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히 도움 될 듯" vs "실전은 아직"…피치컴 사용은 의무 아닌 선택, 하지만 선수들도 '호불호' 갈렸다 [MD울산]
[마이데일리 = 울산 박승환 기자] 필수는 아니지만, 피치클락이 도입될 경우 효과가 극대화 될 수 있는 피치컴. 테스트 과정을 밟은 선수들의 반응은 크게 엇갈렸다.
KBO는 지난 15일 "경기 중 투수와 포수 간의 사인 교환을 할 수 있는 장비인 피치컴 세트를 배포하고 구단 담당자를 대상으로 피치컴의 사용 방법, 규정 등을 안내하는 설명회를 개최했다"며 "피치컴 사용을 위해 지난 1일 전파인증을 완료했으며, 16일부터 KBO리그 및 퓨처스리그 경기에서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피치컴의 시초는 메이저리그. 지난 2019년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사인훔치기 스캔들이 일파만파로 커지면서 도입된 장비다. 피치컴 세트는 사인을 입력하는 송신기와 이를 음성으로 들을 수 있는 수신기로 구성돼 있는데, 송신기에는 9개의 버튼이 있어 사전에 설정된 구종과 투구 위치 버튼을 순서대로 입력하면 수신기에 음성으로 전달된다. 송신기는 투수나 포수에 한해 착용 가능하며, 투수의 경우 글러브 또는 보호대를 활용해 팔목에 착용한다. 포수의 경우 팔목, 무릎 등에 보호대를 활용해 희망하는 위치에 착용할 수 있다.
피치컴을 사용함으로써 기대되는 효과는 두 가지다. 첫 번째로 상대방이 사인을 훔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일이 손가락으로 사인을 내지 않는 만큼 2루에 주자가 있더라도, 구종 또는 작전 사인을 파악할 수 없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경기 시간 단축이다. 피치컴 활용을 통한 드라마틱한 변화는 기대하기 힘들다. 하지만 포수가 사인을 내고, 투수가 이를 보는 등의 동작이 사라지는 것을 통한 시간 단축은 기대해볼 만하다. 매 투구마다 이 동작이 반복되는 만큼, 불과 몇 초씩의 시간이 쌓이면 몇 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피치컴을 가장 먼저 꺼내든 팀은 KT 위즈였다. 마이너리그 시절 피치컴을 사용해본 경험이 있는 웨스 벤자민이 지난 16일 포수 장성우와 함께 합을 맞췄다. 벤자민은 키움 히어로즈 타선을 상대로 6⅓이닝 5피안타(1피홈런) 2볼넷 5탈삼진 1실점(1자책)으로 퀄리티스타트(6이닝 3자책 이하)를 기록하며 시즌 8승(4패)째를 손에 넣었다. 하지만 후반기부터 갑작스럽게 도입된 기기인 만큼 현장에서는 호불호가 갈리는 모양새였다. 김태형 롯데 자이언츠, 이승엽 두산 베어스 감독은 피치컴에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김태형 감독은 지난 16일 "당장 실전에서 쓰기에는 쉽지 않다. 연습 때 써보면서 선수들이 선호를 한다면 쓰는게 맞는 것 같다. 당장 경기에서 쓰기에는 혼동이 올 것 같다"고 생각을 밝혔다. 이승엽 감독 또한 "투수들과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해보진 않았지만, 나는 선호하지 않는다. 한 경기, 한 경기가 전쟁같은 중요한 시기인데, 피치컴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로 인해 마운드에서 본인의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면 큰 손실이 될 수 있다. 확실한 준비와 연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 팀 사령탑이 당장의 피치컴 사용에 부정적인 뜻을 드러냈지만, 선수들은 하나둘씩 테스트를 해보는 그림이다. 양 팀 선수들 중 가장 먼저 피치컴을 활용해본 선수는 '안경에이스' 박세웅. 박세웅은 16일 피치컴이 전달됨과 동시에 불펜 투구를 통해 적응의 시간을 가졌다. 박세웅은 "어제(16일) 테스트를 해봤고, 사용할 의향이 없지 않다. 내가 시선을 다른 데 두고 있어도 사인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사인이 서로 맞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할지는 고민해봐야할 것 같다"고 나쁘지 않은 시선을 내비쳤다.
박세웅과 함께 피치컴을 사용하며 불펜에서 짧은 호흡을 맞춘 정보근은 "실전에서 사용해 봐야 장단점을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사인이 맞을 때는 편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고, 사인이 맞지 않을 때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밝혔다.
첫날 박세웅이 테스트를 한 뒤 17일 경기에 앞서서는 김진욱-손성빈 배터리가 피치컴을 착용한 채 불펜 피칭에 임했다. 손성빈은 "생각보다 어렵진 않은 것 같다. 포수가 공을 투수에게 주면서 바로 버튼을 누른다. 포수들도 낸 사인을 음성으로 들을 수 있다. 혹시 잘못 누를 수 있기 때문. 그리고 취소 버튼도 있고, 영어 버전도 있기 때문에 외국인 선수들도 가능하다"며 "다양한 모드가 있기 때문에 세세한 코스 설정도 가능하다. 실전에서 사용한다면 일일이 손으로 사인을 내지 않아도 되기에 시간 단축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모두가 나쁘지 않은 반응이었지만, 이날 투구에 임한 김진욱의 생각은 완전히 달랐다. 그는 "손가락을 통해 호흡을 맞추지 않아도 되는 것이 신기했다. 하지만 아직 정리가 되지 않는 느낌이다. 공을 던지기 전 '낮은 코스'라는 음성이 나오다 보니 생각에 변화가 있는 것 같다"며 '음성으로 인해 생각이 많아지는 것이냐'는 물음에 "내가 생각이 많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코스를 몸쪽 높은 직구, 몸쪽 낮은 직구가 아닌 단순히 몸쪽 직구 등 자세하게 설정하지 않는 것이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김진욱은 2025시즌이 시작되기 전까지 피치컴을 사용할 마음이 크게 없다고. 그는 "한두 번쯤 사용해 볼 생각은 있는데, 크지 않다. 일단 연습 때만 써볼 생각이다. 불펜 피칭 때 사용을 해보고 '정말 괜찮다'는 생각이 들면 경기에서 써볼 것 같다. 다만 수신기가 모자에 넣는 것이다 보니, 평소와 다른 느낌이 있다. 그리고 모자마다 조금씩 착용감이 다른 것 같다"고 덧붙였다.
두산 선수들 중에서는 곽빈이 유일하게 피치컴 적응 시간을 가졌다. 곽빈은 또 김진욱과 달랐다. 곽빈은 "사용하는데 불편함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이전에는 포수 사인과 미트 위치로만 사인을 주고받았었는데, 직관적인 사인이 들리니까 집중이 더 잘 되는 것 같다. 사인을 주고받는 시간도 확실히 줄어들기 때문에 피치클락을 도입하게 되면 피치컴 사용이 상당히 도움이 될 것 같다. 다만 나(투수)보다는 사인을 내는 포수들이 적응하는데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았다"고 이용 후기를 전했다.
일단 도입 당시에는 피치컴에 부정적인 시선이었던 김태형, 이승엽 감독은 선수들이 희망할 경우 피치컴 사용을 적극 장려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피치컴 도입이 과연 어떠한 효과를 불러일으키게 될까. 물론 피치컴 사용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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