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아버지' 애덤 스미스…"무엇보다 정의를 위해 행동하라"
이언 심프슨 로스가 쓴 '애덤 스미스 평전' 출간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한 시대를 여는 인물들이 있다. 카이사르는 로마의 공화정을 종식하고 제정(帝政)으로 나아가는 길을 텄고, 나폴레옹은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통해 자유·평등·박애라는 프랑스혁명의 발명품을 유럽 곳곳으로 수출했다. 하지만 단지 종이 덩어리에 불과한 책 한권이 그보다 더 큰 변화, 가령 패러다임을 아예 바꿔놓는 경우도 역사에선 종종 있다. 수와 과학으로 현대 문명의 기둥을 축조한 뉴턴의 '프린키피아'(1687), 그리고 현대 삶의 토대인 자본주의를 확립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1776)이 그런 책들이다.
'국부론'의 저자 스미스는 1723년 스코틀랜드의 한 부유한 가정에서 유복자로 태어났다. 엄마는 조선의 신사임당 못지않은 '열혈 엄마'였다. 교육에 진심이었고, 혹시나 아들이 다치지 않을까 온갖 걱정을 하며 키웠다. 그는 엄마의 집착 어린 사랑 속에 집안의 귀염둥이로 자랐다. 스미스는 인생 후반기에 건강염려증에 시달렸는데,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엄마의 지극정성 탓에 그렇게 됐을 공산이 있다.
명민했던 스미스는 14세에 글래스고대학에 들어갔고, 곧 두각을 나타냈다. 수·과학에 탁월성을 보인 그는 장학금을 받고 옥스퍼드대로 유학을 가 그곳에서 6년을 보냈다. 옥스퍼드의 고리타분함과 보수성에 실망했지만, 수많은 장서를 위안으로 삼았다. 그는 무수한 책을 읽으며 뜻과 학문을 세웠다. 옥스퍼드 생활을 끝낸 뒤 에든버러대 강사 등을 거쳐 글래스고대로 돌아왔을 때, 그는 이미 과학, 철학, 법 등 다양한 학문에 통달해 있었다.
학문이 무르익을 시기인 30대 중반 그는 도덕철학 교수로서 '도덕 감정론'(1759)을 펴냈다. 그는 책에서 인간 삶의 모습을 관찰하는 데서 도덕적 교훈이 생긴다고 주장한다. 그런 '도덕의 극장'에서는 이론가와 일반인 모두 관객이면서 배우이고, 공감과 상상에 기초한 타인에 대한 그들의 판단은 그들 자신의 윤리적 삶의 일부가 된다고 설명했다. 칸트는 책을 읽고 "도덕의 성격에 대해 그렇게 잘 서술할 수 있는 사람이 독일에 어디 있을까?"라며 찬탄했다고 한다. 볼테르, 달랑베르, 루소 등 다른 지성들도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스미스는 프랑스에서 볼테르, 디드로 등 계몽사상가, 케네 등 중농주의 경제학자들과 교류한 후 말년의 걸작 '국부론'을 내놨다. 그는 개인의 이기심과 경쟁이 국가를 발전시키고,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진다고 책에서 주장했다. 또한 분업이 인간 발전의 원천이라고 설명했다. 독점과 매점에 대해서는 맹렬히 비판하면서 자유무역을 옹호했다.
그렇다고 마냥 그가 무역의 자유, 개인의 자유만 옹호한 건 아니다. 금리 상한제를 도입하고, 은행에 대한 규제를 실시하는 한편 정의, 국방, 공공사업, 교육이라는 사회적 요구를 위한 재원 마련을 위해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축소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회 전체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몇몇 개인의 천부적 자유의 행사는 가장 전제적인 정부뿐 아니라 가장 자유로운 정부까지 포함해 모든 정부의 모든 법에 의해 제한되며, 제한되어야만 한다."
캐나다 왕립학회 회원이자 저명한 영문학자인 이언 심프슨 로스가 쓴 '애덤 스미스 평전'(The Life of Adam Smith)에 나오는 내용이다. 탄생부터 죽음까지 스미스의 발자취를 추적한 책이다. 유럽의 지적 황금기였던 18세기에 경제학과 도덕철학의 한 거인이 어떻게 성장하고, 공부하며, 꿈을 키웠는지, 또한 타인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상처 입고, 겁먹었으며 때론 비루해졌는지를 1천200쪽 넘는 분량으로 기록하고 평가했다.
스미스 개인의 장단점뿐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간 다양한 인물의 모습을 조명한 점도 책의 묘미다. 루소를 "변덕, 가식, 사악함, 허영과 불안의 혼합물"이라고 악평한 영국 철학자 데이비드 흄, 당대 프랑스 최고의 천재로 통했던 볼테르, '국부론'과 같은 해에 '로마제국쇠망사'를 출간한 에드워드 기번, 여전히 보수주의 대부로 평가받는 에드먼드 버크 등 당대 지성들과 스미스의 교류, 그들 사이의 선연과 악연, 지적 대결 등 풍부한 이야깃거리가 책에 담겼다.
아울러 스미스의 사상을 경제적 자유주의로만 해석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도 새겨들을 만하다. 말년에 스미스가 주로 관심을 가진 주제는 "부자와 지위가 높은 사람을 선망하고 가난한 사람과 지위가 낮은 사람을 경시하거나 무시하는 인간의 성향으로 야기되는 도덕 감정의 타락"이었다. 스미스는 적절성, 신중함, 이타심을 가지고 사람들을 대하고, 무엇보다 정의를 위해 행동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우리가 이런 타락에 저항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저자는 "현실주의뿐 아니라 너그러운 마음까지 알아봐야만 스미스를 올바르게 대우하는 일일 것"이라고 말한다.
글항아리. 조재희 옮김. 1천236쪽.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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