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약 레켐비, 여성과 非백인 환자에게 효과 없나
‘남성·백인·APOE4 유전자가 없는 환자’에게만 처방될 듯
알츠하이머병 진행을 늦추는 신약인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가 여성이나 비(非)백인 또는 APOE4 유전자를 가진 사람에게는 듣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3분의 2가 여성인 만큼 타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
묵인희 국가치매극복연구개발사업단장(서울대 의대 생화학교실 교수)은 지난 17일 “여러 국제 학술지에 실린 연구결과와 우리 사업단에서 분석한 결과를 보면 레켐비가 백인이나 남성, APOE4 유전자가 없는 환자에게만 제한적으로 효과가 날 것으로 예측된다”고 말했다.
알츠하이머병은 뇌세포 안팎에 비정상적인 단백질인 아밀로이드 베타와 타우가 쌓이면서 뇌세포가 손상되는 질환이다. 이 때문에 기억력, 사고력 등 인지능력이 저하된다. 한번 손상된 뇌세포는 다시 정상으로 돌릴 수 없다. 특히 치매 증상이 나타나기 20년 전부터 아밀로이드 베타가 천천히 쌓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바이오젠과 일본 에자이가 공동 개발한 레켐비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뇌에서 응집되는 것을 막는 치료제다. 아밀로이드 베타는 원래 신경세포를 보호하는 단백질이지만, 세포에서 떨어져 나와 덩어리를 이루면 오히려 신경세포에 손상을 준다. 레켐비는 지난해 7월 미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뒤 일본과 중국에서도 승인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지난 5월 승인했다.
◇임상시험 공개 후 한계 지적 잇따라
에자이가 레켐비에 대한 임상시험 결과를 공개한 후 여러 연구자들이 레켐비가 여성에게 효과가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미국 하버드 의대 매사추세츠종합병원과 브리검여성병원 알츠하이머연구·치료센터 연구진은 지난해 5월 레켐비가 여성에게 효과가 없다는 연구 결과를 ‘미국의사협회지(JAMA) 신경학’에 실었다. 연구진은 “성별에 따른 차이 해결을 위한 연구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 호주 사우스 웨일즈대 공동 연구진 역시 지난 5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한 논평 논문에서 “레켐비가 여성에게 효과가 없다”며 “인공지능(AI)과 유전자 편집 등 최첨단 기술을 임상 연구에 적용하는 시대임에도 성별처럼 가장 기본적인 변수가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이해가 놀라울 정도로 부족하다”고 밝혔다.
약물이 효과가 있는지 알아보려면 임상시험 데이터에서 통계학적으로 유의미한지 알아보는 수치인 ‘조정평균차이(adjusted mean difference)’를 보면 된다. 레켐비는 임상시험 결과 이 수치가 성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남성은 -0.73인데 비해 여성은 -0.20에 그쳤다. 묵인희 단장은 “이 수치가 -0.50에서 음수쪽으로 커질수록 약물이 효과가 있다는 의미”라며 “즉 레켐비는 남성에게는 효과적이지만 여성에게 전혀 효과가 없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묵 단장 연구진은 추가로 아시아인과 알츠하이머병의 주요 돌연변이 유전자인 APOE4가 두개 있는 경우에도 레켐비가 효과 없음을 발견했다. 조정평균차이가 아시아인은 -0.35에 그쳤다. 반면 백인은 -0.49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APOE4 유전자가 없거나(-0.75), 하나 있는 경우(-0.50)도 레켐비가 효과적이지만, 두 개 있는 경우에는 -0.28로 효과가 없었다.
APOE 계열 유전자가 만드는 APOE2 또는 APOE3 단백질은 지질을 수송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돌연변이 유전자가 만든 APOE4 단백질은 아밀로이드 베타와 타우, 나쁜 콜레스테롤(LDL)을 많이 수송해 중증 알츠하이머병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즉 레켐비는 중증 알츠하이머병 위험이 높은 APOE4 유전자를 가진 환자에게는 효과가 없다는 얘기다.
묵 단장은 “전체 환자의 3분의 2가 여성”이라며 “여성이나 아시아인, 또는 APOE4 유전자를 가진 환자에게 효과가 없는 만큼 레켐비를 처방할 수 있는 환자는 무척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레켐비는 식약처 승인을 받고 이르면 올해 말 국내에서 출시될 예정이다. 하지만 식약처 관계자는 레켐비의 효과가 성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한국에자이 관계자도 “아직 이에 대해 입장을 밝히기가 어렵다”고 했다.
◇”효과 좋고 부작용 적은 치매 신약 나올 것”
지난 2일 FDA는 미국 일라이 일리의 알츠하이머병 약 ‘키썬라(성분명 도나네맙)’를 승인했다. 2021년 FDA 승인을 받은 아두헬름과 레켐비에 이어 세 번째 알츠하이머병 신약이다. 묵 단장은 “키썬라 임상시험에도 성별이나 인종별 연구는 아직 없다”면서도 “다만 다른 데이터들을 살펴봤을 때 기대된다”고 말했다.
키썬라 역시 아밀로이드 베타를 없애 인지능력 저하 속도를 늦추는 원리다. 레켐비가 아밀로이드 베타가 여러 개 모인 단위(프로토피브릴)를 표적으로 공격한다면, 키썬라는 아밀로이드 베타가 그보다 더 많이 모인 덩어리(플라크)를 표적으로 한다. 그만큼 아밀로이드 베타를 제거하는 효과가 뛰어나다. 인지능력 저하 속도를 늦추는 효과가 레켐비는 27%이지만, 키썬라는 35%에 이른다. 다만 키썬라는 부작용인 뇌부종이 일어날 위험이 26.7%로 레켐비(12.6%)보다 높다.
묵 단장은 “아직 연구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키썬라가 남녀에게 다 효과가 있다는 얘기가 있다”며 “다만 부작용이 레켐비보다 크다는 단점이 있어 자기공명장치(MRI) 모니터링으로 지속 관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레켐비는 지속적으로 투여해야 하지만, 키썬라는 47주 만에 중단해도 76주까지 그 효과가 지속된다”며 “앞으로 성차 연구가 많이 진행돼 더 효과적이고 부작용 적은 알츠하이머병 약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Nature(2024), DOI: https://doi.org/10.1038/d41586-024-01372-2
JAMA Neurology(2023), DOI: https://doi.org/10.1001/jamaneurol.2023.1059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2023), DOI: https://doi.org/10.1056/NEJMoa2212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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