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값 100만 원도 없어요" '배신자' 낙인에 퇴사, 생활고…그가 특히 힘들었던 건 [스프]

김보미 기자 2024. 7. 18.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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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피커] 우리 사회는 그 '용기 있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있나

침묵 속에는 많은 것들이 말없이 자리 잡습니다. 존중과 배려, 억측과 오해 등 여러 감정과 의미가 내포돼 있죠. 하지만 누구의 침묵인지에 따라 달리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가해자의 침묵과 피해자의 침묵은 엄연히 다릅니다. 전자의 침묵은 은폐이자 또 다른 가해를 의미할 수 있겠고, 후자의 침묵은 '강요에 의한 침묵'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목소리를 내는 건 또다시 위험에 처하게 되는 행위, 즉 자살 행위와 같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이들의 침묵을 만들어냈을 겁니다.

조직 안에 불합리함이 존재하는데 다수가 침묵하는 상황은 어떨까요. 두려움, 눈치, 포기, 무관심 등 저마다 다양한 감정이 모여 있을 겁니다. 이 상황에선 누구든 혼자서 목소리를 내는 건 쉽지 않습니다. 특히 위계질서가 공고한 조직일수록 더욱 어렵겠죠. 침묵이 침묵을 낳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 내 침묵을 깨버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내부고발자들입니다. 이번 '더 스피커'에서는 한 내부고발자의 이야기를 다루려고 합니다.
 

침묵을 깨고 나온 사람들


세 아이의 아버지인 김 모 씨는 7년 동안 경기도에 소재한 약재 유통업체에서 일했습니다. 성실하게 일한 결과 차장직을 달았죠. 그런데 어느 날 김 씨는 자신의 고용주를 고발하기로 결심합니다. 업체 대표가 직원들에게 중국산과 국산 약재를 섞어서 원산지를 속이도록, 이른바 '포대갈이'를 하란 지시를 했던 겁니다. 김 씨는 그동안 불법 행위란 걸 알았지만 늘 무력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건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으면서도, 그럴 때마다 김 씨의 눈앞엔 아내와 세 아이가 자꾸만 아른거렸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일한 지 꽤 됐는데 날이 갈수록 양심의 가책이 느껴져서 이제 더는 못하겠습니다. 저는 세 아이의 아빠이자 한 여자의 남편입니다. 우리나라 회사 문화가 수평적인 곳보다는 아직도 수직적인 곳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까라면 까야 하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합니다. 저도 월급쟁이라서 시키는 대로 어쩔 수 없이 했지만 이건 명백한 사기이고 기망 행위입니다."
<제보 내용 중>

장고 끝에 김 씨는 SBS에 이렇게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취재진은 곧바로 김 씨와 논의하며 중국산-국산 약재를 섞는 장면을 촬영해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했고, 농림부 특별사법경찰과 함께 문제가 된 약재를 현장에서 적발했습니다. 해당 약재들은 유명 건강기능식품 제조업체 등 100여 개 업체에 공급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결과적으로 업체 대표는 2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입니다. 드러난 범죄 금액만 22억 원이 넘습니다.

취재를 하며 김 씨에게 고발을 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해당 업체는 아르바이트생을 제외하고는 정직원이 10명이 안 되는 소규모 회사입니다. 제보자가 누구인지 특정되기가 쉬운 상황입니다. 그렇다 보니 모두가 눈을 가리고 침묵하는 가운데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건 쉽지 않을 텐데, 무엇이 김 씨를 움직이게 했을까요.

"사실 매일 느꼈어요. 매일 출근할 때 알람 울리거든요. 그 알람 소리를 듣는 순간부터 느껴지는 거예요. '오늘도 나가서 뭐 얼마나 이거를 해야 되나 이 섞는 작업을...' 직장인이어서 지시대로 한다고 하긴 하지만, 오늘은 또 몇 톤을 섞을 것이며, 또 몇백 킬로그램을 섞어서 어느 업체에 납품할 것이며, 또 그 업체에서 생산한 물건은 어느 소비자에게로 전달될 것이며... 참 그런 거예요. 그런 마음들이 들어서 더 이상은 이렇게는 안 될 것 같다..."
- 김 씨


다른 의도는 없었습니다. 지금껏 살아온 인생과 신념을 더 이상 저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소극적으로 지시를 이행하면 이상하게 바라보고, 일을 못 하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모순적 상황을 견뎌내기 힘들었습니다. 결국 위험을 감수하고 김 씨는 고발을 택했습니다.
 

해고에 처벌까지…혹독한 내부고발의 대가


고발 후 김 씨의 삶은 어땠을까요. 2년 만에 다시 만난 김 씨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습니다. '내부고발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는 듯했습니다. 보도가 나간 직후, 해당 업체는 제보자 색출에 들어갔습니다. 김 씨는 조직의 배신자로 낙인찍히고 자연스레 퇴사 수순을 밟아야 했습니다. 그 이후 생활고가 찾아오고, 평화로웠던 가정에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잘못한 건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어요. 회사 다닐 때는 집에 생활비는 부족하지 않게 갖다줬었어요. 그런데 해고되고는 일당 6만 원짜리 하면서 140만 원? 막 이렇게 갖다주니까 계속 마이너스가 나잖아요. 그러니까 어느 순간에 아내가 그랬대요. 카드값이 계속 연체가 되니까 고민을 하다가 장모님한테 말씀드렸더니, 장모님이 적금을 깨서 300만 원을 줬대요. 그거 받고 아내가 엄청 울었다고..."
- 김 씨


특히나 그가 견디기 힘들었던 건 '법에 대한 배신감'이었습니다. 사실 김 씨는 최근까지 취재진에게 간간이 연락을 취하며 도움을 요청해 왔습니다. 내부고발과 동시에 김 씨도 수사 대상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불법 행위를 지시대로 이행한 것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사실 취재진도 이 부분이 가장 염려됐습니다. 농림부 특사경이 수사에 돌입하면서, 당초 김 씨에게 '함께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린 바 있습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누구나 위축되고 제보 자체를 꺼릴 수밖에 없겠죠. 사회·경제적 지위를 한순간에 잃어버릴 수 있다는 두려움이 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김 씨는 달랐습니다. 덤덤히 계속 협조해 나갔고, 결국 수사에 큰 공적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1심에서 검찰은 김 씨에게 징역 1년을 구형, 재판부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이제야 숨을 돌릴까 싶었지만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현행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따르면, 수사기관은 내부고발자에 대해 감형 또는 형을 면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오히려 형량이 낮다며 항소에 나섰습니다.

"진짜 왜 이렇게까지 하나 하는 그런 감정도 좀 있었어요. 위험을 감수해 가면서 내부고발을 했는데, 그냥 여기서 끝내주지 왜 항소를 했나. 이미 내부고발자가 된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힘든데. 뭐 어떨 때는 위협도 받고. 제 친구가 저한테 그랬어요. '야 너 조심해 밤에 칼 맞을 수도 있어.' 검찰이든 법원이든 어디서든 보호를 해주셨으면 좋겠는데 오히려 궁지에 몰아넣는..."
- 김 씨

 

내부고발자의 보호 울타리는 어디에

사실 이런 상황은 김 씨만 겪는 게 아닙니다. 취재를 하며 만난 수많은 제보자들은 부정적인 사회적 시선과 함께 앞으로 잃을 것들에 대한 두려움을 토로했습니다.

"회사에서 잘릴 각오도 해야 돼. 주변의 시선도 감당해야 돼. 어쩌면 최악의 경우에 내가 수사기관 가서 나도 똑같이 피의자 신분으로 돼서 감당을 해야 되는, 그런 각오를 가지고 해야 되는데. 이런 상황이면 내부고발을 하고 싶어도 안 나타나지 않을까, 꺼려하지 않을까."
- 김 씨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김보미 기자 spri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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