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숨의 위대한 이웃]세상에서 가장 귀한 그녀, 전주연씨
“내게는 무표정만 있어요.” 그녀는 무표정한 자신의 표정이 궁금하다. 그녀는 자신이 무표정한 것이, 다른 사람의 표정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표정은 뭘까? 눈빛은 뭘까? 눈빛을 마주치며 말을 나눈다는 건 뭘까?’ 그녀는 선천성 전맹으로 빛조차 지각하지 못한다.
토요일 오후, 식탁에 혼자 고요히 앉아 있던 그녀는 문득 나직이 중얼거린다. “나는 귀한 존재야.” 파기름에 계란과 밥알을 볶을 때 풍긴 냄새가 공기 중에 퍼져 있다. 그녀는 점심으로 계란볶음밥을 요리해 아이들과 먹었다. 고1인 딸과 중1인 아들은 각자 방에 들어가 있다. 한창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세계에 머물다 불쑥 방문을 열고 나와 그녀에게 재잘재잘 말을 걸 것이다.
“낳고 싶어, 낳을 거야.” 딸을 임신하고 그녀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고 말했다. 시어머니는 전맹인 아들 부부가 자식을 갖는 걸 반기지 않았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이 그들에게 고난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너무도 낳고 싶었고 낳았으며 아기를 품에 안고 “내가 엄마야, 엄마 얼굴 잘 봐둬”라고 속삭이는 기쁨을 맛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잘한 일이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두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직장에서 일할 때 내 집을 생각하면 각자의 웃음소리(남편, 딸, 아들)가 떠오르면서, 뭉클하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안마사 자격증이 있는 그녀, 전주연씨(43)는 카드회사에서 헬스키퍼로 근무하고 있다.
그녀는 고요히 앉아 있지만 누구보다 열정적이어서 사랑도 아쉽지 않게 했다. 남편과 “마음을 다해 사랑했고 변함없이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있다. 친구들에게도 줄 수 있는 마음을 다 주고 있다. “노래 부를 때도 좋아하는 노래면 진실된 감정을 담아서 나의 노래인 것처럼” 부른다. 그래서 그녀가 부르는 노래는 모두 그녀의 노래가 된다. 학창 시절 학예회 때 연극 <백설공주>의 못된 왕비 역을 맡았을 때도 그 역할에 온전히 몰입했다.
‘무표정한’ 그녀의 얼굴에 잔잔한 물결이 번지듯 어떤 표정이 번진다. 세상 아무도 지을 수 없는, 오직 그녀만이 지을 수 있는 독보적 표정이다. 그녀는 방금 행복하다고 느꼈다. 그녀는 자주 행복하다고 느끼는데, 그 비결은 ‘행복이 뭔지 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누군가가, 엄마나 아빠가 내게 행복을 가져다줄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어요. ‘행복’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섰어요.”
어릴 때는 행복이 뭔지 몰랐다. 부모님은 그녀가 다섯 살 때 이혼했다. 그녀는 충주의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시설에 맡겨졌다. 그곳에서 엄마를 그리워하며 지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서울 맹학교로 전학을 와 기숙사에서 지냈다. 그런데 같은 반에 할머니가 등교를 시켜주는 아이가 있었다. 목소리가 카랑카랑하던 그 할머니는 손녀의 친구들에게 말씀하시곤 했다. “내 손녀가 세상에서 가장 귀해!” 그녀는 그제야 보지 못하는 자신도 귀한 존재가 될 수 있구나, 막연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나를 귀하고 가치 있게 여기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도 그렇지 않게 여긴다는 걸 어렴풋이 깨달았다. 어느 날 그 친구 집에 놀러 갔다, 가족들끼리 웃으면서 단란하게 대화하는 소리를 듣고 그녀는 ‘가정은 이런 거구나’ 하고 느꼈다. 그즈음부터 학교 놀이터에서 엄마가 보고 싶어 울다가도 행복해지고 싶어 친구와 이중창을 부르고 행복감을 느끼려 애썼다. 노래 부르고 뛰고 춤을 추다 보면 어느새 울음이 웃음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녀는 말한다. “행복은 혼자 찾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누군가와 함께 찾아야 찾을 수 있는 거예요.”
귀한 존재인 그녀가 또 자주 외우는 주문이 있다. 마음이 힘들거나 아이들 때문에 속상할 때 “잘하고 있어, 잘할 거야”라고 읖조린다. 그때, 새장 속 백문조가 운다. 그녀는 백문조 한 쌍을 길렀다. 이름은 초코와 우유. 그런데 최근 초코가 세상을 떠났다. 사람 나이로 치면 여든이 넘었다지만 그녀는 초코에게 숲을 보여주지 못한 게 미안하다. 그녀는 새장 속에서 태어나 숲을 본 적 없는 백문조들에게 숲을 보여주는 게 소원이었다. ‘우유에겐 숲을 보여줄 수 있을까?’
김숨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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