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기원 창립 100주년…날 세우는 ‘사무라이’ 바둑

2024. 7. 1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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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7월17일 출범, 현대바둑의 골격 설계
자국내 여자바둑리그 첫 출범…대중화 ‘시동’
국제기전 성적 UP…한·중·일 ‘신삼국지’ 조짐
조치훈 9단, 2개 암 진단...수술 후 회복세
일본기원은 17일 자국내·외 바둑계 주요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도쿄 오쿠라호텔에서 창립 100주년 행사를 개최, 향후 청사진 등을 밝혔다. 한국기원 제공

본격 프로바둑기전 ‘본인방전’(1939년), ‘세계아마바둑선수권대회’(1979년), ‘세계바둑연맹’(1982년), 바둑 국제기전 ‘후지쓰배’(1988년).

족적들은 굵직했다. 적지 않은 시간 속에 가로·세로 각각 19줄로 점철된 반상(盤上) 생태계의 근간을 설계한 흔적이다. 공통 분모엔 모두 ‘세계 최초’란 수식어가 동반되면서 의미는 배가됐다. 한 세기 동안 걸어온 일본기원의 발자취가 그랬다. 이렇게 세계 바둑 역사의 한 페이지로 자리매김한 일본기원은 지난 1924년7월17일 출범, 현대바둑의 여명기에 골격 형성을 주도했다. 오늘날 바둑 대국의 기본 방식인 제한시간과 초읽기 개념 등도 일본기원에서 처음으로 도입했다.

일본기원은 17일 도쿄 오쿠라호텔에서 창립 100주년 행사를 가졌다. 이 행사엔 이마이 다카시 일본기원 총재와 이케노보 마사후미 관서기원 이사장, 이시다 요시오 일본기원 고문 등을 포함해 자국내 주요 바둑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100년 역사의 일본기원 히스토리 영상 상영으로 시작된 이 자리엔 한국기원과 중국기원, 대만해봉기원 주요 관계자들도 동참했다.

지난 1924년7월17일 출범, 세계 바둑 역사의 한 페이로 자리매김한 일본기원은 현대바둑의 여명기에 골격 형성을 주도했다. 일본기원 홈페이지 캡처

이날 행사에선 일본내 여자바둑리그(팀 우승상금 500만엔, 한화 약 4,400만 원) 창설 소식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이달 27일부터 시작될 이 리그에선 팀당 4명의 기사로 구성, 총 5개팀이 각축전을 벌일 예정이다. 이미 한국과 중국에선 활발한 여자바둑리그 단체전의 일본내 출범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기원측에선 자국내 여자바둑리그 1위팀과 중국 및 한국 여자바둑리그 우승팀의 대항전까지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기원의 이런 적극적인 행보는 요즘 최고조에 달한 자국내 반상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무엇보다 그동안 고전했던 국제대회 성적이 예사롭지 않다. 최근 진행된 ‘제10회 응씨배 세계프로바둑선수권대회’(우승상금 5억5,000만 원)에서 이치리키 료(27) 9단이 중국 바둑의 간판스타인 커제(27) 등에게 승리, 결승 티켓까지 따내면서 일본 열도를 흥분시키고 있다. 일본의 세계 메이저 기전 결승 진출은 지난 2018년 ‘제22회 LG배 기왕전’(우승상금 3억 원) 이후 8년 만이다. 4년 마다 개최, ‘바둑 올림픽’으로 알려진 응씨배 상금은 세계 메이저 기전 가운데 최대 규모다. ‘제10회 응씨배’ 결승은 다음달 12일부터 이치리키 료 9단과 중국의 셰커(24)의 5번기(5판3선승제)로 치러진다.

일본 여자 바둑의 기세도 상당하다. 우에노 아사미(23) 5단은 지난달 말, 마무리된 ‘제10회 황룡사배 세계여자바둑대회’(우승상금 30만 위안, 한화 약 5,700만 원)에서 세계 여자 랭킹 1위인 한국의 최정(28) 9단 등도 누르고 준우승을 차지했다. 한 때 세계 반상의 주연으로 활약했지만 시대 흐름에서 벗어난 낡은 대국 방식만 고수, 세대 교체 실패와 더불어 들러리로 내몰렸던 일본 바둑이 정상궤도에 복귀한 양상이다. 일각에선 벌써부터 그동안 한국과 중국, 양강 체제로 굳어졌던 세계 바둑계에 일본이 강력한 도전자로 합류하면서 ‘신삼국지’ 구도까지 예상되고 있다. 전직 한국 바둑 국가대표팀 코칭스태프 관계자는 “인공지능(AI)이 반상 스승으로 등장한 이후, 한국과 중국 기사들에 비해 일본 선수들의 실전 대국 능력이 가장 좋아진 것 같다”며 “앞으로 국제 기전에서 일본 선수들의 활약상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바둑계 안팎에선 “조만간 일본에서도 세계 메이저 기전 개최도 이뤄지는 게 아니냐”는 희망 섞인 기대도 나온다. 국제무대에서 부진만 거듭해온 일본은 지난 2011년 ‘제24회 후지쓰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우승상금 1,500만 엔, 당시 한화 약 2억900만 원) 이후, 메이저 기전 개최를 포기했다.

일본의 이치리키 료(27·오른쪽) 9단이 지난 9일 중국 저장성에서 벌어졌던 ‘제10회 응씨배 세계프로바둑선수권대회’ 준결승 3번기(3판2선승제)에서 중국 바둑의 간판스타인 커제(27) 9단에게 첫 판을 내줬지만 2,3국을 잇따라 승리하면서 2승1패로 결승행 티켓까지 따냈다. 일본의 세계 메이저 기전 결승 진출은 지난 2018년 ‘제22회 LG배 기왕전’ 이후 8년 만이다. 당시, 이야마 유타(35) 9단은 중국의 셰얼하오(26) 9단에게 패하면서 준우승에 머물렀다. 한국기원 제공

한편, 일본기원 창립 100주년에 앞서서 희소식도 알려졌다. 일본 바둑 상징인 조치훈(68) 9단의 호전된 건강 상태가 전해진 것. 조 9단은 최근 일본내 한 언론에 2개의 암 진단을 받았다고 보도되면서 우려도 자아냈다. 조 9단의 최측근은 “집안에서 대장암 이상 징후를 가족들이 발견하고 병원에서 검진하던 도중에 식도암 증세도 함께 진단됐다”며 “현재는 대장암 수술을 받고 방사선 치료를 끝낸 상황인데, 병원에 통원 치료를 하면서 회복 상태에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말, 일본 프로바둑계에선 처음으로 통산 1,600승에 도달한 조 9단은 첫 7대 주요 기전 전관왕과 함께 통산 16회 우승 기록 등을 보유한 ‘사무라이 바둑’의 아이콘이다.

허재경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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