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곰 보호시설, 짓기만 하면 그만인가요
동물보호단체들 “정부, 곰 수용·안락사 등 기준 없어”
지난해 12월 야생생물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곰에게서 웅담을 채취하는 사육곰 산업은 2026년부터 불법이 된다. 정부가 국내에 남아있는 사육곰들을 위한 시설을 짓고 있지만, 수용 가능한 마릿수가 적고 시설 운영 등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아직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사육곰 구조보호단체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와 국제동물보호단체 ‘한국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한국 HSI)은 16일 서울 중구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에서 ‘2024 사육곰 산업 종식을 위한 농장 조사 및 시민 인식 조사 보고서’ 공유회를 열었다. 이번 보고서에는 사육곰 산업의 역사와 시대적 변화, 현재 농장에 남아 있는 사육곰 실태, 전국 18개 농장 농장주 면담 내용, 사육곰 관련 시민 인식 조사 결과 등이 담겨 있다.
앞서 정부는 2022년 1월 사육곰협회, 동물보호단체 등과 함께 ‘2026년 국내 곰 사육 종식’을 선언하고, 이를 위한 협약을 맺은 바 있다. 이어 지난해 12월 ‘2026년부터 누구든 사육곰을 소유·사육·증식할 수 없고, 사육곰과 그 부속물(웅담)을 양도·양수·운반·보관·섭취할 수 없다’는 내용의 야생생물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사육곰 산업은 종식을 앞두고 있다. 정부는 사육곰 산업 종식 뒤 곰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안으로 충남 서천시과 전남 구례군에 곰 보호시설(생크추어리)를 2025년까지 완공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날 보고서 공유회에서 동물보호단체들은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많다고 주장했다. 발표자로 나선 최태규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대표는 “전국 18개 농장에 남아있는 사육곰은 280여 마리”라며 “그러나 정부가 짓고 있는 곰 보호시설(생크추어리)에서 수용 가능한 마릿수는 120~130마리, 많아도 150여 마리에 불과해 100여 마리 이상이 보호시설에 들어가지 못하게 될 상황”이라고 말했다.
어떤 곰을 보내고, 어떤 곰을 남길지는 여전히 물음표다. 농장마다 곰의 품종과 사회성, 건강, 질병 유무, 시설 수준 등이 다른데 정부는 아직 이와 관련한 기준조차 마련하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보호시설에 들어갈 곰의 매입 비용 부담 주체를 둘러싼 갈등, 운영 방안의 부재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최 대표는 “곰들을 (보호시설로) 데려오기 위해서는 농가에 보상금을 지급해야 하는데 환경부는 이 매입 비용을 시민단체에 떠넘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2022년 동물보호단체들이 정부와 맺은 협약서에 단체의 역할로 ‘사육곰 구조에 협력하고 지원한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는데 정부가 이를 근거로 매입 비용을 부담하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체들은 사육곰의 매입은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를 보면 단체들이 지난달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온라인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69.8%가 사육곰 매입 비용을 정부가 부담해야 한다고 답했다. 보상이 필요 없다는 응답은 20.1%, 시민단체가 부담해야 한다는 의견은 7.7%였다.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보호시설 운영 주체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구례 보호시설은 국립공원공단에, 서천 보호시설은 국립생태원이 운영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최 대표는 “국립공원공단은 그동안 지리산에 반달곰을 방사하고, 야생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개체를 회수해 사육하는 일을 해왔다”며 “사육곰 농장의 늙고 병든 곰을 돌본 경험이 없는 조직들에 환경부가 떠맡기듯 운영을 지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단체들은 농장에 남아있는 곰들이 열악한 환경에 그대로 방치되거나 고통사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18개 농장주들을 면담한 결과, 농장에서는 여전히 마취약 투약 없이 근육 이완제만 사용하거나 목을 매다는 불법적인 방식으로 곰을 도살하고 있었다. 최 대표는 “정부가 농장에 명시적으로 도살을 하라고 하지는 않지만 ‘자연 감소’라는 표현으로 도살을 유도하고 있다”며 “곰들의 고통사를 방치하지 말고 (보호시설에 갈 수 없는 개체들은) 정부가 매입해서 안락사하는 것이 책임 있는 태도”라고 말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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