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째 미국 시장 꿋꿋히 두드린 K보험…알래스카도 녹인다

애너하임(미국)=배규민 기자 2024. 7. 18.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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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금융강국 코리아]⑧-<1>DB손해보험
[편집자주] 해외 공항에서 우리나라의 은행 광고를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시대가 왔다. 해외 진출 지역마다 '맞춤형 현지화' 전략을 앞세운 금융회사들은 K금융의 영토를 넓혔다. 이제는 넓어진 영토에서 핀테크 기술 등을 앞세워 '디지털 금융 DNA'를 심고 있다. 국경을 넘어 미래로 향하는 K금융의 전략을 취재했다.

DB손해보험이 현지 영업을 하고 있는 미국 지역/그래픽=이지혜
#미국 LA공항에서 한 시간을 차로 달리면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에 위치한 DB손해보험 미주사업본부에 도착한다. 미주 사업을 총괄하는 본부와 캘리포니아 지점이 함께 위치해 있다. 미국에만 DB손해보험 본사 직원과 현지 직원 등 10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DB손해보험은 미국, 중국, 동남아 3대 권역을 축으로 해외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미국을 해외 거점시장으로 집중 공략한다. 몇 번의 위기를 겪었지만 40년째 꿋꿋하게 문을 두들겨 미국에서만 연간 6000억원이 넘는 수입보험료 달성을 앞두고 있다.

세계 선진 보험시장 미국 정조준… 괌 시장 점유율 1위
"세계 금융의 중심지 미국에 '제2의 DB손해보험'을 만들겠다."

DB손해보험이 1984년 처음으로 괌에 지점을 열면서 세운 목표다. 40년이 지난 현재 DB손해보험은 미국 50개 주 중 12개 주에서 현지인을 대상으로 영업하고 있다. 2020년대 초반 높은 손해율을 견디지 못해 다른 국내 보험사들이 미국 철수를 결정하거나 진출 형태를 바꾼 것과는 대조적이다.

뉴욕, 캘리포니아, 괌, 하와이 등 4개 지점을 두고 있으며 미주사업본부가 캘리포니아에 위치한다. 현지인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주력 상품은 상업용 패키지, 주택화재, 상업용 자동차 보험 등 3가지다. 지난해 DB손해보험이 미국에서 거둔 수입보험료는 전년 대비 24% 증가한 약 5700억원이다. 국내 전체 손해보험사가 해외에서 거둬들인 전체 보험료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매년 10~20% 안팎의 탄탄한 성장세를 이루고 있다. 2018년 이후 흑자로 돌아섰으며 2019년 15억원에 불과했던 세전순이익은 2022년에는 312억원으로 증가했다.

미주사업 실적 추이/그래픽=이지혜

가장 먼저 진출한 괌에선 2021년 말 기준 시장점유율 19.6%를 기록해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정부 물건 및 호텔, 콘도 등 대형 상업용 물건을 집중적으로 공략해 기존의 일본계 보험사 또는 미국계 보험사가 취급하던 계약을 따냈다. 괌 정부의 약 45개 기관 중 10개의 화재·배상책임보험과 23개의 호텔 중 8개 호텔의 화재보험을 취급한다.

하와이는 허리케인 담보 등 고객 니즈에 맞는 상품을 적기에 출시해 큰 호응을 얻었다. 대형 현지 대리점과의 발 빠른 계약과 우수한 현지인 채용 등 현지화에 속도를 냈다. 특히 모든 프로세스가 느린 휴양 섬 하와이에서 빠른 서비스로 대리점과 고객을 응대해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가령 통상적으로 3~5일 소요되는 계약 안내와 배서 처리를 1일 이내로 줄였다. 2021년 4월에는 하와이지역 최대의 손해사정사인 JM&Co의 지분 100%를 인수했다. 인수 후 수수료 산정체계 고도화 등을 통해 수익성을 대폭 개선했다. 매출 대비 평균 이익률이 약 8.5%에 불과했지만 인수 후 3년 평균 이익률은 약 23%로 크게 좋아졌다. JM은 하와이뿐 아니라 미국 본토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여러 차례 위기도 겪었다. 철수를 선택하는 대신 손해율 불량업종들을 과감히 정리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2019년 기존 채널에서 운영하던 손해율 높은 업종을 정리하고 동시에 신규 판매 채널을 추가로 확보했다. 그동안 쌓은 사업 경험을 기반으로 텍사스주에서는 자동차보험, 캘리아포니아주는 주택화재보험, 애리조나주는 일반보험 등에 각각 진출해 지속적인 성장 모멘텀을 만들었다. 2020년에는 해외지점의 자산운용을 고도화하고 해외투자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뉴욕에 해외 투자자문 법인을 설립했다. 인프라, 에너지, 부동산, 사모주식 등 대체투자 자산뿐만 아니라 채권과 같은 전통 자산 등 약 1조5000억원 규모의 투자자산을 자문하고 있다.

미국 도로를 다니다보면 사고가 났을 경우 연락하라는 법률 회사의 홍보 문구를 자주 볼 수 있다. 미국의 발달된 소송 문화를 보여주는데 보험사업을 하기에는 어려운 환경이다. 소송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적은 상품 위주의 보험 영업 전략이 필요한 이유다./사진=배규민 기자
미국 손해보험, 1000조원대 블루오션 시장
국내의 포화한 보험시장과 달리 미국 보험시장은 블루오션이다. S&P Global Insurance Statutory Market Share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미국 손해보험 전체시장은 원수보험료 기준으로 9642억2890만8000달러(약 1336조1320억원)에 달한다. 3년 연평균 성장률은 9.9%다. DB손해보험이 미국에서 주로 판매하는 상품 기준으로는 1431억947만1000달러(원화 약 198조3497억원) 시장이다. 3년 연평균 성장률이 12.1%에 달한다. DB손해보험의 직전 3년 연평균 성장률은 27.7%로 현지의 성장률을 웃돈다.

시장 규모 자체가 크고 성장 속도도 빠르지만 진출하기가 쉽진 않다. 미국은 하나의 나라지만 'USA'라는 이름처럼 50개주로 이뤄져 있고 각 주마다 사업 면허를 별도로 취득해야 사업을 할 수 있다. 게다가 관련 법과 규제도 모두 다르다. 영업환경이 지역별로 달라 상품과 판매채널, 고객에 관한 사전 이해가 필수다. 사업 면허를 따는 데도 주마다 최소 2~3년이 걸린다. 정경진 미주 사업본부장은 "50개 나라에 각각 진출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어렵게 진출하더라도 경쟁에서 살아남는 생존은 다른 문제다. 국내에 비해 보험료가 비싸지만 그만큼 손해율도 높다. 수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보험료를 올려야 하는데 주 당국의 허가가 필요하다. 투표를 통해 선발되는 주지사는 보험료 인상에 부정적이어서 버티지 못한 보험사들이 사업을 철수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한다. 정 본부장은 "캘리포니아에서도 수익 악화를 견디지 못한 주력 현지 보험사가 하나둘씩 철수하고 있다"고 했다.
"외형 대신 철저히 수익성, 일희일비하지 않아"
DB손해보험도 미국 내 영업 지역을 지속해서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캘리포니아 주택보험(DIC) 신규 사업을 시작으로 올해는 애리조나주, 알래스카주, 매사추세츠주에서 신규사업을 개시했다. 하반기에는 뉴저지에서의 신규 사업도 준비하고 있다.

단순히 외형을 넓히는 게 아니라 철저히 수익성에 집중한다. 그동안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수익성·사업성이 검증된 특화 시장을 발굴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경험을 많이 축적한 상품·업종을 중심으로 신규 시장을 확대하는 전략을 유지 중이다. 미국이 워낙 넓기 때문에 물리적인 지점 확대보다는 판매채널 협력사를 확대하고 원격으로 관리하는 등 효율성을 철저하게 따진다. 정 본부장은 "코로나 이후 미국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보험 원가도 많이 올랐다"면서 "언더라이팅을 강화하고 시장 변화에 기민하게 움직여 수익성이 더욱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DB손해보험의 현지 전략은 '작지만 믿을 수 있는 강한 회사'다. 현지 보험사에 비해 브랜드 파워, 인프라 등 모두 열세지만 본사의 신용등급과 자본력이 받쳐 주기 때문이다. DB손해보험은 지난해 해외사업을 총괄하는 해외사업 부문을 신설하는 등 해외사업에 더욱 힘을 싣고 있다. DB손해보험이 꾸준히 미국 시장을 확대할 수 있는 배경에 대해 정 본부장은 "위기가 한두 번이 아니지만 일희일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애너하임(미국)=배규민 기자 bk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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