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48조원’ 15년만에 쾌거...원전 생태계 활성화 속도
한국형 원자로 노형 ‘APR1000’ 공급
원전 부흥 중심 유럽서 기술역량 인정
한국수력원자력이 주축이 된 ‘팀코리아가’가 유럽 중심부 체코에서 ‘원전 강국’ 프랑스를 제치고 최소 24조원 규모의 원전 건설 사업을 따내면서 원전 생태계 활성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특히 선진 시장인 유럽에 첫 교두보를 확보해 향후 한국 원전 수출 확대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국내 원전 업계에서는 이번에 ‘체코 잭팟’이 향후 15년 이상 원전 생태계 일감 공급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최대 48조원 규모 K-원전...15년만에 수출=17일(현지시간) 체코 정부는 내각회의를 열고 한국수력원자력을 자국 신규 원전 건설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수주는 체코 역사상 최대 투자 프로젝트로, 체코 두코바니와 테믈린 부지에 각각 대형 원전 최대 4기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두코바니에 들어서는 5·6호기는 이번에 계약을 확정했고, 테믈린에 짓는 3·4호기는 추후 건설을 확정하면서 한국에 우선협상권을 부여하기로 했다. 테믈린에 짓는 3·4호기까지 확정되면 체코 원전 건설 규모는 최대 48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번 수주는 중동에 이어 원전 부흥의 중심지인 유럽에서 한국의 원전 기술과 건설 역량을 인정받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
특히 원전 강국으로 꼽히는 프랑스와 프랑스의 안방인 유럽에서 벌인 경쟁에서 프랑스전력공사(EDF)를 꺾고 수주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K-원전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커진다.
체코 정부는 설계·조달·시공(EPC) 계약으로 추진하는 이번 사업 입찰에서 최적화된 사업자를 선정하기 위해 엄격한 기준으로 한수원과 EDF의 경쟁력을 검증했다.
가격 경쟁력, 공기 준수, 기술력, 인허가성, 안보성, 수용성 등 다층 평가에서 한수원은 EDF를 뛰어넘는 점수를 받아 우선협상대상자로 최종 선정됐다.
한국 원전은 기술력에서 프랑스에 뒤지지 않을 뿐 아니라 가격 경쟁력 면에서는 프랑스를 압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21년 세계원자력협회(WNA) 조사에 따르면 각국의 원전 건설 단가는 한국이 ㎾(킬로와트)당 3571달러로, 프랑스(7931달러)의 절반 이하이며, 미국(5833달러)과 비교하면 60% 수준에 불과했다.
한수원 관계자는 “한국은 공기에 맞춰 제때 원전을 건설하고 예산 초과 없이 프로젝트를 완수하는 역량을 갖춘 최적의 파트너”라며 “체코 측 요구를 최대한 충족시키고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폭넓은 수주 활동을 벌인 것이 성공 요인”이라고 말했다.
▶원전 생태계 활성화 속도 기대=한국은 지난 2022년 8월 이집트 엘다바에 3조원 규모의 원전 관련 사업을 수주한 적이 있지만, 당시 수주는 원전 핵심 설비인 원자로와 증기발생기 등은 제외한 건물·구조물 건설 및 기자재 공급 수주였다.
엘다바 원전 관련 사업 수주 당시에도 무너져 가는 국내 원전 산업 생태계에 일감을 공급하는 단비 같은 소식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이번 수주는 최소 30조원으로 추산돼 국내 원전 산업 생태계에 큰 활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수주 성공은 민관이 팀코리아로 뭉쳐 체코 정·관계, 산업계, 발주사, 학계, 원전 예정 지역까지 폭넓은 수주 활동을 전개한 영향이 컸다고 한수원은 평가했다.
특히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을 목표로 제시한 정부도 이번 수주 성공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달 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페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열고 막판 ‘원전 외교전’에 나서는 등 수주를 전폭 지원했다.
이번 수주 성공으로 유럽에서 추가 신규 원전 수주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최근 유럽에서는 안정적인 에너지원 확보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무탄소 전원인 원전이 다시 주목받으며 신규 원전 도입을 계획하는 국가들이 늘고 있다. 스웨덴은 원자력 개발을 제한하는 법을 폐지하고 오는 2045년까지 10기 규모의 원전 개발 로드맵을 마련했다.
현재 원전 1기를 운영 중인 네덜란드는 2035년 상업 운전을 목표로 신규 원전 2기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체르나보다 원전 1·2기를 운영 중인 루마니아는 원전 3·4호기 건설 재개를 추진하고 있다. 2035년까지 원전 12기를 건설할 예정인 튀르키예도 유럽 시장의 주요 공략 포인트다. 한국형 원전 도입을 타진하고 있는 폴란드와 함께 영국 등으로의 원전 수출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한국형 원자로 노형 ‘APR1000’ 기술성 입증=한국수력원자력이 주축이 된 ‘팀코리아가’가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사업에 공급하는 한국형 원자로의 노형은 ‘APR1000’이다. 숫자 1000은 설비용량이 1000㎿(메가와트)급이라는 의미다.
당초 팀코리아는 1400㎿급의 APR1400을 제시했지만, 체코 측의 전력 상황과 기술 요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APR1000으로 공급 노형을 변경했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APR1000은 국내에 존재하지 않는 노형으로, 한국은 이 같은 노형을 건설하거나 수출한 경험이 없다.
하지만 국내 원전과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공급 노형인 APR1400과 주요 설계 특성상 거의 비슷하다.
APR1000과 APR1400의 결정적인 차이는 설비용량만 1400㎿급(APR1400)에서 1000㎿급(APR1000)으로 줄었다는 점이다.
이외 설계수명(60년), 가동률(90%), 노심 손상 빈도(100만년에 1회 미만), 열적 여유도 등에서 APR1000과 APR1400은 같은 특성을 보인다. 이는 APR1000이 APR1400과 기본적인 설계 콘셉트를 공유한 채 용량만 축소했기 때문이다.
한수원은 핵연료를 이용해 열을 생산할 때 원자로 안에 들어가는 핵연료의 숫자를 줄이고, 원자로에서 생산된 열을 스팀으로 만들어주는 데 들어가는 튜브 수를 줄이는 방식 등으로 설비 용량을 축소했다.
APR1000의 설비용량은 한국보다 전력 사용량이 적은 체코 측의 요구에 따라 맞춤형으로 개발됐다. 체코 현지 전력 상황상 1400㎿급 원자로보다는 1000㎿급이 적합하다는 점에서다.
원자력 발전소가 고장 등으로 일시 정지할 경우 기타 전력으로 원전 용량만큼을 즉시 채워 넣어야 블랙아웃이 발생하지 않는다.
한수원은 “APR1000은 유럽 수출을 목적으로 국제원자력기구(IAEA), 서유럽규제기관협회(WENRA), EUR의 최신 기술 기준을 반영해 개발된 노형”이라며 “EUR 인증을 취득해 기술성이 입증됐다”고 강조했다. 배문숙 기자
oskymo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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