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보호법 있어도 교사들은 여전히 참는다

김민제 기자 2024. 7. 18.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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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구 초등교사 순직 1년
교사들 ‘민원 고충’ 여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2030청년위원회 소속 청년 교사들이 지난해 7월27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 서초구 교사 사망 사건과 관련해 실질적인 교권 회복 대책 마련과 교권 보호 입법을 촉구하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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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활동 침해 여부를 다투는 순간 학부모와의 갈등이 시작되고, 아동학대 신고로 이어질지도 모르니까 그냥 넘어가기를 택하는 거죠.”

서울 대현초등학교 김민제(40) 교사는 지난 5월 교내 학교폭력 사안을 해결하다가 한 학부모로부터 국민신문고 민원을 받았다. 학부모는 자신의 자녀에게 피해를 준 학생의 출석정지를 요구했는데, 학교폭력 처리 매뉴얼상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해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가 발생했다. 김 교사는 지난해 개정된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교원지위법)에 따라 이러한 무고성 신고를 교육활동 침해로 인정한다. 하지만 김 교사는 문제 제기할 생각이 없다.

18일로 ‘서초구 교사 사망 사건’이 벌어진 지 1년이 된다. 지난해 7월18일 서울 서초구의 한 20대 초등학교 교사가 학부모 민원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교사들은 그동안 교육활동 침해를 겪으며 참아온 분노를 쏟아냈다. 사회적 공분까지 일면서 ‘교권보호 5법’이 만들어지는 등 조처가 이뤄졌다. 하지만 여전히 김민제 교사처럼 대부분 문제 제기 대신 ‘감내’를 택하고 있다. 발표된 제도는 인력과 예산 부족으로 효과가 미흡하고, 현장의 인식 변화마저 더뎌 교육활동은 위축돼 있다.

서울 서초구 초등교사 순직 1주기를 하루 앞둔 17일 오전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서 추모객들이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육부 “대책 마련으로 현장 바뀌어”

서초구 교사 사망 사건은 교육활동 침해에 대한 동료 교사들의 분노를 터뜨린 도화선이 됐다. 교사들은 사건 이후 국회와 광화문에 모여 집회를 이어가는 등 현장의 어려움을 쏟아냈다.

교육당국은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교육부는 지난해 8월 ‘교권 회복 및 보호 강화 종합방안’을 발표하고, 다음달엔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를 제정하며 정당한 교육활동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국회에서는 교권보호 5법(교육기본법·초중등교육법·유아교육법·교원지위법·아동학대처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교사들은 수업 방해 학생을 교실에서 분리할 권리를 갖게 됐고, 민원 대응 창구는 학교에 조직된 ‘민원대응팀’으로 일원화됐다. 교육청은 교사가 생활지도 중 아동학대로 신고당하면 이에 대한 의견을 조사·수사기관에 제출하도록 의무화했다.

1년 뒤 교육부는 이러한 대책으로 현장이 달라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교육부는 17일 “교원 대상 아동학대 신고에서 교육감 의견 제출 제도가 도입된 지난해 9월25일부터 지난달 30일까지 교육감 의견서는 총 553건이 제출됐고, 이 가운데 70%는 ‘정당한 생활지도’라는 의견이었다”고 밝혔다. 교육감 의견 제출 사안 가운데 종결된 213건의 77.5%(165건)는 불입건·불기소됐다. 교원 대상 아동학대 수사에서 불기소를 이끌어내는 데 도움을 줬다는 설명이다. 또 학교 민원대응팀은 지난달 30일 기준 전체 99.8% 학교에 도입됐다고 홍보했다.

교사들 “대책은 문서로만 존재”

교육부 발표와 달리 현장 반응은 차가웠다. 교사들은 제도는 만들어졌지만 현실에서 이를 적용할 여건은 마련되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대표적인 것이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에 마련된 학생 분리 조치다. 고시는 다른 학생의 학습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교사가 판단할 경우, 수업 방해 학생을 교실 안팎의 장소로 분리할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현실에선 이를 실현하기 어렵다. 강원 지역 초등학교 최고봉 교사는 “한번도 학생 분리 조치를 활용해본 적이 없다”며 “분리하면 학생을 어디로 보낼 것인지, 누가 맡을지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분리 조치를 하면 이를 보호자에게 통보해야 하는데 민원이 쏟아질까 두려워 ‘그럴 바엔 내가 감수하지’라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경기 지역 초등교사 김지현씨는 “분리할 수 있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점은 긍정적”이라면서도 “이를 뒷받침할 인적·물적 자원은 없다”고 했다.

민원대응팀 역시 제도와 현장 간 괴리가 크다. 최고봉 교사는 교육부의 학교 대부분에 민원대응팀이 마련됐다는 발표에 “문서상 존재와 실제 작동 여부는 다른 문제”라며 “민원에 대응할 새로운 인력이 투입된 게 아니라 기존에 업무를 하는 교사들로 꾸려진 팀이다 보니 효과가 크지 않다”고 말했다. 김민제 교사도 “민원대응팀은 아직 문서에만 존재하는 시스템”이라고 했다.

실제로 교사노동조합연맹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6개 교원단체와 조국혁신당 강경숙 의원실이 교사 598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민원 창구가 일원화되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는 응답은 29.3%에 그쳤다. ‘그렇지 않다’는 답이 41.6%로 더 많았다. 또 교육활동 침해 우려로 분리된 학생에 대해 전문적 지도가 이뤄지느냐는 질문엔 ‘그렇다’는 응답이 11.5%에 그쳤다. 좋은교사운동 등 6개 교원단체와 강경숙 의원은 “민원대응팀 운영을 위한 합당한 예산을 지원하고 분리 대상 학생들을 전문적으로 지도하기 위한 학교 차원, 교육청 차원, 지역사회 차원의 지원 체계를 구축하라”고 촉구했다.

한편,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백승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5일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학생 분리에 필요한 경비와 인력 등을 지원해야 한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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