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은 늘 새로운걸 원해, 잠 설쳐요"
13년간 6번째 록시 역할
안무와 연기, 노래 변화 줘
뮤지컬 첫 주인공 맡은 배역
가장 애착 가는 인생 캐릭터
13년간 같은 인물을 여섯 차례 연기하면 그 배역이 쉬울까. 아니면 오히려 부담스러울까.
"대사와 안무는 숙지가 돼 있지만 관객은 늘 새로운 록시 하트를 기대해요. 이전과는 다르게 록시를 표현해야 한다는 생각에 잠이 안 올 때도 있었습니다."
2012년 뮤지컬 '시카고'에 첫 출연한 이후 주인공 록시 하트 역을 여섯 번째 연기하고 있는 배우 아이비(박은혜)를 매일경제가 만났다.
그는 "마니아인 관객들은 시즌마다 '시카고'에서 무엇이 바뀌고 어떤 점이 같은지 정확히 파악한다"며 "안무와 연기, 노래의 디테일한 부분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신경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시카고'는 춤과 노래에 재능을 가진 여성 죄수들이 감옥을 나와 꿈의 무대에 오르는 이야기를 그린 블랙코미디 작품이다. 1996년 첫 공연 이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오래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이며 국내에서는 2000년 초연 뒤 154만명이 관람했다. 아이비는 내연남을 총으로 살해한 매력적인 주인공 록시 하트를 연기한다. 이번 '시카고'에서 아이비가 설정한 목표는 '록시 하트를 생활해내기'다. 아이비는 관습적, 기계적 연기를 넘어서 무대 위에서 그 인물이 돼 그의 감정을 진실되게 표현하려 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2시 22분'으로 생애 처음 연극 무대에 서면서 인물에 깊이 몰입하는 경험을 한 덕분이다.
그는 "'2시 22분'의 제니 역을 맡으면서 춤과 노래 없이 오로지 연기만으로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인물이 처한 상황에 집중하는 연습을 했다"며 "이번 '시카고'에서도 록시의 상황으로 뛰어들면서, 단순히 그의 꿈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의 꿈을 욕망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비가 가장 공을 들이는 장면은 록시가 솔로곡을 부르기 전에 자신의 꿈과 야망을 약 5분간 독백하는 장면이다. 록시라는 인물을 관객에게 이해시키는 데 결정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록시의 내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이 장면에서 관객을 설득하지 못하면 관객이 록시와 '시카고'를 온전히 느끼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록시의 욕망을 가슴에 품은 채 때로는 발랄하게, 때로는 원숙하게 그의 매력을 전달하려 한다"고 말했다.
2010년 '키스 미 게이트'의 비앙카 역으로 처음 뮤지컬 무대에 선 아이비는 '고스트'(몰리 제슨), '위키드'(글린다), '아이다'(암네리스), '렌트'(미미), '드라큘라'(미나 머레이) 등에 출연하며 뮤지컬 스타로 자리 잡았다. 2005년 가수로 데뷔해 '오늘밤 일' '유혹의 소나타' 등을 발표하며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그는 같은 소속사에 있던 방송인 박경림의 조언으로 뮤지컬에 진출했다.
그는 "평소 뮤지컬을 즐겨 봤는데 먼저 뮤지컬 무대를 경험한 박경림 선배가 '키스 미 게이트' 출연을 추천했다"며 "최고의 배우인 최정원, 남경주 선배가 출연하는 작품이라는 말에 무조건 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가창력과 춤 실력을 겸비한 아이비에게도 뮤지컬 배역의 소화는 쉽지 않았다. 뮤지컬 안무의 기본기가 없었던 것이 특히 난관이었다. 뮤지컬 안무는 방송댄스와 많은 점에서 다르고 배우, 스태프들 간 긴밀한 협업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는 "뮤지컬 배우들은 발레와 현대무용, 탭댄스까지 무용 기본기를 다양하게 갖춰야 하는데 당시 저는 그렇지 못했다"며 "정확히 약속된 위치에서 조명을 받으며 안무를 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고 돌아봤다.
아이비는 지난 15년간 연기한 여러 뮤지컬 배역 중 록시 하트가 가장 애착을 가진 인물이라고 밝혔다. 생애 첫 주연이자 첫 원캐스트 배역이었고, 뮤지컬 배우로 확고히 자리 잡게 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한국뮤지컬대상 여우신인상을 쥐어준 배역이기도 하다. 그는 "록시는 자신만만하고 야망을 가졌지만 저는 늘 자신감도 욕심도 부족한 사람이어서 처음 그를 연기할 때 어색하고 어려웠다"며 "록시는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제가 배우로서 성장하게 해준 '인생 캐릭터'이고 이번 '시카고'에서도 그의 꿈을 관객에게 더 진실되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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