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조의 아트홀릭] "대만에서 한국 전시의 획을 긋다"

2024. 7. 18.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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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정승조 아나운서 ■

6월의 어느날. 반가운 문자 한 통이 도착했습니다.

배원정 학예연구사였습니다.

문자의 내용은 이분이 대만의 한 시립미술관의 초대를 받아서 한국의 서예전을 그곳에서 최초로 준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분은 행방이 묘연했던 한국의 대표 작가인 장욱진의 최초의 가족도를 일본에서 발굴했고 60년 만에 고국의 품에 안긴 일등 공신이기도 하죠.

그리고 제 아트홀릭에서 배원정 학예연구사가 기획한 '장욱진 회고전'을 다루기도 했고요.

이번에는 그녀가 고국이 아닌 타국에서 한국 서예를 위해 발벗고 나서고 있습니다.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사상 최초 온라인으로 개막했던 전시가 한국에 이어 지난 7월 6일 대만에서 개막했는데요.

과연 현지 예술 애호가들의 반응은 어떨까요.

정승조의 아트홀릭은 국립현대미술관과 대만 타오위엔시립미술관의 공동주최로 개막한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의 국립현대미술관 소속 배원정 학예연구사를 만났습니다.

▮ 국립현대미술관 장욱진 회고전에 이어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대만에 다녀오셨다고요. 어떤 이유로 가셨습니까.

대만에 있다가 전시를 오픈해 놓고 지난주에 귀국했습니다. 지난 2020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개최되었던 '미술관에 書 : 한국 근현대 서예전'을 대만으로 순회한 전시입니다. 대만 타오위엔 국제공항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대만타오위엔시립미술관 형산서법예술관에서 '美術館裡的「書」: 韓國現當代書藝展' 이란 전시명으로 10월 21일까지 전시합니다. 대만으로 여름 휴가를 계획하시는 분들은 타오위엔시립미술관에 꼭 한번 들러 관람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제게 이런 말씀 해 주셨어요. "한국 서예가 대만에 처음 대규모로 소개되는 것이고, 거의 대만 예산으로 한국 근현대 서예와 미술을 소개하는 기획 전시라 더 뿌듯하다"라고요. 대만에서 한국 서예전을 열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 포스터

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과 대만타오위엔시립미술관이 공동주최한 전시로, 기획은 한국에서, 예산과 진행은 대만 측이 거의 다 부담하여 진행되었습니다. 좋은 작품과 기획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해외에서 한국 미술을 초대하고, 전시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이 전시가 열리게 된 계기는 저로서도 다시 겪지 못할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2020년 3월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이래 50년만에 처음으로 기획한 서예 단독 기획전을 준비했지만, 아시다시피 초유의 코로나19로 인해 개막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미술관에서는 사상 최초 온라인으로 전시 오픈을 결정하였는데, 저로서는 열심히 준비한 전시를 관람객분들께 직접 보여드리지 못하고, 조그마한 인터넷 창으로 처음 소개한다는 보인다는 점이 섭섭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90분짜리 학예사 전시투어 영상은 당시 조회수 10만회를 넘기며 감사하게도 큰 성과를 거두었는데, 이 영상을 대만타오위엔미술관 큐레이터도 보게 된 것입니다.

이전까지 교류가 전혀 없던 양 기관에서 유튜브 영상을 통해 인연을 맺고, 공동주최 전시를 개최하게 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전시작들은 4년 전(2020년) 코로나 시국에서도 큰 반향과 인기를 불러일으켰던 작품들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번 서예전의 특징, 무엇인가요.

해방 후 왕성한 활동을 펼쳤던 소전 손재형, 일중 김충현, 여초 김응현 등 한국 서예 거장 10인의 대표작을 포함해서 한국 근현대 미술에서 서예가 담당하고 있는 역할과 의미를 조망할 수 있는 회화, 조각, 미디어아트 등 37명의 90여 점 작품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번 대만 순회전에서는 2020년 덕수궁관 전시 대비 24점의 신작을 추가하고, 한글 서예의 비중을 확대했습니다. 이를 테면 일제강점기 한문 서예가 즐비했던 서단에서 해방 이후 한글 서예가 시도되며, 한 화면 안에 한문과 한글이 함께 쓰여진 국한문혼용체 작품들이 보여주는 완벽한 조형성을 소개함과 동시에 한문서예와 달리 정해진 서체가 없던 한글 서예에서 한문 서예의 전, 예, 해, 행, 초서 양식에 걸맞는 한글 서체를 창안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서예가들의 다양한 시도와 실험들을 진지하게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또 초서를 좋아하는 대만과 달리 한나라 때 유행했던 예서체가 해방 이후 한국에서 일중 김충현에 의해 다시 유행하여 한국화된 모습 등 한국 근현대 서단의 흐름과 발전 과정 등을 총망라하면서도 한국 서예의 독창성과 역사성을 보여주고자 노력했습니다.

▮ 대만타오위엔시립미술관은 어떤 미술관입니까.

관광버스 타고 전시보러온 대만 관람객들의 모습

대만타오위엔시립미술관은 현대미술을 주로 다루는 미술관 본관과 어린이 미술관, 형산서법예술관 등 총 3개의 분관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형산서법예술관은 대만 유일의 서예 전문 예술관입니다.

2021년 개관 이후 아시아 서(書) 예술의 부흥을 목표로 국제 서예 교류 및 대만 서예 연구의 기초부터 다져나가고 있는 곳입니다. 무엇보다 주변 환경과 어울리는 건축 풍경으로도 유명한 미술관인데요, 서예의 간결함과 고요한 선(禪)을 표상하기 위해 지필묵연(紙筆墨硯)을 조경 설계의 주축으로 삼아 미술관 건물은 ‘인장’을, 연못은 ‘벼루’를 의미합니다. 2022년 대만 건축상 1등상을 받기도 한 형산서법예술관의 전 관(총 3개동의 전시실)에서 한국 근현대 서예만을 특별 전시하고 있으니 꼭 한번 다녀가시길 바랍니다. 익숙한 한국 서예가 굉장히 이국적이면서도 색다르게 보이는 특별한 경험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 전시 구성에 대한 말씀도 간략히 부탁드립니다.

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 영상

2020년 덕수궁관 전시에서는 미술관에서 서예가 전시되는 의미를 설명하며 “서예도 미술이다”란 메시지를 담는데 주력했다면, 이번 대만 순회전에서는 한국 서예를 처음 접하는 관람객들이 한국 서예의 특징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국 근현대 서예의 전개 과정을 연대순으로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이에 전시는 ‘글씨가 그 사람이다: 한국 근현대 서예가 1세대들’, ‘다시, 서예: 현대서예의 실험과 파격’, ‘서예를 그리다 그림을 쓰다’, ‘디자인을 입다 일상을 품다’ 의 순서로 총 4개의 주제로 구성됐습니다.

이를 통해 2000년대 전후 나타난 현대 서예와 디자인 서예 등 다양한 형태로 분화하는 서예의 양상을 종합적으로 살피고 특히, 서예와 다른 미술 장르와의 관계를 풀어내며 미술관에서 ‘서(書)’가 전시되는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이는 같은 한자문화권인 대만과 한국 서단이 향후 나아가야 할 향방을 함께 고민해보고, 동시대 미술에서 서(書) 예술이 가지는 의미 등을 동아시아적 관점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의 기획의도가 대만 현지에서도 유의미하게 받아들여진 것 같습니다.

▮ 지난 7월 6일 개막한 서예전, 대만 관람객들의 반응 궁금한데요. 인기 서예작도 있을 테고요.

김종건 작가의 K POP 득음득획

개막식과 언론간담회 직후 대만과 일본, 홍콩 등의 언론 매체 서른 곳 이상에서 이번 전시에 대해 보도했습니다. 이튿날 아침 미술관 앞에 관광버스 3, 4대가 줄지어 나타나 이번 전시를 보러 온 관람객들이 줄줄이 내리는데 너무나 감사하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전시 개막 후 바로 다음날 귀국한 터라 현지 관람객들의 반응에 대해 일일이 다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대만의 큐레이터들을 통해 국립현대미술관회에서 이번 전시를 위해 후원하여 특별 제작한 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의 3D 영상과 김종건 작가의 K-POP을 배경으로 한 무빙 한글 캘리그래피 <득음득획>을 관람객들이 매우 흥미롭게 감상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대만 현지의 큐레이터들은 2020년 전시투어 영상을 보고, 소암 현중화 선생님의 <취시선>이란 작품을 실제로 너무나 보고 싶어 했는데, 제주도 소암미술관에서부터 빌려온 작품을 크레이트에서 꺼내어 전시장 벽에 걸자 글씨의 호방함과 작품이 가진 스토리에 크게 환호성을 지르며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 언제 대만으로 가셨습니까. 작품의 배송 과정 등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전시 설명을 듣는 관람객들의 모습

전시가 개막되기 2주 전 국립현대미술관의 테크니션(technician), 컨서베이터(conservator)와 함께 대만에 도착해 포장된 작품들의 해포부터 시작했습니다. 해포 후 4~5일 만에 작품들 대부분을 전시장에 걸 수 있을 거란 예상과 달리 생각보다 작품의 설치가 느리게 진행되었습니다.

대만에는 중국과 일본, 한국에 비해 병풍 작품이 많이 없다고 하더라구요. 그 때문인지 대만의 베테랑 전문가들이 작품을 설치하는데도 반나절 동안 겨우 병풍 한 작품 설치를 끝냈습니다. 상대적으로 여유 있어 보이는 대만 큐레이터들의 모습을 보고, 개막 전 조명도 못 맞추고 전시를 올리는 것이 아닌지 문화의 차이를 실감했습니다만, 한국인들의 빠른 일처리와 비교할 때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납니다.

▮ 한국, 대만이 함께하는 전시 연계 국제포럼 '아시아의 서(書) 예술: 근대와 현대의 경계'도 있었다면서요.

국제 포럼 종합토론하는 모습

네, 그렇습니다. 일반 대중에게 전시가 공개된 7월 6일에는 오전부터 전시와 연계된 국제포럼 '아시아의 서(書) 예술: 근대와 현대의 경계'가 타오위엔시립미술관의 분관인 어린이미술관 국제강연장에서 개최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김이순 전 홍익대 교수, 김현권 대구간송미술관 학예실장, 문정희 대만국립타이난대학교 부교수 등 3인의 연구자와 대만의 션위창 대만국립타이난대학교 조교수, 황보하오 대만국립타이베이교육대학 조교수 2인 연구자의 발표를 통해 아시아 서예에 대한 담론의 장이 열렸습니다. 국제 심포지엄을 참석하고자 한 예약 인원만 2백명이 훌쩍 넘을 정도로 관중에서 많은 질문들이 쏟아졌는데, 한국의 서예 비엔날레에 대한 관심과 미술관에서 서가 전시되는 이유 등에 대해서 열띤 토론과 많은 공감이 오갔던 자리였습니다.

▮ 마지막으로 아트홀릭 독자들께 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2020년 거론되었던 한국 근현대 서예 해외 순회전이 코로나 팬데믹이 종료된 후 2024년에 비로소 개최되었습니다. 서예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중화권에서 한국의 서예를 소개할 때 고민이 많았습니다. 중국에서는 서법(書法), 일본에서는 서도(書道)라 불리우는 ‘서(書)’가 해방 이후 소전 손재형에 의해 ‘서예(書藝)’라 명명되며 ‘서(書)가 예술(藝術)이 되는 시대’를 본격적으로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서예’라는 말을 낯설어 하는 대만 관람객들에게 무엇을 전시하고자 하는 것인지 명료하게 인지할 수 있도록 <한국 근현대 ‘서법’전>으로 전시명을 바꿔야 한다는 대만측 의견이 강력했지만, 그래서 더더욱 ‘서예’라는 전시명을 고집하며, 역동적인 한국 서예의 한글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동아시아 삼국 가운데 절대 뒤지지 않는 한국 서예의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음은 물론입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덕수궁에서 이 전시를 감상하지 못한 분들은 멀지 않은 대만에서 선보이고 있는 한국 근현대 서예와 미술 작품들을 감상하며 제가 보았던 한국 서예의 부흥과 발전 가능성을 함께 느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진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 국립현대미술관·대만타오위엔시립미술관 공동주최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 
- 기간: 7. 6(토) ~ 10. 21(월)
- 장소: 대만타오위엔시립미술관

정승조 아나운서 / 문화 예술을 사랑하는 방송인으로 CJB 청주방송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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