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급업체 근로자에 지침·서명하면 불법파견 징표?

백승현 2024. 7. 1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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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CHO Insight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제6조의2 제1항에 의하면, 근로자파견사업의 허가를 받지 않은 자로부터 근로자파견의 역무를 제공받은 경우 사용사업주는 해당 파견근로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 그리고 원고용주가 어느 근로자로 하여금 제3자를 위한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경우 그 법률관계가 파견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파견에 해당하는지는 당사자가 붙인 계약의 명칭이나 형식에 구애될 것이 아니라, 제3자가 당해 근로자에 대하여 직·간접적으로 그 업무수행 자체에 관한 구속력 있는 지시를 하는 등 상당한 지휘·명령을 하는지 등의 요소를 바탕으로 그 근로관계의 실질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5. 2. 26. 선고 2010다106436 판결 등). 따라서 형식상 도급계약을 체결하였더라도, 도급인이 수급인 소속 근로자에 대하여 상당한 지휘·명령을 하는지 등에 따라 실질상 근로자파견관계가 인정되어, 도급인은 근로자파견사업의 허가를 받지 않은 수급인으로부터 근로자파견의 역무를 제공받았다는 이유로 수급인 소속 근로자를 직접 고용할 의무를 부담하게 될 수 있다. 그리하여 불법파견 소송에서는 실질상 근로자파견관계인지가 주로 다투어진다.

한편 지난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정책’에 따라 수급업체의 근로자들을 자회사 소속 정규직으로 채용한 공사(公社)가 여럿 있다. 그리하여 공사와 수급업체 사이에 근로자파견이 인정될 경우, 이처럼 공사 소속이 아니라 공사의 자회사 소속 정규직으로 채용한 것이 파견법상 직접 고용의무를 이행한 경우에 해당하는지 논란이 되고 있다.

이와 관련, 서울고등법원은 2022. 9. 16. 근로자가 용역업체에서 근무한 기간 동안에는 공사(한국전력공사)의 지시감독을 받았기 때문에 불법파견관계가 인정되고, 근로자가 자회사에 채용되어 근무한 기간 동안에는 종전과 달리 자회사의 지시감독만을 받았기 때문에 불법파견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는 한편, 정부 지침상 자회사 고용 방식이 정규직화로 인정되는 점, 이해당사자 간 협의를 거친 점 등을 근거로 용역업체 근무 당시 발생한 공사의 직접고용의무는 자회사가 고용하게 함으로써 이행되었다고 판단하였다(현재 상고심 계속 중). 한편 인천지방법원은 2024. 5. 2. 공사(인천국제공항공사)가 자회사 소속 근로자들을 직접 고용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한 바 있다.

그리고 최근 서울서부지방법원은 모 공사 자회사 소속 근로자들이 해당 공사를 상대로 불법파견을 주장한 사안에서, 근로자파견관계가 인정될 경우를 가정하더라도 공사가 수급업체 소속 근로자들을 공사의 자회사 소속 정규직으로 채용함으로써 파견법상 고용의무를 이행하였다고 봄이 타당하고, 근로자파견관계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서울서부지방법원 2024. 5. 9. 선고 2022가합33272 판결). 이에 대해 원고들이 불복하지 않음으로써 위 판결은 그대로 확정되었다. 위 서울서부지방법원 판결은 가장 최신의 판결로서 원고들도 이에 불복하지 아니하였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서울서부지방법원 판결은 공사가 냉동설비 및 그 부대시설의 운영 및 유지관리 등의 업무를 수급업체에게 위탁하여 오던 중 2019. 1. 1.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정책’에 따라 자회사를 설립하고, 수급업체 근로자들과의 협의절차 등을 거쳐 해당 근로자들을 자회사의 정규직으로 채용한 다음, 2019. 1. 1.부터 현재까지 자회사에 같은 업무를 위탁하여 온 사안에 관한 것이다.

서울서부지방법원은 공사가 근로자 대표단을 포함한 노사합의기구를 구성하고 노사협의 결과에 따라 자회사를 설립하였으며, 용역근로자들을 모두 자회사의 정규직으로 채용하였고, 원고들 역시 위와 같은 경위를 모두 인지한 상태에서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파견법상의 고용의무 이행에 갈음하여 시행된 정규직 전환 절차를 통하여 자회사의 정규직 근로자로 채용되었으므로, 공사는 자회사 정규직 전환 방식으로 원고들에 대한 파견법상 고용의무를 이행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리고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원고들이 제출한 각종 위탁관리 계약서, 위탁관리 협약서, 지침 등만으로는 원고들이 수급업체 소속 근로자로 근무한 기간 동안의 근로자파견관계를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원고들이 자회사에 정규직으로 채용되어 업무를 수행한 기간 동안에도 근로자파견관계의 실질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구체적으로 ① 공사가 자회사에 각종 지침이나 규정 등을 교부하고, 공사가 공사 소속 직원을 현장에 파견하였던 사실 등은 인정되나, 공사가 이를 통하여 원고들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행사하였다고 볼 근거가 부족하고 ② 업무수행장소 내에서 함께 근무하더라도 공사의 근로자는 전반적인 운영에 관한 의사결정을 하고 원고들은 시설 내 비축물건에 대한 보관·품질관리 등의 업무를 수행하였기에 각자의 업무가 구별되는 점, 공사 직원이 원고들에게 업무 보고를 받은 것은 단지 업무 수행을 확인하기 위한 목적에서 이루어진 점, 원고들과 공사 소속 근로자는 각자 분리된 공간에서 업무를 수행하고 상호 대체가능성도 없어 보이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원고들이 공사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되었다고 볼 수도 없다는 점 등을 근거로 하였다.

통상 불법파견 사건에서는 근로자들이 도급인의 지시·검수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문서 등을 파견의 징표라고 주장하고 있고, 법원에서도 이를 사용사업주의 지휘·명령의 근거로 섣불리 인정하는 경우가 있는데, 서울서부지방법원은 공사가 수급업체에게 여러 지침이나 규정을 교부하고 공사 소속 근로자가 수급업체 근로자들 작성의 각종 대장 등에 서명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내용을 면밀히 검토하여 그것이 진정 ‘근로자의 노무급부를 목적으로 하는 지휘·명령’의 징표인지 여부를 살핀 후 ‘관련 법령 및 안전수칙의 준수나 도급인으로서 업무수행 확인을 위한 조치’였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백종현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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