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가 유일한 라이벌인 자신을 넘어서는 법 [인터뷰](종합)
“35년 연기 인생 원동력? 독창적 시선 지닌 창작자와의 협업이 비결”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디즈니+ 16부작 드라마 '삼식이 삼촌'이 지난달 19일 14~16부의 방영을 끝으로 전회차의 방송분을 공개한 가운데 주연을 맡은 송강호가 그동안의 출연 소감을 공개했다.
'삼식이 삼촌'(극본 및 연출 신연식)에서 삼식이 삼촌 박두칠 역을 맡아 생애 최초 드라마에 도전한 송강호는 지난달 24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스포츠한국과 만나 '삼식이 삼촌'에 출연하게 된 배경부터 변요한, 이규형 등 후배 배우들과 호흡한 소감, 35년차 배우로서 느끼는 소회 등 다양한 감정을 털어놨다.
'삼식이 삼촌'은 전쟁 중에도 하루 세끼를 반드시 먹인다는 삼식이 삼촌 박두칠(송강호)과 모두가 잘 먹고 잘 사는 나라를 만들고자 했던 엘리트 청년 김산(변요한)이 만나 함께 꿈을 이루고자 했던 이야기를 그렸다. 송강호는 전쟁 중에도 자기 식구, 친구, 친척 그 누구도 굶기지 않아 '삼식이' 또는 '삼식이 삼촌'으로 불리는 박두칠 역을 맡았다. 박두칠은 어린 시절 강성민(이규형)의 집에서 온갖 궂은일을 하면서 먹고 살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만의 살길을 개척하며 살아오던 중 자신과 같은 꿈을 가진 김산을 만나 원대한 계획을 세우는 인물이다.
'삼식이 삼촌'에는 송강호를 비롯해 변요한, 이규형, 주진모, 서현우, 유재명, 진기주, 티파니영, 오승훈 등 내로라하는 연기파 배우들부터 블루칩 배우들까지 연기적 측면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실력파들이 총출동했다. 16부의 드라마가 전개되는 동안 극중 삼식이 삼촌 박두칠과 이규형이 연기한 국회의원 강성민, 변요한이 연기한 김산 위원장 이 세 인물의 애증 관계와 서로를 향한 갈등 등이 이야기의 중심축을 이룬다. 특히 박두칠, 김산, 강성민 3인이 처음으로 박두칠의 빵집에서 대화를 나누는 3인 대화장면은 송강호와 변요한, 이규형의 폭발적 에너지가 충돌하며 국내 드라마사에 남을만한 명장면으로 탄생했다.
"박두칠이 강성민을 향해 '내가 먼저 쳐야겠다' 이런 대사를 하기도 하지만 사실 두칠과 성민은 애증의 관계였어요. 증오심이 가득하지만 버릴 수는 없는 존재가 아니었나 싶어요. 강성민이라는 존재가 있어서 지금의 삼식이가 있을 수 있었죠. 돈을 벌게 해줬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게 해준 것도 강성민과 그 집안이었고요. 하지만 강성민은 삼식이를 이용만 했죠. 그럼에도 14부에서 강성민이 죽을 때 삼식이가 지은 표정은 연민의 복합체였던 것 같아요. 미워했지만 그를 떠나보낼 때 비치는 슬픔의 감정들은 한마디로 연민이었던 것 같아요. 그 이전에 강성민과 삼식이 삼촌, 김산 3인의 대화 장면은 이규형 배우가 아이디어를 많이 냈어요. 본인의 대사나 이런 것들을 신연식 감독님과 의논해서 조율했더라고요. 세 사람이 한 번은 만나야 했어요. 마치 사내들의 싸움이 아닌 동네 꼬마들이 싸우는 것처럼 관계에 대해 말싸움을 해대는 모습에서 우리네 인간사와 시대가 반추되고 있지 않았나 싶어요. 인간의 욕망이 크게 보면 하찮고 마음 한켠의 작은 욕망에 안절부절하며 아귀다툼하는 모습이 인간사의 한 장면을 압축해 놓은 것처럼 보이도록 그런 느낌을 내려고 했죠. 그러다보니 정말 좋은 장면이 탄생했어요."
이어 송강호는 삼식이와 김산의 애정어린 관계에 대해서도 부연 설명을 했다. 극중 삼식과 김산이라는 이질적 인물이 만나 서로를 이해하고 의지하는 관계로 나아가면서 극중 중요한 정치적 사건들이 발생하는 만큼 송강호와 변요한의 연기합은 극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삼식이 삼촌의 김산을 향한 감정은 열정적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삼식이는 정상적 돈벌이가 아닌 일제 시대 직후에 전쟁을 거쳐 하루에 한끼도 먹기 힘든 고통의 시간 속에서 험한 방식으로 돈을 모은 인물이었어요. 그런 상황 속에서도 그가 꿈꾸는 세상은 있었을 것이고 스스로 자신과 같이 미천한 사람이 그 꿈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을 거예요. 그러다가 김산이라는 로망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되죠. 자신의 꿈을 실현시켜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난 거예요. 그러니 김산을 향한 마음은 짝사랑이라기보다 열정적 사랑에 가깝지 않았을까요."
송강호와 '공동경비구역 JSA'와 '복수는 나의 것', '박쥐'를 함께 만든 박찬욱 감독은 '삼식이 삼촌' 속 그의 연기에 대해 '송강호 연기의 절정이자 종합. 영화 '대부'에서 말론 브랜도, 알 파치노, 로버트 듀발이 변신 합체해서 한 인물을 연기했다면 이랬을까'라고 극찬한바 있다. '삼식이 삼촌'은 16부 전체 전개 과정에서 흐름이 다소 늘어진다는 비판은 일부 존재했으나 송강호를 위시한 변요한, 이규형 등의 연기 호흡에 대해서는 근래 보기 드물었던 긴장감 백배의 쫄깃한 호흡이 탄생했다는 평들이 주를 이뤘다. 특히 16부 엔딩에서 죽음을 앞둔 삼식이 삼촌이 김산과 마지막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될 역대급 명장면으로 남았다. '송강호는 유일한 라이벌인 자신을 넘어섰다'는 말이 입증된 또 하나의 순간이었다. 비평가들이나 대중들의 호평에도 자신의 연기를 돌아보는 송강호의 평가는 겸손 그 자체였다.
"제 스스로 돌아볼 때는 부끄럽고 더 잘 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죠. 그것은 어떤 드라마나 영화도 마찬가지예요. 자신의 연기를 스스로 본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다만 드라마 연기를 처음으로 해보면서 깨달은 건 있어요. 영화는 영화만의 매력이 있지만 2시간 내외의 짧은 시간안에 인물의 서사와 캐릭터의 입체감을 아주 임팩트있게 전개시켜야 한다는 부담이 있어요. 드라마는 좀 더 섬세하고 세밀하게 체계적으로 뭔가 설명할 수 있는 물리적 시간적 여유가 있기에 좀 풍성하다고 해야 하나, 그런 장점을 가지고 있더군요. 그렇기에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쓰곤 했어요. 앞으로도 배역의 경중을 떠나서 좋은 기회가 되면 드라마를 또 할 생각이 있어요. 다만 영화를 안하겠다는 것은 아니예요. 시나리오가 안들어올까봐 조마조마합니다. 영화는 영화대로 드라마는 드라마대로 자유롭게 하려고 합니다."
첫 드라마 도전으로 큰 만족감을 얻기는 어려웠지만 송강호가 생각하는 '삼식이 삼촌'의 성과는 분명했다. 그는 전작들을 통해 근현대사의 굴곡을 그리면서 그 안에 속한 인간군상들의 욕망과 갈증, 그런 인물들로 인해 조금씩 앞으로 한걸음씩 진전해가는 역사를 조망해온 신연식 감독과의 호흡은 그에게 새로운 도전 의식을 가지게 했다.
"드라마에 대해 아쉬운 점도 있어요. 소재 자체가 글로벌하지 않은 점에서 (시청률 면에서)아쉽기도 하지만 일종의 경험이라 생각해요. 신연식 감독이 애초 가졌던,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시선 같은 부분에서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많은 분들과 공감하고 소통하지는 못했지만 형식을 떠나서 드라마의 지형과 지표가 더 넓어진 부분이 있다는 지점에서는 격려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연식 감독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과정부터 그가 생각하는 신 감독의 한국 영화계에서의 독보적 위상에 대한 소회도 이어졌다. 송강호는 '삼식이 삼촌'을 비롯해 영화 '1승'과 '거미집'까지 3편을 신연식 감독과 함께 하게 된 이유에 대해 "신연식 감독이 각본을 쓴 영화 '동주'를 보고 감독님의 시선이 좋다고 생각했다. 윤동주의 시는 모두 알고 있지만 시인의 발자취나 뒤안길을 보통 잘 모르지 않나. 신 감독님이 작가로서 신선한 시각을 자니셨더라. 빠름을 추구하는 시대에 긴 호흡으로 깊이 있는 OTT 드라마에 도전하는 것도 높게 평가할만 했다"고 말했다.
"인연이라는 표현을 자꾸 하게 되는데 신연식 감독을 제가 잘 알아서 혹은 계속 작업을 하고 싶은 마음이었기 때문은 아니에요. 그때 당시 딱 인연이 됐어요. 어떻게 하다보니 '거미집'도 찍고 '1승'이라는 작고 풋풋한 영화도 찍게 됐어요. 그리고 드라마도 찍게 됐죠. 미리 약속을 하고 대본을 받았다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그때 당시 인연이 맞았죠. 신 감독의 전작을 다 보고 이 사람의 매력을 탐구해봐야겠다 이런 건 아니었어요. 어떤 감독님들과 인연을 맺을 때 그 인연의 소중함으로 함께 하게 되는 것 같아요."
16부작이라는 긴 흐름의 드라마에 첫 도전하며 그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1990년 연극 '최선생'으로 데뷔한 그는 올해 배우 생활 35년차를 맞았다. 35년 배우 인생 중 송강호는 지난 2022년 제75회 칸 영화제에서는 '브로커'로 한국 최초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는가 하면 봉준호 감독이 연출을 맡고 그가 주연을 맡은 영화 '기생충'은 지난 2019년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2020년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하며 그를 전 세계적 배우 반열에 올려놓기도 했다. 미국 아카데미 박물관은 지난해 연말 그의 출연작 14편을 상영하며 회고전 '송강호: Song Kang-ho'를 개최했다. 박물관 측은 송강호에 대해 "한국 영화사에서 가장 두드러진 인물 중 한 명이며 그의 통찰력은 연기의 경계를 초월한다"고 첨언하기도 했다. 한국 배우 중 누구 하나 가본적 없는 길을 걸어왔던 그이지만 새로운 도전이후 얻은 심경에 대해서는 담담히 소감을 전했다.
"이번 작품이 어떤 캐릭터에 대한 굉장히 새로운 것을 던져준 것은 아니에요. 이 드라마를 통해 긴 호흡에서 속을 알 수 없는 캐릭터가 어떻게 변모해 나가고 결론에 이르기까지 기나긴 흐름과 인물이 가진 입체성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나 이런 것들을 새롭게 배웠어요. 만약 영화나 짧은 시리즈였다면 캐릭터에 더 집중했을 거예요. 현대물이었다고 해도 그랬겠죠. 하지만 우리가 태어나기 전의 50~60년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가상의 이야기와 인물을 그리고 있기에 서사가 넓어졌어요. 이것들을 추스르기에는 16부작이라고 해도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았죠.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종합해야했기에 삼식이라는 인물도 특별한 사건 중심보다는 이 인물을 유추할 수 있게 던져주는 방식으로 풀어나가야만 했죠. 그래서 더 어려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식이의 그림자는 늘 보여줘야 하니 이런 것이 숙제였죠. 그래서 더 어려웠어요."
변요한, 이규형, 서현우, 오승훈 등 내로라하는 쟁쟁한 후배들과 호흡하며 송강호가 가장 인상 깊게 촬영했거나 바라본 장면은 무엇일까.
그는 "많은 장면이 좋았지만 5부에서 삼식이 삼촌이 악마와 같은 손짓으로 김산과 주여진 커플의 아름다운 사랑을 깨지게 하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이어 "이 장면이 삼식이의 캐릭터와 정체성을 느끼게 해주는 장면이었다. 마치 악마의 손짓과 같았다. 가장 순수한 인간에게 최고의 가치인 사랑을 깨면서까지 악마의 손짓을 건넨다는 측면에서 이 드라마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많은 시청자들이 명장면 1순위로 꼽은 16부 엔딩에서 김산 역의 변요한과 피자를 거론하는 장면에 대해 "피자는 풍요로움의 상징 아닌가. 삼식이가 진짜 피자가 먹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은 그 시대에 가장 이상적인 삶의 지표가 풍요로움과 풍족하게 먹는 것이었을 거다. 극중 피자는 가장 로망이자 이상적 단어였다"고 밝혔다.
"삼식이삼촌이 '피자가 그렇게 맛이 없냐'고 물은 후 '그럴줄 알았다'고 말하지 않나요. 삼식이삼촌이 김산을 두고 시루떡 같다고 하는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볼품 없고 먹고 싶은 생각이 안 드는데 입에 들어가면 그렇게 맛있을 수 없는 시루떡. 이 내용에서 결국 우리의 이상향은 마음 속에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피자 혹은 높은 건물, 고급 자동차가 상징하는 물질적 삶이 아닌 우리의 진짜 풍요로운 삶 자체는 마음속에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요."
'삼식이 삼촌'을 통해 16부작 드라마에 첫 도전한 송강호는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 등 흥행 및 비평 두 가지 측면에서 국내 최고 배우로 활약해오면서도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늘 새로운 시도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밝혔다.
"본능적으로 안전한 것들에 대해 거부하는 경향이 있어요. 누가 봐도 대중적 공식을 따르는 성공한 영화 이런 것에는 매력을 못느껴요. 완성도 있는 시나리오일지라도 마음이 안 가죠. 허술하고 빈틈이 있어보이지만 이 작가와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시선이 참신하다면 허술해도 마음이 가게 되요.. 그런 것이 원동력이이라면 원동력인 것 같아요. 결과까지 좋으면 더 좋겠지만 세상사가 늘 그런 것은 아니지 않나요. 결과를 생각하고 움직이면 매력도 없고 동력도 안생겨요. '기생충'으로 남우주연상 받고 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예전에도 그랬어요. 제가 성공도 많이 했지만 실패도 많이 했어요. 매번 결과를 떠나서 그것을 항상 갈구하고 모색해 왔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안전한 길을 안갈려고 하는 이상한 본능이 있어요."
그가 생각하는 자신의 천직인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정의는 다른 직업인으로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배우라는 직업은 저에게 죽을 때까지 같이 가는 동반자적 직업이 아닌가 생각해요. 배우의 길을 계속 해서 걸으며 제 스스로의 원칙은 안주하지 말자는 거예요. 보통 안주하며 안정적 형식을 바라게 되는 것 같은데 흥행적 결과를 생각하기보다 일이 진행되어가는 형식을 먼저 생각하는 느낌이 좋아요. '1승'은 아직 개봉도 안정해졌는데 풋풋한 만화 같은 이야기들이고 '기생충'으로 상을 받고 돌아오자마자 선택한 작품이예요. 만약 안주하고 싶었다면 더 큰 성공이 보이는 시나리오를 택했겠죠. 하지만 고통스러운 순간도 있어요. 제 의도와는 결과가 다르게 나타날 때 저도 사람인데 왜 고통스럽지 않겠어요. 그러나 끊임 없이 한발자국씩 다른 스텝을 밟으며 진정한 내 모습을 찾아 가는 것이 제 원동력이에요."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msj@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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