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이제 은행 안 가도 되겠어”… 고령층 디지털 금융교육 돕는 금융권
디지털 금융 관련 이론교육 후 실습
은행권, 금융교육 통해 금융소외문제 해결
“우리 손녀가 휴대폰으로 돈을 보낼 수 있다던데 요즘 젊은이들이 하는 것처럼 가르쳐 주세요.”
지난 17일 서울 신내동에 있는 구립신내노인종합복지관. 이곳 2층에는 20여명의 늦깎이 만학도들이 교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시니어 전문 강사의 지도에 따라 책상 위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고군분투 중이었다. 교실 앞 화면 자료를 따라가지 못하는 어르신이 손을 들어 보조강사의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돋보기안경을 낀 한 어르신은 모바일뱅킹 애플리케이션(앱)에 들어가 계좌 이체를 누르고 송금하는 과정 하나하나를 천천히 숙지하고 있었다.
학구열이 뜨거운 이곳은 우리금융의 ‘우리(WOORI) 어르신 IT 행복 배움교실’이다. 이 교실은 우리금융 산하 우리금융미래재단이 고령층의 디지털 소외문제를 해결하고 금융 접근성을 향상하기 위해 만든 디지털 금융교육 프로그램이다. 올해는 서울 시내 6개 종합사회복지관에서 850여명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한다. 교육 신청은 각 복지관을 통해 접수되는데 구립신내노인종합복지관의 경우 신청 당일 모든 접수가 마감될 만큼 인기다.
이날 수업 주제는 ‘스마트폰으로 금융거래하기’였다. 모바일뱅킹을 설치하고 금융인증서 발급한 후 계좌를 발급·조회하고 송금하는 것으로 수업이 구성됐다. 시니어 전문 강사가 화면으로 이론을 설명한 후 직접 어르신들이 스마트폰으로 실습하는 시간이 되자 “이거 어떻게 해요”라는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두 명의 보조강사는 강의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실습을 도왔다.
구립신내노인종합복지관의 IT 행복 배움교실 교육은 한 클래스 당 주 2회 4번의 수업으로 이뤄진다. 참가자 수준을 고려해 기초반과 심화반으로 구분돼 있기도 하다. 기초반의 경우 카카오톡 활용법, 디지털 금융사기 예방법, 키오스크 활용법, 모바일뱅킹 활용법 등을 배운다. 심화반의 경우 오픈뱅킹 활용법, 신용관리법, 음성비서 활용법 등을 배울 수 있다.
이날 만난 어르신들은 모두 수업 내용이 만족스럽다고 입을 모았다. 고문열(80)씨는 “나이가 먹어 자꾸 배워도 배워도 잊어버리는데 여기서는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알려줘서 기억이 오래간다”며 “특히 지난 시간에 우리은행 직원이 와 보이스피싱 강의를 들었는데 직접 여러 사례를 가지고 설명해 주니 뉴스에서 보는 것보다도 현실적이고 좋았다”고 말했다.
이날 수업을 진행한 김은정 시니어 전문강사는 “어르신들이 미리 교재를 보고 예습하는가 하면 모르는 게 있으면 적극적으로 질문하는 등 열의가 넘친다”며 “처음에는 20명 중 2명만 모바일뱅킹을 알았다면 지금은 수업 3회차 만에 모두가 계좌 송금까지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어르신들이 디지털뱅킹을 못 하는 게 아니라 몰랐던 것”이라며 “금융권 지원을 통해 이런 교육프로그램이 많아지면 어르신들의 모바일 뱅킹 활용도가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IT 행복 배움교실은 만학도들에게 또 다른 삶의 활력소 역할을 하기도 했다. 수업이 끝난 후에도 어르신들은 자리에 남아 서로 안부를 묻거나 배운 내용을 복습하기도 했다. 안금자(66)씨는 “예전에는 은행앱을 활용할 줄 몰라 손녀에게 물어야 했는데 모르는 내용을 알게 되는 과정에서 자신감과 성취감을 얻고 있다”며 “또 이곳에서 선생님과 친구들도 만나 이야기하며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된 듯해 즐겁다”고 말했다.
우리은행뿐만 아니라 다른 시중은행도 금융취약계층을 위한 금융교육을 열고 있다. 하나은행은 교육부와 업무협약을 체결해 전국 4300여개의 문해교육센터를 통해 고령층을 대상으로 디지털 금융문해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인천 남동구에 시니어 금융 교육을 제공하는 신한 학이재를 개관했다. 지난 5월에는 어버이날을 맞아 고등학생 봉사단과 고령층 세대가 일대일로 짝을 이뤄 디지털 금융교육 진행하기도 했다.
은행권이 고령층 대상 금융교육을 하는 데는 은행 점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디지털 금융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을 돕기 위해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영업점 수는 지난해 말 기준 3926개로 전년(3989개)보다 63개 감소했다. 5대 은행 점포 수는 ▲2018년 4699개 ▲2019년 4661개 ▲2020년 4425개 ▲2021년 4188개 등으로 해마다 100~200개가량이 문을 닫고 있다. 반면 올해 상반기 각 금융 지주의 은행·뱅킹앱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1000만명에 달한다.
우리금융미래재단 관계자는 “한국이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면서 노인 인구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데 디지털 시대인 만큼 수익성을 고려하면 은행 점포가 줄어드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라며 “이 과정에서 교육을 받으면 어르신들도 디지털 금융을 이용할 수 있는데 교육기관이 없어 활용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그는 “이를 해소하고자 은행권에서 금융교육 사업을 펼쳐 디지털 소외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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