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0년 올림피아의 제전...神의 기술을 입다

채제우 기자 2024. 7. 18.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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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Cover Story] 수퍼 슈즈, 제2의 피부 같은 경기복...올림픽은 기술 경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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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의균·Midjourney

지난 3월 도쿄 마라톤에서 2시간 2분 16초에 결승 테이프를 끊은 벤슨 키프루토(33·케냐). 결승선을 통과하며 쭉 뻗은 그는 ‘역사상 가장 가벼운 러닝화’란 타이틀을 내건 아디다스의 ‘아디제로 아디오스 프로 EVO1′을 신고 있었다. 무게 138g(사이즈 270㎜ 기준)에 불과한 이 초경량 신발을 두고 토머스 앨런 영국 맨체스터 메트로폴리탄대 스포츠 엔지니어는 CNN에서 이렇게 평했다. “마치 ‘포뮬러 원 자동차’와 같은 거죠. 오로지 달리기 성능을 위해 개발한 이 신발은 가능한 한 빨리 달리도록 최적으로 설계된 겁니다.”

최근 주요 스포츠 브랜드가 내놓는 ‘수퍼 슈즈’는 평범한 러닝화가 아니다. 기존 러닝화보다 40~60% 가벼운 데다, 탄성이 강한 탄소섬유를 활용해 달릴 때 추진력이 생기는 첨단 기술의 집약체다. 마치 그리스 신화의 ‘날개 달린 샌들’이 현대에 되살아난 것처럼, 더 가볍고 더 효율적인 러닝화가 인류 신체의 태생적 한계를 허물고 있다는 해석이다. WEEKLY BIZ는 오는 26일 개막하는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국내외 스포츠 업체 등을 취재해 빠르게 진화하는 신발과 경기복 등 스포츠웨어의 세계를 집중 분석했다.

그래픽=김의균

◇신발, 다리에 엔진 달다

올림픽 때 쏟아지는 신기록의 이면에는 선수들 특급 도우미 ‘신발’이 있음을 지나칠 수 없다. 신발엔 종목마다 필요한 첨단 기술과 운동 역학이 고스란히 담겼기 때문이다. 특히 마라톤 종목에서 초경량 소재와 탄소섬유 등을 이용한 ‘수퍼 슈즈’는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그 존재를 뚜렷이 과시했다. 당시 남자 마라톤 경기에서 엘리우드 킵초게(40)는 신발에 탄소섬유 판을 넣은 나이키의 ‘베이퍼플라이4%’를 신고 경기에 임했고, 2시간 8분대 기록으로 우승했다. 케냐 ‘올림픽 영웅’의 등극이었다. 하지만 새 마라톤 영웅의 등장과 함께 사람들 시선을 끌어당긴 것은 시상대에 오른 메달리스트들의 신발이었다. 메달리스트 세 명이 모두 똑같은 러닝화를 신은 것이다. 그러고 2019년 10월, 킵초게는 나이키의 다음 세대 수퍼 슈즈를 신고 ‘인간의 벽’을 뛰어넘었다.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마라톤 경기에서 인류 최초로 ‘서브2(2시간 이내에 풀코스 완주)’를 달성한 것이다. 페이스 메이커를 대거 동원하는 식의 이벤트성 경기라 킵초게의 기록이 공식 기록으로 인정되진 않았지만, 신발 한 켤레가 인간이 도달하지 못했던 한계를 뛰어넘는 문을 열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를 계기로 아디다스, 아식스 등 각종 스포츠 브랜드의 수퍼 슈즈 개발 경쟁도 본격화한다.

수퍼 슈즈를 마치 스프링을 단 신발처럼 만들어준 건 ‘마법의 밑창’이다. 영국 스포츠의학저널에 따르면, 수퍼 슈즈는 밑창 부분 탄소섬유 판과 중창(밑창과 깔창 사이) 소재 및 두께가 기술력의 핵심으로 손꼽힌다. 두꺼운 신발 밑창에 들어간 뻣뻣한 탄소섬유 판은 발목 부담을 줄여주고 발이 지면에서 떨어지는 순간 내딛는 힘을 극대화한다. 신발 밑창이 스프링처럼 튀어 오르는 추진력을 주면서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일종의 지렛대 역할까지 해준다는 설명이다. 미국 매사추세츠대 애머스트 캠퍼스의 바우터르 호흐카머르 교수 등은 이처럼 탄소섬유 판을 넣은 러닝화를 신으면 기존 제품 대비 달리기 효율을 4% 높일 수 있다는 연구를 내놓기도 했다. 나이키의 수퍼 슈즈에 맞서기 위한 아디다스의 비책은 ‘탄소 막대’였다. 아디다스는 발가락뼈를 따라 이어지는 탄소 막대 5개를 넣은 수퍼 슈즈 ‘아디제로 아디오스 프로’ 시리즈로 경쟁에 불을 붙였다.

육상 단거리에서도 ‘신발 전쟁’은 이어진다. 아디다스 글로벌의 벤 헤라스 디자인 부사장은 WEEKLY BIZ에 “이번 여름에 새로 출시한 ‘아디제로 프라임 SP3 스트렁’은 100m 달리기에 특화된 스파이크가 달려 있다”며 “순간적으로 강한 힘을 뿜어 내도록 신발 기능을 극대화했다”고 했다.

파리 올림픽에서 한국의 효자 종목으로 기대를 받는 펜싱과 양궁도 신발 속 과학이 숨어있다. 한국 펜싱 선수단 펜싱화를 제작한 휠라 측은 “펜싱화는 순발력 있는 움직임이 많은 경기 특성상 미끄러짐을 방지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신발 안쪽에 천연 가죽 소재를 붙이고, 신발 바닥면 전체에 가공한 고무 소재를 사용해 접지력도 향상시켰다”고 했다. 양궁 선수들을 위한 양궁 전용화도 개발됐다. 한국 양궁 선수단 스포츠웨어를 제작 지원하는 코오롱스포츠는 “활을 쏠 때 안정감을 주도록 양궁 전용화 발등 부분은 견고하면서도 가볍고 유연한 폴리우레탄 코팅 소재를 썼고, 토(toe·운동화 앞코의 끝)는 낮춰 안정감·균형감을 갖추도록 개발했다”고 밝혔다.

◇경기복, 제2의 피부처럼 편안하게

선수들의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건 신발뿐이 아니다. 선수들의 경기복은 더 가볍고 더 편안하게 진화하고 있다.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프랑스·영국·독일 등 주요 서유럽 국가 경기복을 제작한 아디다스는 “마치 두 번째 피부처럼 선수들이 운동 중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데 선수복 제작의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한다. 헤라스 부사장은 “스포츠 의류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리온 연구소와 협업해 제작한 이번 경기복은 강화된 고무·엘라스토머(TPE) 소재를 사용해 선수들이 큰 힘을 줄 때 주요 근육 부위가 지지력을 받도록 설계했다”며 “경기복은 전반적으로 가벼워졌고, 통기성이 좋은 직물을 사용해 움직임에 거슬림이 없도록 했다”고 말했다.

노스페이스는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스포츠클라이밍 유니폼을 공개했다. 노스페이스 측은 “3차원 소프트웨어 기술을 활용해 유니폼 디자인을 설계해 스포츠클라이밍 선수들의 등반에 딱 맞는 핏으로 의류를 만들었다”고 포브스에 전했다. 일본의 배구·육상 부문 선수들은 이번 올림픽에 적외선을 흡수하는 신소재 의상을 입고 출전할 예정이다. 2020년 일본 선수들은 적외선 카메라로 찍힌 노골적 신체 모습이 소셜미디어에 퍼져 문제가 됐는데, 이번엔 아예 적외선을 흡수하는 의상을 입혀 선수들 걱정을 원천 차단하고 심리적 안정감을 주겠다는 취지다.

우리나라 경기복에도 비장의 무기는 있다. 김영미 코오롱스포츠 R&D파트 디자인실장은 “이번 파리 올림픽 양궁 경기복은 지난 항저우 아시안게임 때 입은 것보다 10% 가벼워졌다”며 “중량을 줄이면서도 바늘 땀을 촘촘히 해 몸에 착 붙고 움직임 방해를 줄이는 경기복을 제작했다”고 말했다. 파리 올림픽에선 맹렬한 더위와 햇빛이 복병으로 떠오른 만큼, 스포츠웨어에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기술도 녹아들었다. 김 실장은 “양궁은 정지된 상태에서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모자에 특히 신경을 썼다”며 “모자챙에 가느다란 와이어를 넣어, 선수들이 원하는 만큼 햇빛을 가리고 시야를 확보할 수 있도록 제작했다”고 말했다.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는 지상뿐 아니라 물속에서도 스포츠웨어가 선수들의 잠재력을 끌어올릴 예정이다. 수영복 전문 브랜드 스피도는 파리 올림픽을 대비해 출시한 ‘LZR 인텐트 2.0′과 ‘LZR 발러 2.0′을 최근 공개했다. 이 수영복은 선수들이 편안하게 경기할 수 있도록 착용감 개선을 최우선으로 했다는 설명이다. 미국 수영 스타 케일럽 드레슬도 최근 한 스포츠 매체 인터뷰에서 “(수영복은) 자연스러운 느낌이 최우선이고, 훈련 때 입는 스피도에서도 마치 일상생활 속 속옷 착용 정도의 자연스러움을 느낀다”고 했다.

그래픽=김현국

◇스포츠웨어 기술, 1000조 시장 이끈다

올림픽 등 대규모 스포츠 이벤트를 계기로 발전을 거듭하는 스포츠웨어는 일반인들에게까지 각종 스포츠 신발·의류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스포츠 시장을 견인하는 양상이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스트레이츠 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스포츠웨어 시장 규모는 2022년 4128억달러(약 570조원)에서 2031년 7487억달러(약 1030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약 7년 뒤엔 스포츠웨어 시장이 1000조원을 넘어설 것이란 얘기다. 스트레이츠 리서치는 특히 “건강은 전 세계 많은 사람에게 꼭 지켜야 할 우선순위 항목이 되고 있다”며 “인구 고령화로 기대 수명이 늘고, 건강을 유지하려는 고령자도 그만큼 많아지면서 스포츠웨어 시장 성장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전 세계 각국에서 높아지고 있는 스포츠 참여율도 스포츠 시장 성장엔 긍정적인 요소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는 최근 ‘스포팅 굿즈 2024′란 보고서에서 “90% 이상의 스포츠용품 기업이 올해 매출과 이익이 더 좋아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며 “누구나 쉽게 해볼 수 있는 스포츠 종목들에 뛰어드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사업 기회가 계속 생겨날 것”이라고 전했다. 맥킨지에 따르면, 2019~2022년 전통적으로 인기가 많은 골프·테니스의 경기 참여율은 각각 57%, 33% 늘어난 데 비해, 피클볼과 패들 테니스의 참여율은 같은 기간 159% 증가했다. 새로운 스포츠 종목들이 유행하며 스포츠웨어 시장 규모도 덩치를 불리게 된다는 얘기다. 게다가 최근 1년간 아시아·태평양(11%)과 중남미(22%) 시장 위주로 성장 속도가 빨라 글로벌 시장의 성장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그래픽=김현국

◇약물만큼 위험한 장비발 논란도

스포츠웨어 기술 발전은 선수들 경기력 향상과 스포츠웨어 시장 확대라는 과실을 가져왔지만, 일각에선 “정정당당한 실력이 아닌 ‘기술 도핑’이 아니냐”는 비판도 이어진다. 첨단 기술을 적용한 신발, 경기복을 사용한 선수들이 메달을 ‘싹쓸이’하자, 마치 불법 약물처럼 기술 도핑도 규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실제로 수영 종목에선 앞서 ‘전신 수영복’이 퇴출됐다. 2008년 전신 수영복을 입은 수영 선수들이 세계 기록을 한 해에만 총 108번 세우면서, 전신 수영복은 논란 끝에 2010년 경기에서 금지된 것이다.

육상 종목에선 수퍼 슈즈가 논란이다. 2016년 처음 등장한 나이키의 수퍼 슈즈를 신은 선수들이 신기록을 갈아치우자, 스포츠 과학자 로스 터커는 “달리기를 망가뜨린 신발”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에 세계육상연맹은 2020년 1월 러닝화에 탄소섬유 판을 하나만 넣을 수 있고, 밑창 높이는 40mm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는 지침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러나 스포츠 기술 진보에 역행하거나 기술을 규제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영국 경제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스포츠의 매력은 인간이 더 강해지고 빨라지는 상승 궤도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라며 “수퍼 슈즈를 금지하는 것은 퇴행적일 뿐 아니라 ‘지니를 램프에 다시 넣기’처럼 시행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김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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