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의 이제는 국가유산] [6] 나무의 시간
장맛비에 천연기념물 나뭇가지가 부러졌다. 1966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이다. 직경 35㎝가량의 가지가 꺾였지만, 수령이 약 700년으로 알려진 우람한 나무이다 보니 큰 지장이 없어 보여 그나마 다행이다. 부러진 나뭇가지를 발견하고 재빨리 조치하게 연락한 사람은 용계리 이장이다. 물가에 매어 둔 배로 가려던 길이었다.
어부이며 농부인 그의 고향이자 삶의 터인 용계(龍溪)는, 용이 누운 형상으로 뒤로는 산을 휘두르고 앞에 물을 둔 마을이다. 조선 시기부터 은행나무를 보호하는 계를 조직했다는 유서 깊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나무는 길안초등학교 용계분교 운동장 한편에 위치해 아이들의 웃음까지도 품은 든든한 당산목이었다. 그러다 1985년 임하댐 건설 계획으로 마을과 같이 수몰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마을 주민은 물론이고 관련 전문가와 기관, 대통령까지 나서서 은행나무를 살릴 방법을 찾았다. 많은 논의 끝에 제 자리에서 특수 공법으로 나무를 15m 올려 심는 상식(上植)을 택했다. 1990년부터 약 4년의 공사로 총 24억원이 넘는 사업비가 들었고 1994년 주변 마무리 공사까지 완료했다. 그러다 보니, 용계의 은행나무는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 25주 중 ‘가장 비싼 은행나무’라는 별칭이 붙었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를 올려 살린 사례로 2013년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올해 10월이면 상식을 완료한 지 30년이다. 그사이 오랜 세월 나무 곁을 지켰던 할머니도 은행나무가 내려다보이는 산 위에서 영면에 드셨다. 할머니 때문인지 은행이 열리는 암나무임에도 할배나무로 불렸던 일도 이젠 희미해졌지만, 고향 마을을 물속에 묻어 둔 수몰민의 향수 어린 장소로 남았다.
수몰 전 100여 가구였던 마을에는 이제 24가구 46명의 주민이 있다. 임하댐의 수위도 만수일 때가 많아, 흔적이 남아 있던 옛길도 찾기 힘들다. 그럼에도, 나아지는 고향과 은행나무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거는 91년생 젊은 이장을 응원한다. 그리고 ‘나무가 춤을 추면 바람이 불고, 나무가 잠잠하면 바람도 자오’라 표현한 시인의 마음도 좇아 오래된 나무의 시간에 기대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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