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컬렉션의 힘'···기증·기부 세제 혜택은 언제쯤?

조상인 백상경제연구원 미술정책연구소장 2024. 7. 18.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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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인 백상경제연구원 미술정책연구소장
기업인 수집품, 전시통해 공공 인식 변화
기증·기부 독려할 稅 지원엔 여전히 인색
문화향유 욕구 충족시킬 제도개선 나서야
[서울경제]

이게 컬렉션의 힘이구나, 싶다. 부산시립 부산박물관이 특별기획전으로 4월 26일 개막한 ‘수집가 전(展)-수집의 즐거움 공감의 기쁨’ 얘기다. 미술 애호가들 사이에서 “올해 꼭 봐야 할 명품 전시”로 입소문을 타더니 폐막 예정일이던 7월 7일까지 약 7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모았다. 1978년 개관한 부산박물관은 46년 역사를 통틀어 단일 전시 최다 관객 돌파의 기록을 세웠다.

진정 특별한 전시다. 부산을 기반으로 성장한 한국 대표 기업가들이 대(代)를 이어 수집한 귀한 문화유산 59점을 박물관으로 끄집어냈다. 동양고무로 시작해 나이키 운동화 제조부터 토종 브랜드 ‘월드컵’ ‘르까프’ 출시까지 이뤄낸 ‘신발 도시’ 부산의 대표 기업 화승 창업주 고(故) 현수명 회장과 현승훈 회장 부자, 정미소 사업을 하며 임시정부 독립 자금도 지원했던 고려산업과 동방유량의 창업주 고 신덕균 회장과 신성수 눌원문화재단 이사장 부자, 대구에서 창업했으나 1·4 후퇴 이후 피란기 부산에서 삼성물산과 함께 삼성의 첫 제조 업체 제일제당을 설립한 고 이병철 회장과 고 이건희 회장 부자, 피란 수도 부산에서 남성용 헤어용품 포마드 제품을 출시해 화장품 업계의 대표 주자로 올라선 아모레퍼시픽 창업주 고 서성환 회장과 서경배 회장 부자까지 부산과 인연을 맺은 네 집안의 컬렉션이 그 주인공이다.

현수명·현승훈 회장 부자는 부산박물관과의 인연이 좀 더 특별하다. 현수명 회장은 건립이 확정됐으나 변변한 소장품 하나 없이 문을 열게 된 부산박물관의 현실이 안타까웠다. ‘조용한 수집가’로 평생 모은 유물 69점을 박물관에 기증하기로 결심했다. 그의 의지는 1977년 타계로 유지(遺旨)가 됐다. 가업을 물려받은 현승훈 회장은 이를 실천했다.

‘컬렉션’의 사회적 반향을 피부로 느끼는 요즘이다. 그 도화선은 단연 ‘이건희 컬렉션’ 기증이었다. 2021년 4월 기증된 2만 3000여 점의 문화유산은 ‘전시 관람 열풍’을 일으켰고 연간 10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을 박물관·미술관으로 끌어들였다. 개인의 소유물로 여겨지던 수집품이 사회적 공유 대상이 된 것이다. 그간 ‘컬렉션’에 대해 부정적이던 공공의 인식도 달라졌고 ‘컬렉터’ 문화 확산의 불을 지피는 계기도 됐다.

지난해 개관한 대전 ‘헤레디움’은 좀 더 큰 그림을 그리는 중이다. 대전 지역에 도시가스를 공급하는 씨엔시티(CNCITY)에너지의 황인규 회장은 대전만의 경쟁력을 고민하며 역사와 지역 정체성을 더듬었다. 일제강점기 동양척식주식회사로 쓰였던 100년 된 건물을 사들여 헤레디움을 만들었고 세계적인 예술가들을 초청해 전시를 열고 있다. 일제시대 철도 기술자와 역무원들이 거주했던 관사촌을 복합 문화 공간으로 되살리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컬렉터로 이름을 알려온 황 회장 개인의 관심사가 공동체와 역사로 확장된 결과로 보인다.

이처럼 흐뭇한 광경 앞에서 늘 아쉬운 게 하나 있다. 미술품과 문화유산의 기증·기부를 독려할 사회적 여건이 부족하다는 현실이다. 현행법은 미술품과 문화유산 기증·기부에 대한 세제 지원 혜택에 인색하다. 미국의 경우 1만 6000여 개 미술관·박물관의 소장품 중 약 80%가 민간 기부를 통해 확보됐다. 미국은 일찍이 1917년부터 연방 소득세법에 따라 기증작의 평가액만큼 세금을 공제해주는 법률을 시행했고 잠들어 있던 문화유산을 집 밖으로 끄집어냈다. 1917년을 전후로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의 기증작은 20배나 급증했다. 프랑스는 2003년 ‘메세나법’을 제정해 문화예술 지원 금액에 대해 법인은 매출액의 0.5% 한도 내에서 60%까지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 같은 세제 지원이 당장 눈앞의 세수를 줄인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박물관·미술관의 소장품 구입 예산으로는 수십 년 모아도 한 점 살까 말까 한 미술품이 민간 기증·기부의 힘을 빌리면 단번에 소장품으로 확보될 수 있는 여러 사례를 확인했음에도 말이다. 상속세를 미술품으로 대납하는 ‘물납제’도 올해 첫발을 내디뎠다. 국민적 문화 향유의 욕구,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가 나날이 높아지는 지금, 미술품 기증·기부에 대한 세제 지원을 제대로 논의하기를 기대한다.

조상인 백상경제연구원 미술정책연구소장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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