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에 맡겨 자식들 유산 다툼 막는다… 4년 새 4배로

최아리 기자 2024. 7. 18.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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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 대용 신탁 시장 급성장
그래픽=양인성

30여 년간 회사를 운영해온 A씨(70)씨는 최근 상속을 계획하다 하나은행의 유언 대용 신탁 상품을 계약했다. 회사원인 큰아들과 회사를 승계할 예정인 둘째 아들이 상속 과정에서 법적 다툼에 휘말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큰아들에게는 부동산을 물려주고, 둘째 아들에겐 회사와 작은 규모의 부동산을 물려주는 방식으로 설계해 계약했다.

유언 대용 신탁은 이름 그대로 유언을 대신해 재산을 은행 등 신탁회사에 맡기는 신탁 상품이다. 은행 등은 생전에 재산을 관리해주다 사후에 설계한 대로 이를 배분해주는 역할을 한다. 대신 계약보수, 집행보수, 관리보수 등 수수료를 받는다. 수수료는 상품마다 다르다.

최근 유언 대용 신탁 시장이 크게 확대되고 있다. 고령 인구와 상속재산 규모가 늘면서 사후에 재산 분쟁이나 자녀들의 재산 탕진 등을 막기 위해 생전에 상속 계획을 짜고 그대로 실행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상속 및 증여재산 규모는 188조4214억원으로 5년 전(90조4496억원)의 2배로 늘었다. 현재 시중은행의 유언 대용 신탁 계좌는 약 5만건에 달한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유언 대용 신탁 잔액은 2020년 말 8800억원에서 올해 2분기말 3조5000여 억원으로 늘었다. 4년도 안 돼 4배 가까운 규모로 커진 것이다.

그래픽=양인성

◇유언 대용 신탁은 유언장보다 유연

유언장을 남기면 되는데 유언 대용 신탁 상품을 선택하는 이유가 뭘까. 공증인이 작성하는 공정증서 유언장은 증인 2명이 있어야 하는 등 법적 효력을 가지기 위한 절차가 까다롭다. 반면 신탁 상품은 본인이 가입하고, 은행이 대신 집행해주기 때문에 비교적 편리하다. 또, 사전에 계약한 대로 집행하기 때문에 추후에 법정 분쟁에 휘말릴 일이 적은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설계도 비교적 유연하다. 자식이 10년간 회사 근무, 박사 학위 취득 등을 조건으로 상속이 가능하게 하거나 미성년을 대상으로 상속한다면 일정한 연령이 될 때까지 대신 재산을 관리해주는 것 등도 가능하다.

다만, 유언 대용 신탁을 통해 맡길 수 있는 재산에는 부동산, 금전, 금전채권, 유가증권 등만 가능해 제한이 있다. 부동산 중 논·밭·과수원은 신탁이 불가능하다.

시중은행들은 유언 대용 신탁 수요가 느는 데 대응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하나은행은 이를 전문으로 하는 ‘하나 시니어 라운지’를 지난 4월 열었고, 신한은행도 ‘신한 신탁 라운지’를 열고 운영에 나섰다. 보험사들도 뛰어들고 있다. 이달 교보생명이 종합 신탁 업자 인가를 받으면서 삼성생명·미래에셋생명·한화생명·흥국생명·삼성화재 등 총 6곳이 종합 신탁 사업을 운영 중이다.

그래픽=양인성

◇가입 문턱 낮추며 대중화

과거 유언 대용 신탁은 주로 고액 자산가들이 재산 관리 차원에서 가입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최근엔 가입 문턱을 낮춰 대중화하고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현재 최소 가입 금액은 5000만~10억원 정도다. 하지만 송은정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 팀장은 “고객 요구에 맞춰 설계하는 만큼, 100만원·1000만원 등 비교적 적은 금액으로도 가입할 수 있다”고 했다. 이달 초 하나금융연구소가 발간한 ‘중산층의 상속 경험과 계획’ 보고서에 따르면 총 자산 상위 50% 이상의 상속 계획자 67%가 금융권 상속 전문 서비스를 이용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다만 고령화가 우리보다 진전된 일본보다는 신탁 가능 재산이나 위탁 가능 업무가 제한적인 것은 향후 대중화를 위해 개선할 점으로 꼽힌다. 지난 8일 열린 ‘미래의 거대 트렌드가 가져올 금융의 변화’ 세미나에서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기조 연설을 통해 “인구구조 변화로 고령자를 위한 노후 자산 신탁에 대한 관심이 증가할 것”이라고 했다.

☞유언 대용 신탁

살아 있을 때 재산을 두고 은행 등 금융회사와 신탁계약을 하면, 은행 등이 재산을 관리해주다 사망 시 계약 내용대로 배우자·자녀·제3자 등 수익자에게 재산을 분배하거나 관리해주는 상품이다. 유언을 대체하는 한편, 유언장에 비해 유연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상속 계획을 짤 수 있는 게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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