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있고 씩씩한 당신”···고 이예람 중사 3년 2개월만의 장례식
A씨는 고 이예람 중사(순직 당시 23세)의 첫 룸메이트였다. 공군항공과학고를 함께 다니며 같이 웃고, 때론 서로 도닥이며 공군 부사관의 꿈을 나란히 키웠다. 친구의 모닝콜 알람이었던 버벌진트의 <굿모닝> 노래를 퍽 잘했던 맑은 목소리, 어디서든 먼저 나서서 친구들을 챙기던 씩씩한 모습을 A씨는 다시 떠올렸다. “친구를 죽인 곳으로 출근하기 싫었다”며 진작에 군을 떠난 A씨는 18일 대구에서부터 비를 뚫고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을 찾았다.
상관의 성폭력과 군의 조직적 은폐로 목숨을 끊은 이 중사의 빈소가 이날 국군수도병원에 차려졌다. 이 중사가 순직한 지 3년 2개월만이었다. 빈소에 들어서자마자 눈물을 터뜨린 A씨를 이 중사의 어머니 박순정씨가 껴안아 다독였다. “예람이가 반가워하겠네.”
공군 제20전투비행단에서 근무하던 이 중사는 2021년 3월2일 상관 장모 중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상급자들은 가해자를 감싸고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 군 경찰과 검찰은 부실수사를 했다. 부대 전출을 신청해 옮긴 제15특수임무비행단에도 그가 성폭력 피해자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거듭된 2차 가해 끝에 이 중사는 “조직이 나를 버렸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후 3년을 이 중사의 부모는 딸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고 책임자를 가려달라고 싸웠다. ‘책임자들이 합당한 처벌을 받기 전까지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고 했다. ‘고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과 관련한 특별검사팀’이 출범했다. 100일간의 수사 끝에, 장 중사 등 8명이 재판에 넘겨져 실형을 선고받았다. 일부는 재판 중이다.
이 중사의 아버지 이주완씨는 “특검 수사로 군이 어떻게 한 사람을 벼랑으로 몰아갔는지, 경천동지할 사실들을 알게 됐지 않나”라며 “3주기가 지나니, ‘보내줘야겠다’는 생각을 들었다”고 했다. 재판이 끝날 때까지 자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수염은 여전했다. 이씨는 아직 딸의 군번줄을 목에 걸고 지낸다.
3년이 지나 열린 장례식에서 추모와 애도는 더 짙었다. 이날 장례식장엔 이 중사와 유족의 지인들, 군 사망 유가족과 군 관계자들이 찾아와 조문했다. 단체로 조문을 온 공군 15비행단 군인들에게 이씨는 “예람이 몫까지 선임이 후임을, 후임은 선임을 잘 챙겨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씨는 “보기 싫고, 밉기만했는데, 막상 예람이 가는 날 많이 와주니 오히려 고맙단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 중사의 친구들은 그가 “친절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손을 내밀던 친구였다”고 입을 모았다. 합창 수업을 할 때 앞장서서 노래를 불렀고, ‘짝사랑하는 친구에게 선물을 대신 전해줄 수 있냐’는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던 친구였다 했다. 친구 B씨는 “그토록 밝은 친구였기에, 처음 일을 전해 들었을 때 몇 번을 아닐 거라 생각했었다”고 했다.
어머니 박씨는 딸이 “멋있고 씩씩하게 살았다고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참군인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우리 딸의 마음을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한다”며 “마음이 약해서가 아니었다는 걸, 본인이 할 수 있는 선택을 모두 다 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는 걸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곱씹어 말했다.
이날 오후 7시에는 장례식장에서 ‘이예람 중사 추모의 밤’이 열렸다. 군 사망 사건 유가족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국회의원 등 6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은 유족들의 뼈를 깎는 노력이 없었다면 이 중사 사건이 군사법원법 개정, 국가인권위원회 군인권보호관 신설 등으로 이어질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방혜린 군인권센터 국방감시팀장은 “아직 가해자들의 항소심이 조용히 계속되고 있고 도입된 제도도 시행착오를 겪는 중”이라면서도 “그런 것보다 오늘은 오롯이 이 중사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장례는 제15특수임무비행단 작전지원전대의 전대장장으로 3일간 치러진다. 영결식은 오는 20일이다. 이 중사는 국립서울현충원 충혼당에 안장될 예정이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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