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안데르탈인·현생 인류, 25만년 전부터 짝 맺었다
25만년 전 시작…이후 10만년전, 5만년전 두 차례 더
현생인류가 네안데르탈인에게 준 게놈은 ‘최대 10%’
60만년 전 현생인류의 조상과 분리된 뒤 유라시아대륙에서 번성하다 4만년 전 멸종한 네안데르탈인은 아프리카를 떠난 현생인류와 조우해 오늘날 우리에게 1.5∼4%의 게놈을 물려줬다. 과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이 오늘날 인류의 면역체계와 혈액 응고, 우울증 등과 관련한 유전자에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한다. 최근엔 자폐증도 네안데르탈인 유전자와 관련이 있다는 연구가 발표됐다.
그러나 통상 두 집단의 이종교배로 인한 유전자 이동은 일방향이 아닌 쌍방향으로 이뤄진다. 그렇다면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로부터 언제 얼마만큼의 유전자를 받았을까?
지난해 10월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진이 처음으로 그 단서를 찾아냈다. 연구진은 12만2000년 된 네안데르탈인 게놈과 아프리카인 180명의 게놈을 비교한 결과 아프리카인 게놈에서 네안데르탈인과 유사한 DNA 조각들을 발견해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네안데르탈인이 25만년 전 아프리카를 떠난 초기 현생인류와의 교배를 통해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으로 추정했다.
이번엔 미국 프린스턴대 연구진이 새로운 통계적 방법을 이용해 네안데르탈인이 현생인류로부터 유전자를 받은 시기와 그 규모를 추정한 연구 결과를 지난 12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네안데르탈인은 두뇌 발달과 관련한 유전자를 포함해 전체 게놈의 최대 10%를 현생인류로부터 받았다.
또 두 집단의 이종교배는 호모 사피엔스가 종으로 분리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만년 전 이전에 처음 이뤄졌으며, 이후 10만5천년~12만년 전, 그리고 4만5천~6만년 전에도 두 차례 이종교배 시기가 있었다. 연구를 이끈 프린스턴대 조슈아 에이키 교수(유전체학)는 "두 그룹의 짝짓기는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일반적인 일이었다"고 말했다.
현대 아프리카인 DNA에 숨겨진 비밀
이번 연구는 현생인류와의 이종교배를 통해 태어난 네안데르탈인 게놈은 다른 네안데르탈인보다 유전적 다양성이 클 것이라는 가설에 기반을 두고 있다. 유전적 다양성은 인구 규모를 반영하는데,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보다 규모가 작았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크로아티아와 시베리아에서 발굴된 네안데르탈인 3명의 게놈을 분석한 결과, 이들의 게놈에서 꽤 강한 유전적 다양성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이어 이 다양성이 고대 현생인류에 기원을 둔 것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네안데르탈인과 교류하지 않은 현생인류를 조상으로 둔 현대 아프리카인의 게놈 조각을 분석했다. 그 결과 현대 아프리카인에게서도 똑같은 게놈 조각을 발견했다. 이는 이 게놈 조각이 아프리카의 고대 현생인류에게서 유래했다는 걸 뜻한다.
런던자연사박물관의 크리스 스트링거 박사(고인류학)는 사이언스에 “현대 아프리카인의 아주 작은 DNA 조각을 이용해 네안데르탈인이 고대 현생인류한테서 뭘 받았는지 알아냈다는 점에서 기발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물려받은 유전자는 세대를 거듭할수록 짧아진다. 따라서 물려받은 DNA 길이가 짧을수록 더 일찍 물려받았다는 걸 뜻한다. 연구진은 이 방법을 이용해 네안데르탈인과의 이종교배가 언제 얼마나 자주 있었는지도 계산해낼 수 있었다.
사라진 게 아니라 현생인류에게 흡수된 것
연구진이 알아낸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의 이종교배 시기는 크게 세 차례였다.
첫째는 화석 기록상 현생 인류 출현 초기인 20만~25만년 전이다. 연구진은 초기의 현생인류 중 일부가 기후가 습했던 시절 사냥감 동물을 따라 사하라사막을 건너 중동으로 이동해 네안데르탈인을 만났을 것으로 추론했다.
둘째는 10만5천~12만년 전이다. 이때도 두 집단은 중동 일대에서 조우했다. 당시 두 집단은 각기 중동 지역의 동굴에 기거하고 있었다. 이스라엘 중부의 한 채석장에서는 12만~13만년 전 현생인류의 도구를 가진 네안데르탈인 유골이 발견됐다.
셋째는 기존 연구를 통해 드러났던 4만5천~6만년 전이다. 이 시기엔 중동과 유럽 지역에서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할 때까지 두 집단의 이종교배가 이뤄졌다. 지난 5월엔 두 집단의 이종교배가 4만7천년 전 시작돼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할 때까지 약 6800년 동안 지속적으로 이뤄졌다는 연구 결과가 사전출판논문 공유집 아카이브에 발표됐다.
연구진은 현생인류에서 네안데르탈인으로의 유전자 이동 규모는 시간이 지나면서 감소해 첫째 시기엔 5~10%, 둘째 시기엔 0.5%, 그리고 마지막 시기엔 0%까지 떨어졌다고 밝혔다. 이후엔 네안데르탈인에서 현생인류로의 유전자 이동이 활발해지면서 이것이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으로 이어졌다.
네안데르탈인의 DNA 중 일부가 현생인류에서 유래한 것이라면, 인구 규모가 작은 네안데르탈인의 고유한 유전적 다양성은 생각보다 훨씬 더 적었을 것이다. 연구진은 네안데르탈인이 지구에서 사라질 무렵에는 네안데르탈인 인구 수가 3천명 미만이었으며, 현생인류는 1만명이 넘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스트링거 박사는 "네안데르탈인은 기후 변화와 빙하에 취약한 유럽 북부 지역에 주로 살았기 때문에 그 수가 매우 적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에이키 교수는 "네안데르탈인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은 갑자기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들의 후손이 점점 더 많은 현생인류 DNA를 갖게 됐을 뿐"이라고 말했다. 유럽에 정착한 네안데르탈인은 뒤이어 아프리카 밖으로 이동해온 현생인류의 물결에 휩쓸리다 결국 현생인류에 흡수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네안데르탈인 인구가 서서히 줄어들다 결국 현생인류 공동체에 편입됐다는 ‘동화 모델’은 1989년 프레드 스미스 일리노이주립대 교수(인류학)가 처음 제시했다. 에이키 교수는 “이번 연구는 프레드의 가설과 일치하는 강력한 유전적 데이터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시카고대 마나사 라그하반 교수(고인류학)는 사이언스에 "이번 연구는 ‘우리 대 그들’이라는 생각을 ‘우리’라는 관점에서 마무리지었다"고 말했다.
*논문 정보
DOI: 10.1126/science.adi1768
Recurrent gene flow between Neanderthals and modern humans over the past 200,000 years.
https://doi.org/10.1016/j.cub.2023.09.066
Diverse African genomes reveal selection on ancient modern human introgressions in Neanderthals.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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