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 청소년부터 도박 총책까지…반사회적 브이로그 영상도 무법지대

유영규 기자 2024. 7. 18.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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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영상은 더 노골적이었습니다.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브이로그 영상은 수용자가 '가공되지 않은 일상'으로 느껴 다른 영상보다 몰입하고 그릇된 행동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크다"며 "유튜브의 영향력이 커진 만큼 표현의 자유 논리에만 맡겨 규제 없이 방치하기에는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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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주 낙태'로 논란을 빚은 유튜브 브이로그 영상

"일할 때 집중하고 '칼퇴근'을 하라는 것이 회사 방침인데요. 복지도 좋고 업무도 다른 회사와 별반 다를 것 없는 대기업일 뿐입니다. '불법'이라는 것만 빼면요."

이는 불법 도박 사이트의 홍보팀 막내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A 씨가 유튜브에 올린 '브이로그'(Vlog) 영상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A 씨는 3분 남짓한 이 영상에서 자기 얼굴을 모자이크로 가린 채 회원들과 통화하는 모습 등을 보여줬습니다.

A 씨는 "함께 일하는 직원들은 모두 각자의 사연이 있는 사람들일 뿐 착하고 가족 같은 분들이니 나쁘게 보지 말아 달라"며 "일반 회사원으로 일할 때와 달리 여기서는 숙소와 차량, 식비 등을 모두 회사에서 지원해 줘 담뱃값 말고는 돈이 나갈 곳이 없다"고 사이트를 홍보했습니다.

3분 남짓한 이 영상은 17일 현재 조회 수 9천여 회를 기록했습니다.

영상에는 '저도 근무하고 싶은데 어떻게 취직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 댓글이 붙었습니다.

최근 '사이버레커'라고 불리는 유튜버들의 무분별한 폭로, 협박 등의 행태가 도마 위에 오른 가운데 반(反)사회적인 소재의 브이로그 영상들도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평범한 일상을 촬영해 보여준다는 브이로그의 당초 취지와 달리 임신 36주째에 임신 중지(낙태) 수술을 했다는 경험담을 담은 영상처럼 자극적 유해 콘텐츠가 알고리즘을 타고 시청자들을 유입하고 있습니다.

9년 동안 도박 사이트의 총책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한 남성은 직원들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모습을 영상에 담았습니다.

이 남성은 "10년에 가까운 동남아 생활 동안 즐길 만큼 즐기고 누릴 만큼 누렸다"고 으스댔습니다.

도박 사이트 직원들의 브이로그 영상

또 다른 영상은 더 노골적이었습니다.

자신이 만든 불법 도박 사이트를 관리하는 모니터 10여 개를 보여주며 초기 자본금과 보안 노하우 등을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이 남성은 "모든 연예인이 다 잘되는 것이 아니듯 총판도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회원들이 끝까지 내 말을 잘 듣고 성장해 하루에 5만 원이라도 '재테크'처럼 주기적으로 따가는 모습을 보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한 청소년은 일주일 동안 가출하며 경찰에게 쫓기는 모습을 방송했습니다.

이 영상에는 실종 신고를 접수하고 출동한 경찰에 잡혀 파출소로 인계되기까지의 과정이 여과 없이 담겼습니다.

이 청소년은 '청소년 쉼터'는 가족에게 연락이 갈 수 있으니 피하고 가급적 현금만 이용하라는 등 가출 기간 경찰을 피해 숙식을 해결한 자신의 방법을 공유했습니다.

이런 영상을 본의 아니게 접하는 평범한 시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습니다.

직장인 손 모(27) 씨는 "평소 내가 겪어보지 못한 일상을 대신 체험하고 싶어 브이로그 영상을 많이 시청하는데 그런 생각에서 벗어난 자극적 영상들이 많아 당황스럽다"며 "미성년자들이 영상을 보고 혹하진 않을까 걱정된다. 왜 이런 영상들이 버젓이 유튜브에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 같은 '자극적 브이로그'의 범람은 시청자들을 끌어모으고 이익을 얻는 데만 매몰된 유튜브 생태계의 어두운 면을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앞서 '36주 낙태' 영상으로 논란을 빚은 유튜버 계정의 구독자는 2만 4천 명까지 치솟았습니다.

'도박 사이트' 유튜버들의 계정도 평균 수천 명이 구독하고 있습니다.

영상과 댓글들에는 이들이 홍보하는 사이트와 계정주의 텔레그램 주소가 적혀 있어 영상 시청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계자는 "해당 영상의 내용을 보고 회의를 통해 심의한 결과 불법성이 명확하다면 유튜브 측에 삭제 협조 요청을 할 수 있다"면서도 "규제당국으로서는 워낙 영상들이 많아 실시간 모니터링과 즉각적 조처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유튜브의 자정 기능이 한계를 보이는 만큼 이들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거나 수익을 공개하는 등의 규제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브이로그 영상은 수용자가 '가공되지 않은 일상'으로 느껴 다른 영상보다 몰입하고 그릇된 행동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크다"며 "유튜브의 영향력이 커진 만큼 표현의 자유 논리에만 맡겨 규제 없이 방치하기에는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고 지적했습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도 "자극적이고 패륜적인 영상 생산을 방치하는 IT 기업의 책임을 보다 무겁게 물릴 필요가 있다"며 "반(反)윤리적인 콘텐츠로 사람들의 잔인한 호기심을 어필하는 이용자는 수익을 올릴 수 없도록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 유튜브 캡처, 연합뉴스)

유영규 기자 sbsnewmed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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