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 넘게 횡령·배임해도 고작 ‘집행유예’…솜방망이 처벌에 멍든 은행[은행에 숨은 도둑들]

2024. 7. 18.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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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 내부통제 강화에도 대형 금융사고 연이어 발생
“완벽한 관리 힘들어” 자체 내부통제 방안 ‘무용론’ 솔솔
횡령·배임 절반이 집행유예…처벌 강화로 ‘사전 예방’ 해야
[게티이미지뱅크]

[헤럴드경제=김광우·홍승희·강승연 기자] ‘47.8%’. 횡령·배임을 저지른 경제사범들은 징역을 선고받아도 절반 가까운 47.8%가 결국 집행유예의 판결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권에서 거액의 횡령·배임 등이 연달아 적발되고 있지만, 그 처벌은 ‘솜방망이’라는 얘기다.

횡령·배임의 시작은 금융사 직원의 ‘도덕적 해이’로부터 시작된다. 은행들은 최근 금융사고들이 적발된 게 자사가 내부통제를 강화한 결과라고 설명하지만, 은행원들의 속얘기는 다르다. 지점에서 일어나는 은행원의 편법행위를 100% 시스템으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없다는 게 중론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한탕주의’ 범죄를 유발한다고 지적받는 경제 사범 처벌 수위를 강화하는 등 사전 예방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수차례 내부통제 강화에도…은행 ‘거액 횡령·배임’ 지속

18일 은행연합회 은행 경영공시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서 2021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발생한 금융사고는 총 125건으로 집계됐다. 금융사고는 2021년 43건, 2022년 40건, 2023년 36건 등이었다.

하지만 사고액은 되레 커지는 추세를 보였다. 사고액이 100억원 이상으로 집계된 대형 금융사고는 지난 2021년부터 2023년까지 2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올 들어서만 100억원 이상 금융사고만 3건이 발생했다.

서울 한 시중은행 영업점의 창구에서 직원이 업무를 보고 있다.[연합]

은행들은 횡령 등 대형 금융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자체적인 내부통제 강화 방안을 내놓으며 ‘재발 방지’를 약속해 왔다. 지난 2022년 700억원대 횡령 사건이 발생한 우리은행은 지난해 7월 지점장급 내부통제 전담인력 33명을 영업본부에 신규 배치하는 등 내용을 담은 새로운 내부통제 방안을 내놓은 바 있다.

올해 총 3건의 배임 사고를 공시한 국민은행 또한 최근 금융사고 예방 강화를 위한 지역그룹 내부통제팀을 신설했다. 부점장 및 팀장급 2인 1조를 각 지역그룹으로 파견해, 영업 현장의 내부통제 취약부문을 점검하는 제도다. 디지털 기반의 상시감사체계 시스템도 운영 중이다.

신한은행은 지난 4월 1일부터 기업금융 및 외환파생운용 담당직원에 대해 특별명령휴가를 도입했고, 장기근무시 담당기업을 2년마다 순환해야 한다. 내년 말까지 준법감시부 인력도 전체 직원의 0.8% 이상 확보하고, 준법감시부서 내 전문인력도 20% 인상하겠다는 계획이다.

금융당국은 지난 2022년 우리은행 700억원대 횡령, 2023년 경남은행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1000억원대 횡령 등이 연달아 터지자 칼을 뽑아들었다. 은행의 준법 감시부서 인력 및 전문성 확충, 장기 근무자 감축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내부통제 혁신방안을 발표하고, 이듬해에는 거액 횡령이 나타나기 쉬운 PF 영업 전수조사 등을 진행했다. 은행들은 그 후속조치로 현재 ▷장기근무자, 순환근무 대상 직원 5% 이하로 관리 ▷준법감시부서 전문인력 확충 ▷내부고발제도 의무화 등 내부통제 강화 방안을 실행하고 있다.

내부에선 ‘무용론’…“사각지대 여전하고 관리 힘들어”

그럼에도 내부통제 제도의 사각지대를 이용하는 사례는 이어진다. 최근 발생한 우리은행 100억원대 횡령 사건 또한 이에 해당한다. 횡령 사건을 일으킨 기업대출 담당 직원 A씨는 단기여신을 통해 감시망을 피했다. 대출서류는 통상 3개월마다 감리하는 데다, 가계대출 등은 본점에서 심사 및 승인 절차를 밟지만 기업 단기여신의 경우 지점에서 대출 전 과정을 처리하는 맹점을 활용한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은행 내부에서는 자체적인 내부통제 방안들이 직원 개인의 일탈까지는 막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한 시중은행에서 부지점장으로 근무하는 A씨는 “금융사고가 반복될 때마다 지점 차원의 내부통제 등을 강조하는 공문이 내려오지만, 사실상 직원 개개인의 손을 거쳐야 하는 은행업 특성상, 지점 내에서는 완벽한 관리가 힘든 부분이 있다”고 토로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특히 기업대출의 경우 각 지점과 고객을 담당하는 직원의 재량이 더 큰 경우가 많다”면서 “현재 자체적인 내부통제 구조에서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모든 대출에 대해 일일이 절차를 확인하고, 대출금이 올바르게 사용됐는지 대조해 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횡령·배임, 집행유예가 절반…“처벌 강화로 사전 예방해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에서 직원이 5만원권을 정리하고 있다.[연합]

은행들에서는 자체적으로 금융사고를 적발하는 경우가 늘어나며, 내부통제 강화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자체 내부통제에 따라 금융사고가 적발될 경우, 사고 발생 이후 일정 시간이 소요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사고액의 환수가 어려운 경우가 대다수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이 금감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금융권에서 발생한 횡령액 중 환수된 금액은 9.7%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은행원들의 ‘도덕적 해이’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도록 사법적 차원의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자체적인 내부통제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횡령 등 경제 사범에 대한 처벌이 약한 풍토가 은행원들의 ‘한탕주의’ 횡령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실제 대법원 2023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 2022년 횡령·배임으로 집행유예를 받은 비중은 47.8%로 절반에 달한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해외 선진국과 비교해 가벼운 처벌, 낮은 환수율 등은 은행원 횡령·배임의 원인 중 하나”라며 “내부통제 고도화와 함께 특정 범죄 동기가 있는 은행원을 억제할 수 있는 처벌이 없다면, 지금과 같은 ‘한탕주의’를 예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액과 더불어 손해배상액까지 완전히 환수할 수 있을 정도의 양형 기준이 정비된다면 범죄 동기가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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