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소녀상’ 옆에 선 ‘노동자상’···철거명령 놓고 지자체·시민사회 격돌
경남 거제 ‘평화의 소녀상’ 옆에 선 ‘일제 강제징용 노동자상’ 동상이 존립 위기를 맞고 있다. 거제시가 “시유지에 무단으로 세운 노동자상”이라며 철거를 요구하고 있지만, 시민사회단체는 소녀상과의 형평성 등을 이유로 반발하며 맞서고 있다.
거제시는 일제강제징용노동자상 거제건립추진위원회(추진위)가 지난 11일 ‘노동자상의 자진철거 거부’ 의견서를 제출함에 따라 향후 방침을 검토 중이라고 18일 밝혔다. 원상복구 명령에도 추진위가 불응하면 고발과 함께 무단 점·사용에 따른 변상금 부과, 행정대집행을 통한 강제철거도 고려하고 있다.
추진위는 의견서에서 “거제시민의 노력으로 건립된 노동자상”이라며 “거제시는 법적 조치를 검토할 게 아니라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피해자를 추모하는 건립 의미를 온전히 지킬 수 있도록 지방정부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거제시는 지난 5일 추진위에 거제시문화예술회관 내에 설치한 노동자상을 오는 8월21일까지 철거하라는 사전통지서를 보냈다. 거제시는 추진위가 무단으로 조형물을 설치한 만큼, 추진위의 의견서를 검토한 뒤 원상복구 명령을 내리고 행정절차대로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노동자상은 2023년 5월 거제 노동·시민사회단체와 5개 정당으로 구성된 추진위가 3700만 원의 성금을 모아 1년 만에 세운 조형물이다. 넓이 1㎡ 공간에 세운 노동자상은 갈비뼈가 드러나는 깡마른 체구에 오른손엔 곡괭이를 들고 왼손으로 햇빛을 가리며 무엇가를 그리워하는 형상을 하고 있다.
강제징용 노동자상은 서울·부산·대전·제주 등 9곳, 외국에는 일본 오사카 1곳에 설치돼 있다. 추진위는 ‘거제시 공공조형물의 건립 및 관리 등에 관한 조례’에 따라 소녀상 옆에 노동자상을 세우겠다며 지난해 말와 올해 초 두차례 걸쳐 거제시에 설치 허가를 요청했다.
그러나 거제시 공공조형물 건립 심의위원회는 2023년 11월과 지난 4월 심의회를 열고 노동자상 설치를 불허했다. 당시 심의위는 “주민 반대가 있고, 설치 장소가 거제문화예술회관의 목적과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추진위는 “친일 반민족 결정”이라며 두 달간 규탄 집회를 했다. 갈등이 해결되지 않자 결국 추진위는 지난 6월 28일 장승포 거제시문화예술회관 내에 노동자상 설치를 강행했다.
노동자상 건립에 대한 거제시 방침이 10년 전 소녀상 건립 때와 비교할 때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거제 ‘평화의 소녀상’은 2014년 1월 거제시민의 성금을 모아 ‘일본군위안부피해자추모상 건립추진위원회’가 거제시민문화회관 내 현 위치에 세웠다. 당시 거제시는 보조금 1000만원을 지원하고, 시유지도 제공했다.
거제시 관계자는 소녀상 건립 형평성 논란에 대해 “이전에 벌어진 일”이라며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반면 노동자상 건립에 대해선 “무단점용 한 것이라 행정절차에 따라 진행할 계획”이라며 “행정대집행 여부는 논의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추진위 관계자는 “심의위가 편향된 인사를 위원장으로 호선하는 등 불공정한 결정을 내려 인정할 수 없다”며 “거제시가 노동자상을 강제철거하면 강력한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훈 기자 j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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