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애쓰지 않아도 돼"[정덕현의 끄덕끄덕]
[정덕현 문화평론가]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2’의 누적관객수가 771만 명(16일 기준)을 넘어섰다. 국내 개봉 픽사 애니메이션 최다 관객을 동원했던(724만 명) ‘엘리멘탈’의 기록을 깬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 흥행이 끝이 아니라고 예상한다. 800만 혹은 900만 관객 기록도 충분히 낼 수 있는 장기 흥행의 예감을 보이고 있어서다.
‘인사이드 아웃2’에서 라일리는 사춘기 소녀로 성장해 자신이 동경하는 고교 명문 하키팀에 들어가고 싶어하고 그 기회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 성장통으로 등장하는 감정이 바로 ‘불안’이다. 혹여나 어렵게 얻은 기회를 놓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은 라일리를 더욱 노력하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 즉 이 불안이라는 감정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걸 이 영화는 보여준다. 하지만 문제는 불안이 과도해지면서 생겨나는 부작용들이다. 불안에 잠식당한 라일리는 자신의 성취를 위해 친했던 친구들을 등한시하거나 때로는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해버리는 부정적인 일들도 저지른다. 또한 불안과 함께 등장한 캐릭터인 부러움 같은 감정도 이러한 라일리의 불안을 더욱 부추긴다. 불안과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동경하고 부러워하는 건 자신을 성장시키는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그 역시 과도해지면 시기나 좌절이 따라붙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 불안이나 부러움 같은 새로운 감정들이 야기하는 부정적인 느낌은 과거 기쁨이나 슬픔 같은 감정들이 만들어 놓았던 긍정적인 느낌들과 부딪쳐 내적 갈등을 만들어낸다. 기존 감정들이 만들었던 자아가 끊임없이 라일리에게 ‘나는 좋은 사람이야’라고 속삭일 때, 불안 같은 감정들이 만든 새로운 자아는 ‘난 아직 부족해’라고 말한다. 이 상반된 두 감정이 맞부딪치면서 결국 라일리는 패닉 상태에 빠져든다. 무엇 하나 제 감정을 추스를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서사는 우리네 사회의 기저에 깔려 있는 불안 정서를 건드리면서 이 작품에 보다 깊게 공감하게 만든다. 패닉 상태에 빠진 불안이를 기쁨이 같은 다른 감정 캐릭터들이 꼭 껴안아주며 ‘괜찮다’고 보듬어주는 장면은 그래서 놀랍게도 우리네 관객들(특히 성인들)의 심금을 울린다. 그건 라일리의 상황이 바로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각자도생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우리들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는 공감 때문이고, 무엇보다 우리가 그렇게 힘들고 외롭다고 여겨질 때 적어도 우리 안에는 우리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고마운 존재들인 감정들이 있었다는 뭉클한 인식 때문이다.
우리네 사회의 압축성장 과정을 들여다보면, 바로 이 불안을 부추기는 경쟁사회가 만들어낸 강력한 동력을 발견하게 된다. 누군가와 경쟁해야 하고, 경쟁에서 떨어지면 낙오하게 된다는 불안감은 우리를 끊임없이 채찍질함으로써 그 짧은 기간 안에 그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뤄낸 힘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는 결국 스스로를 부족하다 여기고 채찍질하는 자기희생이 담보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제 어느 정도 경제적 발전을 이뤄냈지만, 그 만만찮은 후유증들이 우리 앞에 놓였다. 그중에서 가장 심각한 건 양극화로 인해 누군가는 부유해졌지만 여전히 그러지 못한 이들이 갖는 불안과 좌절의 감정들이다. 그건 비뚤어진 사회 시스템이 만들어낸 결과지만, 사회는 자꾸만 그걸 개인의 부족함으로 밀어낸다. 당신이 성장하지 못하는 건 당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난 아직 부족해’라는 라일리 내면의 목소리는 그래서 지금도 우리 안에서 계속 울려 퍼지고 있다.
‘토닥토닥! 너무 애쓰지 않아도 돼!’ 최근 픽사에서 한국관객들을 위해 제작 공개한 스페셜 아트에는 ‘인사이드 아웃2’에 등장했던 캐릭터들인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 당황, 따분, 부럽이 불안 캐릭터를 꼭 껴안아주는 장면과 함께 그런 카피가 더해졌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 애쓰거나, 성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나의 부족함을 찾아내고 채찍질해온 우리에게 그 카피는 말하고 있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너로 충분하다고.
방탄소년단이 전 세계의 청춘들을 공감시켰던 메시지가 바로 ‘러브 유어셀프’(Love Yourself)였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그것 역시 우리네 불안사회가 야기한 우리 스스로를 그냥 놔두지 않게 된 현실과 맞물려 자연스럽게 나온 목소리가 아니었을까. 불안사회를 넘어서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사회로 나가는 길. 그건 어쩌면 압축성장 이후 지금껏 이어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후유증이 해결해야 할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아닐까 싶다.
최은영 (eun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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