘패배’에 가깝다. 그래서 청년들이 쿠바를 탈주한다. 최근 10년간 인구가 7%나 줄었다고 한다. ‘체’는 “우리 모두 현실주의자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엔 불가능한 꿈을 품자”고 했다. 현실적 조건을 고려하면서도 근본 변화를 이루자는 뜻인데, 안타깝게도 ‘체’의 꿈은 빗나갔다. 근본 변화는 별로 없고 자본주의 상품-화폐 경제만 갈수록 확장된다.
셋째, 객관적 상황 변화보다 더 중요한 건 사람들의 주체적 의지다. 그런데 50년간 쿠바 혁명을 이끈 ‘피델’의 모교이자 300년 전통을 가진 아바나대학의 분위기는 ‘혁명’과 담을 쌓은 듯했다. 정문 수위들은 나 같은 방문객에게 ‘돈’을 요구했고, 캠퍼스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본관과 중앙도서관 사이, 이그나시오 아그라몬테 광장엔 1958년 혁명 투쟁 중 진압군에게 뺏은 탱크가 전시돼 있을 뿐, 캠퍼스 어디에도 현실 변화를 위한 학생·교수들의 활기찬 대화·토론이 없었다. 심지어 시내의 한 미술관에서는 직원 한명이 친절을 베푸는 듯하더니 마침내 ‘달러’를 구걸했다. 전기 충격을 받은 기분! 또 ‘체’나 ‘피델’ 얼굴이 붙은 학교 앞에서 초등학생(5학년)을 만났을 때다. 아이에게 반갑게 인사하고 의사당 건물인 카피톨리오로 가는 길을 물었다. 방향만 가리켜도 좋은데, 아이는 굳이 자기를 따라오라 했다. 길을 가던 중 아이는 내게 “초콜릿이 있으면 하나 달라”고 했다. 없다고 했더니 “그럼 1달러만 달라” 했다. 그 말에 앞이 캄캄해졌고, 마침 소낙비가 와 다른 골목으로 피했다. 서글픈 생각으로 비를 피하고 섰는데, 자전거인력거 운전자가 힘겹게 지나가다 금세 생긴 물웅덩이에 빠져 허우적댔다. 돕고 싶어도 방법이 없어 발만 동동 굴렀다. 운전자는 이래저래 용을 쓰더니 겨우 빠져나와 비와 땀에 젖은 채 힘겹게 사라졌다. 그 뒷모습이 쿠바의 오늘을 상징적으로 말하듯, 아직도 아른거린다.
65년 전, 혁명 1세대는 ‘목숨’ 걸고 혁명을 했다. 그러나 정호현 쿠바 한글학교 교장의 말처럼, “현재 쿠바 청년들은 갈 수만 있다면 해외로 나가 일도 찾고 돈도 벌고 싶어 한다”. 나를 아바나대학까지 자전거인력거로 날라준 청년 후안도 그럴 것이다. 한편, 한글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청년들에겐 “책으로 된 교재도 부족하고, 피디에프(PDF) 파일을 볼 수 있는 패드를 구하기도 힘들” 정도다.
혁명 광장 건너편에 게시된, “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란 글을 남기며 1965년 ‘피델’을 떠난 ‘체’! 그 얼굴이 세계 각국에서 온갖 상품으로 팔리는 오늘날, 과연 혁명이란 목숨 걸 가치가 있을까? 나아가 자본의 가치 증식이 갈수록 한계에 이른 현재, 그래서 유럽에선 극우파가 부상하고 미국에선 트럼프가 (목숨 걸고) 재기하려는 지금, 우리에겐 어떤 혁명이 필요한가?
석유, 상품, 경쟁, 화폐, 자본의 지배를 벗어난 세상은 과연 가능할까? 많이 없어도 공동체가 살아 있고, 소박하게 행복한 나라, 세계인들에게 ‘이것이 대안!’이라 할 세상, 그런 곳은 어디? 사람을 가득 태운 아바나 시내버스가 ‘석유 아닌 태양광으로 달렸으면’ 하고 상상했던 순간이 뇌리를 스친다. 쿠오바디스, 쿠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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