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간 585mm 쏟아진 파주…"지붕에 돌 떨어지는 줄 알았다"

▲ 경기도 파주시 문산역 인근에서 차량이 침수돼 운전자를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는 경찰

"하늘도 무심하시지, 이틀 동안 물벼락이 쏟아져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했어…"

경기 파주시 문산읍에 거주하는 박 모(92) 할머니는 17일에 이어 오늘(18일)도 폭우가 쏟아지자 뜬눈으로 밤을 새웠습니다.

문산읍에는 17일 0시부터 오늘 오전 10시까지 34시간 동안 585.5㎜의 비가 내렸습니다.

박 할머니는 1996년과 1998년, 1999년 세 차례 문산읍 시가지 전체가 물바다로 변했던 현장을 겪었습니다.

그는 "어제와 오늘 새벽에는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떨어지는 빗줄기가 너무 거세 겁이 덜컥 났다"면서 "오늘까지 이런 기세라면 예전처럼 물바다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우려했습니다.

이어 "90년을 넘게 살면서 물난리를 몇 번 겪어봤다. 불보다는 물이 더 무섭다"면서 "이제는 빗줄기가 가늘어지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인근 문산읍 당동리에 거주하는 전 모(63) 씨는 "어제까지는 그냥 장맛비가 쏟아지나 생각했는데, 오늘은 새벽부터 휴대전화에 재난 문자가 연신 들어와 잠을 이루지 못했다"면서 "새벽 3시가 넘어서는 지붕에 비가 아니라 돌이 떨어지는 것으로 생각할 정도로 폭우가 대단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그는 "문산 지역에서도 저지대에 속하는 당동리는 큰비가 올 때마다 침수돼 걱정"이라며 "조금 전에 집 앞 문산천에 나가보니 시뻘건 황토물이 빠르게 임진강 쪽으로 흘러 내려가는 걸 보고 왔는데,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이어 그는 "1990년대 세 차례 수해를 겪었는데, 수해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재민들의 아픔을 알 수 없다"면서 "지역주민들이 아무런 사고 없도록 빨리 비가 그치길 바랄 뿐"이라고 전했습니다.

마을회관으로 대피한 문산읍 선유4리 마을 주민들

문산읍에서는 밤새 폭우가 쏟아지자 주민들이 대피하기도 했습니다.

선유 4리 마을의 일부 주택이 침수되자 새벽 2시부터 어르신 18명이 마을회관으로 몸을 옮겼습니다.

최 모(66) 선유 4리 마을 이장은 "밤새도록 쉬지 않고 비가 내려 잠도 못 자고 어르신들을 깨워 마을회관에 대피시켰다"며 "인근 선유교가 폭우로 범람하면 저지대인 동네 전체가 다 잠길 수 있어서 마음을 졸였다"고 말했습니다.

최 이장은 "새벽에 경찰 기동대가 출동해 마을 곳곳에 사이렌을 울려 어르신들을 깨웠다"며 "아직 큰 피해가 없어서 다행"이라며 안도했습니다.

마을 회관으로 대피한 박 모(75) 할머니는 "10년 동안 이렇게 많은 비가 내린 건 처음"이라며 "집 앞에 둑이 찰랑찰랑할 정도로 큰비가 와 겁도 나고 해 마을회관으로 피신 왔다"고 말했습니다.

파주시는 오늘 오전 7시 30분 음식과 담요, 속옷 등이 담긴 긴급 구호 세트를 이 마을회관에 전달했습니다.

파주시 파평면 인근에 밤새 내린 폭우로 논이 침수돼 농작물 피해를 본 주민들도 있었습니다.

박 모(61) 선유4리 마을 부녀회장은 "40년가량 벼농사를 지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내린 비로 침수된 건 처음"이라며 "비가 그만 내려 침수된 논에서 물이 빨리 빠지길 기다릴 뿐"이라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파주시에서는 도로 곳곳이 물에 잠겨 강인지 도로인지를 분간하기 힘든 상황이 속출했습니다.

오전 9시 10분 파주시 월롱면 월롱역 앞 사거리 도로는 인근 하천에서 물이 불어 침수됐습니다.

출동한 경찰관들이 급히 차량 통행을 막고 무릎 높이까지 차오른 곳에 첨벙첨벙 뛰어가 배수관을 들어 올렸지만, 물은 오히려 역류했습니다.

우비를 입어도 근무복이 모두 젖은 경찰관들이 폴리스라인을 치고 진입하려는 차들을 향해 팔로 엑스자를 하며 차량을 우회시키는 등 혼란한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사진=독자 제공, 연합뉴스)

유영규 기자 sbsnewmedia@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