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에 진심, 구매력도 빵빵… 어르신 ‘입맛’을 잡아라
식품 업체들이 시니어 소비자를 겨냥한 제품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한국보다 앞서 고령화가 시작된 일본에서 치아가 약해지고, 소화 기능이 떨어지는 시니어를 대상으로 제품을 쏟아냈는데, 한국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시니어용 식품이라 하면 특정 질병이 있는 환자들을 위한 제품이 일반적이었는데, 이제 그 대상이 환자를 넘어 시니어 전체로 확대되고 있는 모양새다. 분유, 단체급식을 주력으로 하는 회사들도 시니어용 식품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백화점에도 시니어 식품 전용 매장이 문을 열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시니어용 식품이 병원을 뚫고 백화점까지 나왔다”며 “평소 건강 문제에 관심이 많은데다 구매력도 있는 시니어 소비자를 잡아야 생존할 수 있다는 인식이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시니어 시장 잡아라
현대그린푸드는 17일 현대백화점 중동점에 건강식 브랜드 ‘그리팅’ 매장을 열었다. ‘노인’ ‘시니어’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지만 제품 면면을 뜯어보면 시니어를 주 소비자로 겨냥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더 부드러운 돼지고기 장조림’이란 제품은 언뜻 일반 장조림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와 함께 개발해 씹기 쉽고 소화가 잘되게 만들었다. 이 회사는 460여 종의 제품을 출시했는데, 이 중 250여 종이 저당, 고단백을 앞세운 건강식단이다. 회사 관계자는 “백화점 고객 중에는 구매력 있고 건강에 관심이 많은 시니어가 많다”며 “시니어 소비자를 위해 백화점에 매장을 열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그리팅 매출은 2022년 대비 35% 늘었고, 올해 1분기에도 지난해 1분기 대비 23% 증가했다.
현대그린푸드뿐 아니다. 아워홈·매일유업·대상·풀무원·hy 등도 시니어 소비자 잡기에 나서고 있다. 단체급식, 분유, 일반 식품을 주력으로 하는 회사들도 시니어용 식품 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매일유업은 2007년 대웅제약과 환자식을 생산하는 합작사를 만들어 병원 등에 납품해왔다. 하지만 올해 초 대웅제약 지분을 전량 인수해 자체 사업부로 흡수했다. 기존 환자들을 위한 브랜드 ‘메디웰’은 유지하고 있지만, 대상을 환자뿐 아니라 일반 시니어로 확장했다. 지난 5월에는 3대 영양소(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와 25가지 비타민, 미네랄을 담아 우유처럼 마실 수 있는 제품을 출시했다. 이 회사는 “남녀노소 누구나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균형 영양식”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대상 계열사 대상웰라이프는 초창기 병원 납품 위주였던 액체 형태 환자식 브랜드 ‘뉴케어’의 유통 채널을 마트·홈쇼핑·이커머스 등으로 확대했다. 대상웰라이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매출(3089억원)의 70% 이상이 B2C(기업-소비자 간) 시장에서 나왔다.
◇시니어 식품은 글로벌 트렌드
정부도 시니어 식품 시장의 성장에 발을 맞추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고령친화우수식품을 지정하고 있다. ‘1단계:치아 섭취’ ‘2단계:잇몸 섭취’ ‘3단계:혀로 섭취’ 등으로 분류했는데, 지난해 말 기준 기업 34사의 제품 176종이 고령친화우수식품으로 지정됐다. 식약처는 2020년 당뇨·신장 질환 환자를 위한 식품 기준을 새로 정한 데 이어, 2022년 암 환자용, 작년 고혈압 환자용 식품 기준을 추가로 마련했다. 2026년까지 폐질환, 간질환, 염증성 장질환 맞춤형 식품의 제조 기준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시니어 시장 잡기는 글로벌 트렌드다. 네슬레는 자회사 네슬레 헬스사이언스를 통해 당뇨·위장 질환 등에 효과가 있는 건강기능식품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다논 역시 계열사 뉴트리시아를 통해 초기 치매·암·영양실조 등에 도움이 되는 제품들을 출시했다.
일찌감치 고령화를 경험한 일본에서는 제품이 다양할 뿐 아니라 분류도 세분화되어 있다. 시니어를 겨냥한 제품의 포장지에는 해당 제품의 경도·점도를 1~4단계로 나눠서 표기한다. 이를 통해 소비자는 본인이 원하는 경도나 점도 수준을 파악해 제품을 선택할 수 있다. 일본 시장조사 기관 야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일본의 시니어 식품 시장은 2022년 936억엔(약 8200억원) 규모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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