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뜬 별과 새…한국화로 그린 자연의 노래

김슬기 기자(sblake@mk.co.kr) 2024. 7. 18.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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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는 망한거 아니냐고 늘 말하더라. 내 생각은 다르다. 오히려 블루오션이다. 이런 문제의식으로 데뷔 때부터 실험을 숱하게 해왔다."

영화 '취화선'의 그림을 그렸고, 이청준의 평생 벗이자 전집 표지를 모두 그린 작가는 지난해 교편을 내려놓은 후 더 자유로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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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고재 김선두 개인전 ‘푸르른 날’
‘낮별’에서는 과자봉지 탐하는 새
‘아름다운 시절’은 인물의 전성기
그려내며 삶의 절정 담아낸 전시
낮별-옥수수 [학고재]
“한국화는 망한거 아니냐고 늘 말하더라. 내 생각은 다르다. 오히려 블루오션이다. 이런 문제의식으로 데뷔 때부터 실험을 숱하게 해왔다.”

영화 ‘취화선’의 그림을 그렸고, 이청준의 평생 벗이자 전집 표지를 모두 그린 작가는 지난해 교편을 내려놓은 후 더 자유로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김선두(66·중앙대 한국화과 명예교수)가 4년 만에 학고재에서 개인전을 연다. 8월 17일까지 서정주 시에서 따온 ‘푸르른 날’을 제목 삼아, 삶의 본질에 관한 고민을 담은 작품 36점을 소개한다.

개막일인 17일 만난 작가는 “한국화의 실험은 수묵과 붓으로 하는 거다. 많은 화가들이 붓을 등한시해왔는데 이번 전시를 통해 ‘낡은 방식으로 새롭게 이야기하기’를 보여주고 싶다. 우리 미학과 전통을 새롭게 풀어가보고 싶다. 이번 전시는 삶의 절정(絶頂), 엑스터시를 다룬 작업을 걸었다”고 말했다.

작가는 장지에 분채를 여러 번 쌓는 기법으로 색을 만들어내면서도, 동시에 물감이 투명하게 발색되는 효과를 통해 난초를 치듯 일필휘지 붓터치를 더했다. 학창시절 1만장의 난초를 치며 훈련했다는 노 작가의 화폭에는 오히려 어린아이가 그린 듯 쉽고 담백한 이미지가 가득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새’와 낮에 뜬 별과 달과 꽃이 어우러진다.

가장 많이 걸린 ‘낮별’ 연작에는 그림마다 새들이 보인다. 박새, 곤줄박이, 까치가 하나 같이 먹이를 향해 눈을 부라리고 있다. 양파링, 오예스, 꼬깔콘 등 과자봉지가 그려졌는데 이 버려진 빈봉지를 탐하는 새들의 불쌍한 사연이 그림 속에 숨이 있다. 과자를 바라보는 새는 욕망을 좇는 우리 자신의 은유다.

On the Way in Midnight [학고재]
“2005년 무렵 당진에서 별이 쏟아지는 밤풍경을 봤는데 너무 황홀했다. 낮에도 별이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하곤 있지 않나. 그런데 낮별이 보이지 않는데서 빛은 현상이고, 별은 본질이라는 삶의 깨달음을 얻었다. 이후에 내 그림에 낮별이 무수히 그려진 이유다.”

밤길의 정취를 담은 ‘On the Way in Midnight’에는 구비구비 산길을 걷는 사람이 그려져 있다. 푸른 밤하늘에 걸린 달이 크고 넉넉하다. 시와 글을 즐겨 쓰는 그의 그림엔 오랫동안 모셨던 선배 예술가 이청준이 영향이 짙게 남았다. 작가는 “이청준 산문 ‘눈길’을 보며 구상한 그림들이다. 장흥에서 살던 유년시절, 8리가 넘는 산길을 뛰어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밤은 무섭고 외롭지만 달이 떠있으면 걸어갈 만하다는 이야기를 담았다”라고 설명했다.

작가의 주제의식을 드러낸 대표작은 단연 ‘싱그러운 폭죽’이다. 꽃이 피는 찰나를 폭죽이 터지는 순간처럼 포착했다. 8폭의 캔버스를 붙여 그린 폭 8m 초대형 작품 앞에 선 작가는 “꽃은 땅이 쏘는 폭죽이구나 싶었다. 현대미술은 앤디 워홀 이후로 정의가 바뀌지 않았나. 이제는 깨달음의 그림을 그리는 시대다. 꽃의 생애에서 절정의 순간을 묘사했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허무를 표현한 그림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초상화 연작 ‘아름다운 시절’은 각 인물의 생에서 가장 찬란한 순간을 시적으로 그려낸다. 시인 김수영, 이소룡, 만화가 이말년(유튜브 침착맨), 야구선수 선동열, 축구선수 박규현 등의 초상을 그리고 이들에게 직접 자신의 일상 스케줄을 적어넣도록 했다. 학교에 있을때도 소문난 운동광·축구광이었던 작가답게 운동선수가 주로 모델이 됐다. 작가는 “스케줄을 쓰고, 위에 덧쓰고 하다보니 지워지거나 보이지 않는 글자가 됐다. 일상의 반복성을 담아낸 셈인데, 그 작은 변화들이 모여 우리 삶을 이룬다는 걸 보여주는 작업이다”라고 말했다.

‘싱그러운 폭죽’ 앞에 선 김선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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