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부의 축구협회 조사, 정말 월드컵 금지 사안일까…‘정치 중립’ FIFA 정관 따져보니
‘감독 선임 무효’는 권한 없어
현재로선 ‘협회 감사’ 그칠 듯
홍명보 남자 축구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 협회 운영 전반에 대한 문화체육관광부의 조사 예고에 대한축구협회가 불편한 심경을 내비쳤다. 한 협회 고위 관계자는 “회장이나 임원 자격을 심사할 수 있어도 스포츠나 기술적인 부분을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전 세계에 그렇게 하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각국 협회 운영의 자율성, 정치권으로부터 독립을 규정한 국제축구연맹(FIFA) 정관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FIFA는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을 근거로 앞서 쿠웨이트의 월드컵 참가를 막은 바 있다. 일부 팬들은 협회가 월드컵 출전 금지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은 현 체제를 지키기 위한 협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FIFA는 2015년 쿠웨이트 축구협회가 정부의 간섭을 받았다는 이유로 쿠웨이트를 국제 대회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쿠웨이트 정부가 스포츠 관련 법률을 바꿔 협회 주요 임원을 해임하거나 임명할 수 있게 하고, 재정까지 통제한 것에 따른 조치였다. 쿠웨이트는 이 결정으로 2018 러시아 월드컵 예선전부터 제외됐다.
사법부와 FIFA가 충돌한 사례도 있다. 브라질에서는 리우데자네이루 법원이 에르날두 로드리게스 브라질 축구협회장 및 임원들의 해임을 결정했다가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앞서 지방 법원은 선거 규칙이 투표 직전에 변경되어 로드리게스 현 회장 단독 출마로 결정되는 등 절차상의 문제를 판결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FIFA는 “브라질 축구협회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면서 “이것이 존중되지 않으면 FIFA는 해당 문제를 의사결정 기구에 부쳐 심의를 내릴 수밖에 없다”고 반발했다. 정치권의 판단을 근거로 차기 협회장 선거를 강행하면 월드컵에서 브라질을 퇴출할 것이라는 내용도 있었다.
현재로선 문체부 차원에서 협회에 취할 수 있는 최대 조처는 감사 정도다. 협회는 올해부터 공직 유관단체로 지정돼 문체부 감사 대상이 됐다. 하지만 그 수준까지 간다고 해도 협회가 국제대회 출전 자격까지 박탈당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문체부로선 감독 선임 과정 개선을 권고할 수는 있어도 감독 선임을 무효로 할 수 있는 권한까지는 없다. 아직 FIFA에서도 이번 사안에 대해 특별한 견해를 밝히지 않은 상태다.
과거에도 정부의 축구협회 간섭으로 FIFA 제재를 받은 국가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경고나 벌금에 그쳤다. 월드컵 출전 정지까지 이어진 경우는 쿠웨이트가 유일하다. 쿠웨이트는 정부가 협회 운영에 직접 개입하고, 기존 협회를 해산시키는 등 극단적인 상황까지 갔다. 당시 이 조치를 두고 쿠웨이트 정부가 ‘아랍의 봄’ 여파에 따른 민주화 요구, 석유 수익 감소에 따른 국민의 불만을 인기 스포츠 축구를 통해 돌리려 한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결국 협회에 대한 감시, 견제 움직임에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느냐가 더욱 중요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브라질의 경우 브라질 대법원이 지방 법원 판결을 뒤집으면서 로드리게스 협회장이 복귀했다. 하지만 현지에서는 대법원이 FIFA와 남미축구연맹(CONMEBOL)의 제재 가능성을 의식해 정치적인 판결을 내렸다는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박효재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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