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빈에서 ‘하루키’처럼 달리기
미향취향은?
음식문화와 여행 콘텐츠를 생산하는 기자의 ‘지구인 취향 탐구 생활 백서’입니다. 먹고 마시고(음식문화), 다니고(여행), 머물고(공간), 노는 흥 넘치는 현장을 발 빠르게 취재해 미식과 여행의 진정한 의미와 정보를 전달할 예정입니다.
‘낯설다’와 ‘낯익다’ ‘익숙하다’는 반대말이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이 둘이 유기적으로 결합을 하면 ‘비슷한’ 말이 된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낯선’ 하와이 카우아이섬에서 ‘익숙한’ 달리기를 한 것처럼 말이다. 그는 프로급 마라톤 애호가다. 1982년부터 달리기를 취미 삼았다. 그의 나이 33살이 된 해다. 재즈 바를 운영하며 자영업자로서 어려웠던 그 시절, 달리기는 그를 버티게 해준 원동력이었다.
그가 자신에게 ‘익숙’한 달리기를 ‘낯선’ 섬에서 할수록 여행지는 친숙해졌다. 섬이 점차 익숙해지자, 이번엔 달리기가 날씨에 따라 종종 ‘낯설’어졌다. 낯선 감정과 익숙함이 달리기를 매개로 수시로 자리바꿈했다.
그는 소설가로서 성공한 후 종종 하와이 카우아이섬에서 지냈다. 그곳에서도 매일 아침 1시간10분씩 달렸다. “열심히”보다는 “성실하게”였다. 그 결과 달리기 마니아들에게 바이블이 된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었다. “운동화 소리와 호흡 소리와 심장의 고동이 뒤엉켜, 독특한 폴리 리듬(연주곡 안에서 대조적 리듬을 동시에 연주하는 것)을 만들어 나간다”고 달리기를 묘사했다. “모든 것을 털어내 버린 듯한 상쾌함”이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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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처럼 낯선 여행지에서 달리면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 본격적인 여행 철을 맞아 여행 가방을 싸는 이가 많다. 가방 한쪽 귀퉁이에 운동화를 챙겨 넣어 여행지에서 달려볼 결심을 해보면 어떨까. 본래 여행은 색다른 경험을 통해 다른 나와 직면하는 순간이다. 달리기야말로 자신을 응시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일상 무대가 아닌, 생경하고 낯선 곳에서 달리는 일은 또 다른 여행의 맛을 제공할 터. 더구나 초보 러너라면 습관 구축을 위해서도 도전해볼 만 하다.
달릴 만한 관광지가 많지만, 오스트리아 빈(비에나)이야말로 이른 아침 뛰기에 더없이 맞춤한 도시다. 고요한 도시엔 ‘달리기 친구’들이 많다. 서로의 눈을 마주치며 격려의 미소를 나눈다. 무엇보다 빈에서 하는 달리기는 역사와 문화, 예술을 심장에, 폐에 담뿍 담는 일이다.
지난 5월 말 이틀간 빈을 2가지 코스로 달렸다. 첫번째는 고색창연한 미술관을 비롯해 고풍스러운 건축물을 끼고 달리는 것이었다. 한때 유럽을 호령한 합스부르크 가문이 5천년간 수집한 미술품이 전시된 ‘빈 미술사 박물관’은 빈의 대표적인 여행지다. 1871년 첫 삽을 뜬 후 1891년까지 무려 20년에 걸쳐 지어진 박물관이다. 합스부르크 가문이 모은 미술품 2천백점,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로마 시대의 골동품 등 다채로운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등이 작업한 벽화부터 한국인에게 인기 많은 구스타프 클림트 작품까지 압도적인 감동을 선사하는 미술관이다. 6유로를 지불하면 전문 해설사를 동반한 투어를 할 수 있다.
이른 아침 이 박물관 앞에 서면 더없이 고요하다. 마주 보고 있는 ‘빈 자연사 박물관’도 침묵에 잠겨있다. 공룡의 뼈가 전시된 곳답지 않게 말이다. 1889년 완공된 ‘빈 자연사 박물관’에는 3천만점이 넘는 표본과 운석, 공룡 뼈 등이 전시돼 있다. 1908년 오스트리아 빌렌도르프 근교에서 발견된 11.1㎝ 크기의 여성 조각상,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도 있다.
이 두 박물관 사이에는 거대한 석상이 있는데, 그 주변을 몇 바퀴나 도는 이들도 있다. 이곳을 출발지 삼아 달리면 이내 전차가 다니는 도로를 마주하게 된다. 알싸한 아침 공기에 세포가 활짝 깨어나는 듯하다. 인적이 드문 거리엔 자비로운 아침 햇살이 퍼져있다. 헉헉, 차오르는 숨에 고통이 밀려오지만, 어느 틈에 곁으로 와 같이 달리는 시원한 바람 때문에 기분이 좋아진다.
역사적인 건축물로 시야를 한껏 채워주는 빈은 달리기란 익숙한’ 행위에 특별함을 부여한다. 박물관뿐만 아니라 웅장하고 고풍스러운 건물이 주는 정성이다. 도로를 건너 계속 달리자, 오스트리아 국회의사당에 닿았다. 박물관 못지않은 품격을 드러낸 국회의사당은 19세기 말에 지어졌다. 그리스 신전을 본뜬 모양새다.
의사당 앞에 있는 지혜의 여신 아테나 조각상은 여행객을 사로잡는 마력이 있다. 그 웅장함에 압도되어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제자리 뛰기’를 하게 된다. 국회의사당은 둘러볼 수 있다. 무료입장 여행지다. 예약은 필수.
국회의사당 뒷길로 접어들면 의사당 버금가는 고색창연한 건물을 만났다. 빈 시청 건물이다. 1872년에 짓기 시작해 1883년에 마침표를 찍은 건축물이다. 인근에 있는 보티프성당까지 달려가면 하루키가 언급한 바 있는 ‘끝까지 달리고 나서 생기는 자부심’이 벅차게 차오른다. 171년 전 세워진 건축물인 보티프성당. 성당의 역사가 숨이 차 방망이질하는 심장에 새겨진다.
빈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벨베데레 궁정 정원을 달리는 여행자들도 있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 ‘키스’를 포함해 가장 많은 클림트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다.
두번째 코스는 슈테판대성당이 중심이다. 슈테판 광장에 있는 슈테판대성당은 빈 여행의 중심지다. 여행 상품 대부분이 이곳 구경을 기본으로 삼는다. 대성당의 지붕 타일은 유럽의 여느 성당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모양이다. 올려다보는 고개가 아파도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다.
이른 아침 대성당 주변은 지난밤 시끌벅적했던 흔적을 애써 지우기라도 할 듯 고요하게 침잠해있었다. 문이 굳게 닫힌 고급 브랜드 상점들을 무심하게 스쳐 달렸다.
슈테판대성당 일대를 빠져나와 ‘빈 국립 오페라하우스’로 향했다. 세계 3대 오페라극장으로 불리는 이곳은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등 세계적인 음악가들의 예술혼이 담긴 곳이다. 1869년 완공된 극장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소실되었다가 1955년에 복원됐다. 9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300회가 넘는 공연을 한다. 예약은 필수. 공연 관람이 쉽지 않은 여행객이 선택하는 건, 무대 투어다. 무대를 둘러보고 극장의 역사 등을 듣는 여행이다. 공연이 없는 7~8월에도 운영한다.
오페라하우스를 ‘제자리 달리기’로 한참을 살피고 ‘빈 시립공원’(Stadpark)으로 방향을 돌렸다. 입장료 없는 이 공원은 빈 사람들의 휴식처다. 이날 공원 안에 있는 작은 연못을 끼고 달리자,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부자를 만났다. 함께 숨을 몰아쉬는 어린 아들과 아버지의 모습에서 빈 사람들의 일상 행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공원엔 유난히 동상이 많다. 대표적인 게 모차르트 동상이다. 아침 햇살을 받은 모차르트 동상에서 새소리와 섞인 클래식 선율이 울려 퍼지는 듯하다. 달리는 속도도 왠지 그의 음표에 맞춰 할 것 같다. 다시 ‘무라카미 하루키’로 돌아가 보자.
그는 “자신이 해변에서 밀려온 한낱 나무토막에 지나지 않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고 했다. 그 음험한 감정을 쫓아낼 방법으로 “착실하게 달리”는 일을 선택한 건 아닐까. 그가 “내면에 안고 있는 고립과 단절의 느낌을 치유하고 객관화해 나가”기 위해서도 고른 게 “신체를 끊임없이 물리적으로 움직여 나”가고 “극한으로까지 몰아”가는 ‘달리기’가 아닐까.
그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첫 장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계속 달려가고 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도 이 ”멋진 일“을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해보시길 권한다.
빈/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 여행지에서 달릴 때 주의해야 할 점
노화 예방에 더없이 좋은 운동이 달리기란 건, 학계에서 이미 검증된 사실이다. 여행지에서도 달리기를 하면 좋은 이유다.
● 낯선 여행지에선 해 진 후에는 달리지 않는 게 좋다.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낮보다 더 발생할 수 있다.
● 달리기는 높은 심폐기능이 필요한 운동이다. 여행지에선 신체 리듬이 달라질 수 있다. 달리기 전엔 반드시 몸 상태를 확인한다.
● 조깅을 할 것인지, 러닝을 할 것인지 정한다. 조깅은 가볍게 뛰는 것을 말하는데, 러닝보다는 강도가 약하다. 조깅의 표준 속도는 100m에 45초다. 천천히 걷는 속도의 2배 정도 강도다. 러닝은 100m에 30초이며 강도가 꽤 센 편이다. 낯선 여행지에선 러닝보다는 조깅이 안전할 수 있다.
● 낯선 여행지라도 제대로 된 자세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 생경한 풍경에 마음이 흐트러져 자세마저 달라지면 안 될 노릇이다. 코와 입을 활용해 최대한 많은 양의 산소를 흡입하고 뱉는다. 머리는 땅과 수직이 되게 한다. 팔의 움직임은 대략 90도 정도. 시선은 10~20m 앞을 향한다. 무릎은 150~160도가 적당하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참고 문헌 '달리기의 모든 것'(남혁우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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