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꿈 펼칠 수 있게”… 천재 애니메이터 유작 日서 개봉

김동현 기자 2024. 7. 18.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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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최다 사상자 낸 교애니 방화사건 5주기
’천재 감독’ 유작 그림책, 스승이 직접 영화化
”상대에 대한 배려가 진짜 용기, 시사점 있어”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키가미 요시지(木上益治). '천재 애니메이터'란 찬사를 받던 그는 2019년 7월 18일 36명의 사망자를 낸 '교토 애니메이션 방화 사건'으로 사망했다. 향년 62세였다./NHK

일본에서 단일 사건으로는 전후(戰後)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교토 애니메이션 방화 사건’이 18일로 5주기를 맞았다. 당시 사건으로 인한 부상자(33명) 상당수는 아직 고통 속에 치료를 받고 있다. 36명의 사망자 유족들도 트라우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여태 정신과 통원을 다니는 이들이 많다. 이 가운데 당시 한 사망자가 남긴 그림책이 최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유족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다고 17일 NHK가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일본에서 지난 6일 애니메이션 영화 ‘작은 잼과 고블린 옵’이 전국 상영관에 개봉했다. 마법 견습생 소년 ‘잼’을 주인공으로 한 성장 영화다. 작중 잼은 마법 스승인 할아버지로부터 ‘진정한 용기를 내는 자야말로 마법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 이 빵을 먹으면 딱 한 번 마법을 부릴 수 있다’며 빵 하나를 선물 받는다. 이후 잼은 굶주리던 괴물 ‘옵’을 만나 친해지는데, 그에게 마법을 포기하고 빵을 양보하는 순간 기적처럼 마법을 쓸 수 있게 된다.

지난 6일 일본에서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작은 잼과 고블린 옵' 포스터.

‘진정한 용기는 사람을 배려하는 데에서 비롯된다’는 교훈을 담은 이 애니메이션은 ‘교토 애니메이션’(교애니) 소속 감독 키가미 요시지(木上益治)가 20대 초반이었던 1989년 출간한 동명의 그림책을 원작으로 했다. 1957년 오사카에서 태어나 ‘일본 애니메이션의 아버지’ 데즈카 오사무(1928~1989·대표작 ‘철완 아톰’ 등) 작품을 보며 애니메이션 감독의 꿈을 키운 그는 1991년 교애니에 입사, 특유의 현실적이면서도 우스꽝스러운 그림체로 단숨에 ‘일본 애니메이션계를 이끌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그가 교애니 입사 전후로 참여한 ‘아키라(1988년 개봉)’, ‘반딧불이의 묘(1988)’, ‘마루코는 아홉살(1990)’, ‘목소리의 형태(2016)’ 등은 일본에선 물론 해외에서도 개봉돼 주목을 받았다.

키가미는 ‘나무 위에 그릴 수 없는 것은 없다’는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교애니 동료들은 물론 애니메이션 업계 전체에서 스타로 우뚝 섰다고 NHK 등은 보도했다. ‘나무 위’는 그의 성씨인 ‘키가미(木上)’에서 딴 표현이다. 그렇게 세계적인 애니메이터로 승승장구하던 키가미는 2019년 7월 18일 오전 10시 35분, 교애니 제1스튜디오에서 평소처럼 작업하던 중 순식간에 건물을 집어삼킨 화마에 목숨을 잃었다. 향년 62세였다.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혼타 토시유키(74)가 그의 제자이자 2019년 '교토 애니메이션 방화 사건'의 희생자였던 키가미 요시지(1957~2019)의 유작 '작은 잼과 고블린 옵(그림책)'을 들어보이고 있다./ascii.jp

생전 키가미는 화려한 작업 솜씨와는 상반되게 소극적 성격의 소유자로, 직접 감독을 맡는 대신 ‘조력자’를 자처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언론 인터뷰에 나선 적도 손에 꼽는다고 NHK는 보도했다. 그런 키가미의 유작인 ‘작은 잼과 고블린 옵’은 생전 그를 무척 아꼈다고 알려진 스승이자, 그를 교애니로 직접 영입한 혼다 토시유키(本多敏行·74)가 주도해 애니메이션화(化)했다. 혼다는 키가미의 죽음을 애도하던 중 그가 사무실에 남긴 ‘작은 잼과 고블린 옵’ 그림책에 “아이들이 꿈을 펼칠 수 있게 만드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엽서가 꽂혀 있는 것을 보고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그렇게 사건 1주기였던 2020년 7월 키가미의 생전 동료들을 모아 제작에 돌입했고, 올해에 이르러 관객들에게 선보이게 됐다.

혼다는 키가미에 대해 “보통 (애니메이터는) 리얼하거나 개그스러운 그림체 중 한쪽에 두각을 나타내기 마련인데, 그는 양쪽에서 모두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며 “이 같은 압도적인 실력에도 항상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칭찬받게 해주는 것이 그만의 ‘다정함’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키가미가 남긴 그림책은 지금 시대에도 시사점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훌륭한 생각을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공양(供養)이자 남은 자의 몫”이라고 NHK에 전했다.

지난 6일 일본에서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작은 잼과 고블린 옵' 한 장면. 주인공인 마법 견습생 '잼(왼쪽)'이 우연하게 괴물 '옵'을 만나면서 성장하는 이야길 담았다./NHK

이날 개봉한 ‘작은 잼과 고블린의 옵’에는 원작에 없었던 할아버지의 마지막 대사가 추가됐다. ‘스스로 느끼고,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행동하라’란 말이었다. 이를 직접 적었다는 혼다는 “키가미가 말한 ‘용기’란, 작중 ‘잼’처럼 다른 사람에게 강요되는 게 아닌 스스로 깨닫고 결정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작품을 감상한 관객들도 “상대에 대한 배려야말로 진짜 용기임을 배웠다”는 등의 후기를 남겼다고 NHK는 보도했다.

교애니 방화 사건 범인 아오바 신지(青葉真司·46)는 지난 1월 교토지법에서 사형 판결을 받고 항소했다. 그는 과거 교애니가 주최한 소설 공모전에 지원했다가 탈락한 것을 계기로 악감정을 품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알려졌다. 아오바의 변호인 측은 그가 망상 장애로 인한 심신상실 상태였다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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