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용의 물건만담] 트럼프 피격, 그 순간의 카메라
‘화보는 캐논·보도는 니콘’도 이제 옛말… 소니가 천하통일
전통적인 뷰파인더·셔터스피드 8000분의 1초로 각각 촬영
카메라도 놀랍지만 결국은 소명의식… 모든 직업의 덕목이다
내 생업이었던 잡지 에디터의 중요한 직무 중 하나는 사진가와의 협업이다. 각 페이지를 만들 때 글과 이미지를 비롯해 어떤 요소가 필요할지 에디터가 정하고, 필요할 경우 적합한 사진가를 불러 함께 최적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지면의 작가인 동시에 페이지에서의 감독 같은 역할을 하고, 사진가는 촬영감독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런 관점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피격 순간을 담은 사진들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일단 어떤 카메라를 썼을까. 세계의 카메라 애호가들은 이날 전설적인 사진을 촬영한 AP통신 사진기자 에번 부치의 카메라가 소니 알파 9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이날 두 대의 소니 알파 시리즈 카메라와 함께 현장에 있었다. 알파1 카메라에는 최대 400㎜ 렌즈를 끼우고, 배율을 추가로 높여주는 텔레컨버터를 장착했다. 알파9 카메라에는 표준 렌즈라고 할 만한 24-70㎜ 렌즈를 장착했다. 트럼프가 주먹을 쥔 사진은 알파 9로 촬영했다. 화각은 24㎜. 꽤 넓다.
보도기자의 카메라가 소니라는 사실부터가 기술 및 시장 변화의 증거다. 소니는 디지털 카메라의 후발 주자다. 오랫동안 프로용 카메라 시장은 DSLR의 강자 니콘과 캐논 차지였다. 내가 잡지 일을 처음 시작할 때인 2000년대 후반엔 ‘화보는 캐논, 보도는 니콘’ 같은 말도 있었다. 캐논은 색감이 좋고, 니콘은 연사 성능과 내구성이 좋아서였다. 이제는 모두 소니로 통합됐다. 소니의 신형 미러리스 카메라는 이제 색 계조(階調), 셔터스피드 등 모든 지표에서 라이벌을 압도한다. AP통신 역시 2020년 자사 블로그에 소니 카메라를 쓴다는 사실을 알렸다.
역사적인 사진을 찍은 부치는 촬영 포즈도 달랐다. 현장의 다른 사진기자들은 얼굴에서 카메라를 떼고 액정을 보며 사진을 촬영한다. 요즘 디지털 카메라는 대형 후면 액정이 있어 그렇게 촬영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부치는 팔에 힘을 주고 얼굴을 카메라에 붙인 전통적 자세로 트럼프를 피사체로 담은 사진을 찍었다. 왜 그랬을까. “그때가 너무 밝아서였을수도 있어요. 그 정도 프로라면 (뷰파인더를) 안 보고도 찍겠지만요.” 야외 촬영을 자주 하는 사진가 표기식의 의견이다. 사건이 일어난 그때는 오후 6시였지만 해가 쨍쨍했다. 외부 뷰파인더로 보면 사진에 뭐가 담길지 잘 안 보였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그 혼란 속에서 홀로 뷰파인더를 응시하던 부치의 집중력은 역시 퓰리처상급이다.
촬영된 사진의 셔터 스피드도 음미할 가치가 있다. 이번 피격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 두 장은 모두 촬영 당시 메타 데이터가 공개되어 있다. 부치의 사진은 셔터스피드 4000분의 1초, 총알의 궤적을 담은 뉴욕타임스 더그 밀스 기자의 사진은 8000분의 1초로 촬영됐다. 8000분의 1초라는 찰나를 담는 기술이 있었기 때문에 총알의 궤적을 기록했다고도 볼 수 있다. 참고로 소니 알파 시리즈가 속한 미러리스 카메라 장르에서 최초로 셔터 스피드 8000분의 1초가 구현된 건 2013년이다.
사실 이론적으로는 조금 더 또렷하게 찍을 수도 있었다. 밀스의 카메라인 소니 알파 시리즈는 전자 셔터를 사용할 경우 셔터스피드를 3만2000분의 1초까지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왜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그렇게까지 셔터 스피드를 올리려면 모드를 바꿔야 해요. 그리고 사진을 예전에 배운 사람들의 머릿속 기능은 8000분의 1초까지예요. 그 짧은 시간에 (다른 기능이) 생각나지는 않았을 거에요.” 캐논을 쓰다가 소니로 바꾼 사진가 신규식의 추측이다.
사진은 편집의 예술이기도 하다. 부치의 사진은 원본과 비교했을 때 테두리가 약간 잘려 있다. 원본 기준으로 가운데 부분을 잘라 썼다. 사진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이걸 ‘크롭’ 했다고 표현한다. 테두리를 잘라 메시지를 극대화했다고 볼 수 있다. 세기의 사진은 현장에 최대한 바짝 붙은 뒤 화각 24㎜ 광각으로 촬영하고 가운데 부분을 잘라내 만들어졌다.
세기의 결과물은 교훈을 주기 마련이다. 이 사진도 그렇다. 현장 가까이 가라. 침착해라. 신기술을 적절히 활용해라. 현장에서 정보를 최대한 모으고 나중에 편집해라. 그리고 일에 대한 소명의식을 가져라. 사진을 넘어서는 모든 직업군의 덕목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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