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릴 수 있는데 경제논리에 막혀…신약 급여 등재율, 일본 절반
우리나라의 신약 급여 등재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하위권에 속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출시 이후 급여 등재까지 걸리는 시간도 OECD 평균보다 길었다. 건강보험 재정 악화를 이유로 '경제성 평가'를 강화한 게 이유로 꼽히는데 평가가 어려운 희귀질환까지 치료 기회를 제한하는 건 과도하다는 지적이 인다.
18일 미국 제약연구 및 제조연합(Pharmaceutical Research and Manufacturers of America, 이하 PhRMA)이 2012~2021년 출시된 460개 신약의 접근성을 분석한 결과, 한국의 신약 급여 등재율은 22%로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21번째다. 급여 등재율이 가장 높은 곳은 미국으로 85%였다. 독일 61%, 영국 48%, 이탈리아 44%, 프랑스 43%, 스페인 37% 등 유럽 주요 국가가 모두 우리나라보다 높다. 옆나라 일본 역시 48%로 우리나라보다 2배 이상 높았다.
문제는 신약의 경우 비용 효과성이 되레 급여 등재의 허들로 작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예컨대 효과가 좋을수록, 즉 환자를 오래 살릴수록 약제 투약 기간이 늘어나 전반적인 비용이 상승하고 비용효과성을 입증하기가 오히려 어렵게 된다.
희귀질환 역시 기존 치료제가 없는 경우가 많아서 비용효과성을 입증하는 데 애를 먹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난해 11월 국가관리 희귀질환에 지정된 '트랜스티레틴 아밀로이드 심근병증'(ATTR-CM)은 '트랜스티레틴'이란 단백질이 심장 근육에 비정상적으로 쌓이는 병이다. 주로 65세 이상 고령에서 발생하는데 별다른 처치가 없으면 2~3년 만에 사망할 만큼 치명적이다.
과거에는 희귀질환으로 인지도가 낮아 자신이 이 병을 앓는지조차 모르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2019년 미국에서 신약이 출시되고, 이를 진단하는 핵의학 검사가 개발하면서 관리가 가능한 질병으로 탈바꿈했다. 우리나라에도 2020년 도입돼 현재까지 최초이자 유일한 치료제로 꼽히고 있지만 미국, 일본, 독일, 영국 등과 달리 '경제성 평가'에 발목이 잡혀 급여 적용은 되지 않는 실정이다.
호주는 우리나라 건강보험 급여인 의약품 급여제도 외에 보건부가 별도의 기금을 사용해 '희귀필수의약품 무상공급 프로그램'(LSDP)을 운영하고 있다. 급여 결정 과정에 자문위원회로부터 임상적 유효성은 인정받았지만 비용효과성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 제약사는 해당 프로그램을 통한 재정 지원을 신청할 수 있게 제도를 정비했다. 신약이 너무 비싸 치료도 하지 못하고 죽는 희귀질환자를 위해 호주 정부에서 치료비 전액을 지원한다.
독일은 희귀의약품(Orphan Medicinal Products)과 극희귀의약품(Ultra Orphan Medicinal Products)에 대해 경제성 평가를 수행하지 않는다. 단, 추정 연간 매출이 5천만 유로를 초과하는 희귀의약품에 대해서만 비용 효과성을 분석한다. 프랑스도 이와 비슷한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혁신적이지만 고가의 신약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경제성 평가를 유연하게 가져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환자 혜택을 고려해 보다 유연한 제도 개선책이 마련돼야 할 때"라고 제안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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