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동가름 돼지 인생
제주에서는 동쪽 마을을 ‘동가름’이라 한다. 가름은 마을, 동네란 뜻. 동가름 표선의 해창 집에서 몇밤을 쉬다가 귀가. 사나운 장마에 비설거지를 마치면 다시 되돌이표 돌아갈 예정이다. 동가름에서는 흙이 찰진 밭을 ‘달진밭’이라 하고, 몽글한 밭을 ‘별진밭’이라 한단다. 밭에 달이 뜨고 별이 뜬다는 소리.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밭이면 이름조차 이리 예쁠까.
검질(잡초)에 시달리다가 결국 일어나 촐(꼴)을 베고, 저녁에는 간만에 돼지뼈를 우린 물에 순대와 돼지고기, 해초 모자반, 메밀가루 걸쭉히 갠 물을 넣어서 몸국이 완성. 두어 점 고기를 얹은 고기국수로 해장도 한다. 국수를 먹으러 해변길을 따라 읍내로 나갔는데, 아주망~ 아는 체를 하고 들어간다. 며칠 제때 제시간에 들렀덩만 눈만 깜박, 두말이 없다.
보리밭 농사에 거름으로 돼지똥만 한 게 없어 도새기(돼지)를 그렇게 많이 길렀단다. 마을 잔치에 고기를 고루 나누는 일꾼을 ‘도감’이라고 했다지. 도감이 굵게 썰면 잔치에 손님이 적다는 소리. 될 수 있으면 얇게 썰고 잘 얹어내야 “혼저(어서 빨리) 먹읍서. 베지근허고 좋수다” 흡족한 얼굴들이 된다.
잔치에 오지 못하는 병든 노인이나 이웃에게도 애들을 시켜 ‘고기반’ 한 접시씩 돌렸는데, 이를 ‘출반’(반: 제사나 잔치 때 남은 음식)이라 한다. 낮에는 물질(바닷일)이나 우영 밭일, 밤엔 바농질(바느질), 쉴 틈이 없으나 틈틈이 굴묵(아궁이)에 땔 나무도 구하고, 떼담(돌담) 안쪽에 돼지우리도 살폈다. 도새기나 몽생이(망아지)가 할강할강(헐떡)거리며 잘 놀면 살맛이 났던 세월이었지. 불과 반세기 전 얘기다.
다시 비가 몰려오네. “하늘이 멜라졌나(무너졌나) 비가 이추룩(이토록) 내리민. 하~ 누게사(누가) 데령(데리고) 잡아가신디….” 소화가 전혀 안 된, 동가름 돼지 인생이 빗길에 슝슝~ 저격수의 총알을 피하듯 달음질로 돌아왔다.
임의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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