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뭐래도 '돌풍' 정수진 캐릭터의 절대반지는 김희애다

박진규 칼럼니스트 2024. 7. 18. 16:3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돌풍’, 김희애 외에 다른 대체 배우 떠오르지 않는 까닭

[엔터미디어=수사연구 박기자의 TV탐정] 넷플릭스 오리지널 <돌풍>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강렬한 한국식 판타지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골룸을 비롯한 수많은 인물들은 마법의 절대반지 앞에서 눈이 먼다. 반면 <돌풍>의 판타지 서사는 정치와 돈, 정치와 권력이 읽힌 한국사의 마법을 청와대 판타지로 풀어낸다. 그 마법의 그릇 안에 들어가는 재료는 당연히 한국 정치사의 밀레니엄 이후 새로운 격정의 순간들이다. 전직 대통령을 비롯한 유력 정치인들의 자살, 태블릿 PC에 담긴 실세의 사진과 서류, 대통령 탄핵, 녹취와 몰래카메라에 이르기까지. 몰카와 녹취는 있어도 '백업' 없이 뒤통수를 치고 또 치는 것이 어쩌면 한국 정치사의 판박이 같은 면도 있다.

밀레니엄 이전 한국사 드라마는 대부분 선악의 구도가 분명했다. 악은 일제거나, 북한이거나 혹은 한국의 독재자, 혹은 악덕 재벌가였다. 하지만 밀레니엄 이후의 한국사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이제 대중들은 자기가 믿고 싶은 세력을 과도하게 추종하거나, 사회적으로 서로를 혐오하거나 혼란 속에 갈팡질팡하다 세상에 대한 믿음을 잃는다.

박경수 작가의 <돌풍>은 이 혼란의 시기를 뻔한 선과 악의 대립으로 풀지 않는다. 그렇다고 악이 악을 죽이고 악으로 군림하는 서사도 아니다. 일단 <돌풍>에서 대통령 장일준(김홍파)은 독재자거나 악해서 시해 당하는 게 아니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두 번째 노벨상 수상자에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대통령이다. 다만 길가에서 똥을 눴고(사람들한테 손가락질 받을 짓을 했다는 뜻) 그걸 흙에 파묻는 고양이처럼 모르는 척 할 작정일 따름이었다. 사람이란 대통령이건 평범한 사람이건 대체로 그러하니까. 권력과 물욕에 쉽게 눈멀고 쉽게 타락하면서 너무 썩지 않으려고 노력할 뿐.

하지만 장일준의 오른팔, 왼팔이었던 박동호(설경구)와 정수진(김희애)은 그 지점을 각각 다르게 바라본다. 박동호가 양심을 대표한다면 정수진은 실리를 대표한다. 박동호는 양심을 저버린 대통령을 용서할 수 없었고, 정수진은 실리를 위해 장일준을 끝까지 돕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박동호의 1차 시해시도는 살인으로 가지 못했지만, 결국 대통령을 시해한 것은 정수진이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을 구하기 위해서는 대통령 시해가 그녀에게 실리였다.

<돌풍>은 절대 악이 아닌, 한때 같은 편이었던 양심과 실리를 대표하는 정치인이 어떻게 정치와 권력의 권모술수를 써가며 가면 속의 얼굴을 드러내며 싸우는지 첫 회부터 마지막까지 빠른 속도로 끌고 간다. 그 사이 서로에게 돌을 던지고 수많은 것들을 조작한다. 대진그룹의 강회장(박근형)도 이 조작에 가담하고, 검사와 헌법재판소 판사들도 이 돌풍에 휩쓸린다.

박동호는 결국 청와대 뒷산 절벽에서 이 싸움을 끝내기 위해 스스로 뛰어내린다. <반지의 제왕>에서 골룸은 마지막에 절대반지를 빼앗아 기뻐하다 용암에 빠져죽는다. 하지만 박동호는 대통령이란 권력의 절대반지를 정수진에게 내던지고 스스로 뛰어내린다. 양심을 지키는 자가 할 수 있는 마지막 공격은 죽음이 전부라는 듯. 이후 정수진은 박동호 시해 혐의는 벗어나지만 생방송 몰래카메라에 장일준 시해를 스스로 털어놓는 모습을 세상에 모두 공개한다. 감옥에서 정수진은 '민주주의 만세'라고 벽에 써놓은 문구를 발견하고 오열한다. 그 문구는 젊은 시절 독재와 맞서 싸운 정수진이 투옥됐을 때 스스로 새겼던 글자이기 때문이다.

<돌풍>에서 박동호와 정수진은 비슷한 듯 하지만 닮은 꼴이 아니다. 일단 설경구가 연기한 박동호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의 자신의 신념과 페이스를 유지한다. 그는 달라지는 인물이 아니다. 하지만 김희애가 연기한 정수진은 훨씬 인물의 감정 플롯과 변화가 요동친다. 정수진은 처음과 중간 마지막이 다르다. 신념도 달라지고, 냉철한 면과 감정적인 면모를 모두 보여줘야 한다. 나약함과 강인함이 한 회차에서 몇 번이나 반복된다. 점점 몰락해가는 인간의 비참함도 보여줘야 한다. 게다가 정수진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스스로를 계속 연기하는 연극적인 존재기도하다.

<돌풍> 공개 후 베테랑 배우 김희애의 연기에 대한 호불호 평이 이어졌다. 이 배우 특유의 계산된 감정 연기가 식상하다는 평부터 너무 작위적이라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김희애는 빠른 템포의 드라마 안에서 가장 적절하고 확실하게 정수진의 감정을 보여주는 데 확실히 성공했다. 모든 감정을 소화화며 확실한 딕션으로 대사를 읊는 그녀의 훈련된 연기가 <돌풍>에는 필요했다. 김희애가 아니면, 정수진은 박동호의 존재감과 빠르게 전개되는 사건의 돌풍 속에 그냥 묻혀가는 캐릭터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김희애는 이 돌풍 같은 이야기 안에서 박동호보다 더 선명할 정도로 정수진 캐릭터를 끌어냈다. 특히 김희애는 <돌풍>의 후반부 조작된 태블릿을 가지고 이장석(전배수) 지검장과 대응하는 차분한 연기에서 배우로서의 확실한 힘을 보여준다. 다만 과잉된 울분의 감정을 표출하는 연기에서 이 배우도 이제는 좀 다른 표정과 표현의 자연스러운 치트키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 부분은 있었다. 하지만 약간의 아쉬움은 있어도 <돌풍>의 김희애 외에 정수진 역을 연기할 다른 스타성 있는 배우는 떠오르진 않는다. 박동호 캐릭터의 다른 배우들은 상상할 수 있지만, 정수진 캐릭터의 절대반지는 김희애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넷플릭스]

Copyright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