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무구조도 일찍 내면 두 달만에 또 작성?… 조기제출 부담스런 은행

연말 인사이동 이뤄지면 책무구조도 재작성·이사회도 또 소집…금감원 "중요한 절차는 지켜야"

책무구조도 제출 관련 해설서/그래픽=이지혜

금융당국이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책무구조도 조기 제출을 독려하지만 은행은 여전히 부담스러운 눈치다. 10월말까지 책무구조도를 일찍 제출하더라도 연말에 임원 인사가 이뤄지면 두 달 만에 이를 다시 작성하고 이사회 승인까지 얻어야 한다.

18일 금융권과 금융당국에 따르면 은행들과 금융감독원은 책무구조도 조기 제출과 그에 따른 컨설팅을 준비 중이다.

금감원은 책무구조도를 오는 10월31일까지 일찍 제출한 은행과 금융지주를 대상으로 내부통제 관리 의무 시범운영 기간을 둔다. 이 기간에는 은행·지주 임직원이 내부통제 관리 의무에 소홀해도 제재를 가하지 않는 인센티브가 주어진다.

금감원은 모든 은행이 시범사업에 참여할 거라고 예상하진 않는다. 조기 제출 기한인 10월 말과 본격적으로 제도가 운영되기 직전인 12월 말에 책무구조도 제출이 몰릴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들은 통상 연말에 이뤄지는 조직 개편과 대규모 인사를 이유로 책무구조도 조기 제출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책무구조도는 금융사 개별 임원의 내부통제 책무가 무엇인지 일일이 규정한다. 연말에 조직개편과 인사이동으로 특정 내부통제를 책임지는 임직원이 바뀌거나, 임직원의 직책이 변경되면 책무구조도를 다시 작성해야 한다.

특히 재작성된 책무구조도는 다시 이사회 의결을 거쳐 금융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10월 말에 책무구조도를 조기 제출한 은행은 연말 인사이동에 맞춰 2개월 만에 책무구조도를 다시 작성하고, 이사회까지 또 소집해야 하는 부담을 안아야 하는 셈이다. 최근 사외이사들이 '거수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어 이사회 이전에 안건을 설명해야 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

장기적으론 금융사의 조직 개편이 항상 책무구조도 작성을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고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경영환경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기 위한 에자일 조직 등 유연한 조직개편도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에 시범운영에서 책무구조도 제출 절차를 일부 완화해달라는 의견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기왕 금융당국이 시범운영 기간에 인센티브를 준다고 했으니 책무구조도를 조기 제출하는 경우만이라도 이사회 의결 절차를 면제해주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연말 조직개편과 인사에 따른 책무구조도 재작성 부담을 인지하고 있지만 중요한 절차를 생략하는 방식의 인센티브는 고려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시범운영 기간의 비조치 방침은 정해진 절차를 다 지켰을 때를 전제하는 것"이라며 "앞으로 금융사의 조직 개편이나 인사이동이 있을 때마다 매번 책무구조도 재작성과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하니 이번만 면제한다고 상황이 달라지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칠 금융감독원 전략감독 부문 부원장보가 11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 본원 브리핑실에서 개정 지배구조법 시행 관련 책무구조도 시범운영 계획 및 제재 운영지침(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창섭 기자 thrivingfire21@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