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사심으로 사심을 공격한다
예나 지금이나 최고 권력자의 핵심 권한은 인사권이다. 그러나 원론적으로 인사(人事)란 권력자-또는 권력을 이양받은 사람-가 업무의 효율적 수행을 위해 자기 권한을 일정 범위 내에서 타인에게 부여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업무의 효율적 수행이라는 목적에 부합되는 능력을 갖춘 사람에게 특정 권한을 부여할 때, 이를 ‘합리적 인사’라고 말한다. 특히 ‘업무의 효율적 수행’이라는 인사의 목표가 국가 차원이 되면, 공적 차원에서 능력 유무를 판단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조선은 꽤 촘촘하고 체계적인 인사 시스템을 가졌다. 그리고 왕의 인사권도 가능하면 이 시스템 내에서 행사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모든 인사가 그렇게 이상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1627년 음력 5월11일, 정백창에 대한 인사가 그랬다. 당시 인조는 정해진 인사 시스템을 무시하고 왕의 특명으로 정백창을 이조 참의에 임명했다. 조선의 인사 시스템을 관장하는 이조의 핵심 관료를 임명하면서 그 시스템을 무시했던 것이다. 당연히 비판을 전문으로 하는 언관들은 이 문제를 따지고 들었다. 인조와 정백창은 모두 한준겸의 사위로, 일반 사가(私家)의 관계로 따지면 이들은 동서지간이었다. ‘사심(私心)’을 가지고 공적 시스템을 무시했다는 의미이다. 이 때문에 대사헌 이수광과 집의 송상인은 임명되자마자 첫 업무로 정백창을 탄핵하고 나섰다. 창은 정백창을 겨누었지만, 그 대상은 인조의 사심이었다.
인조는 자신의 인사가 공적 판단에 따라 이뤄졌다며 이수광과 송상인의 요청을 거부했다. 그러나 이수광과 송상인은 정백창을 탄핵하지 않을 바에야 자신들을 파직해달라며 인조를 압박했다. 이쯤 되니 인조도 최종 인사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결국 이수광과 송상인은 임명 7일 만에 관직을 잃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언관들의 비판에 체직(遞職)으로 대응한 인조의 조치는 언로(言路)를 틀어막는 행위로 간주되었다. 사간원과 사헌부가 연계해서 이수광과 송상인의 관직 회복 및 정백창의 체직을 요구했고, 홍문관도 여기에 가세했다. 게다가 왕의 후설(목과 혀)이라고 일컬어지는 승정원에서조차 언관들의 요구에 힘을 보탰다. 인조의 ‘사심’에 따른 인사도 문제였지만, 언로를 막아 공적 비판 기능을 무시했던 인조의 태도에 더 분노했다. 결국 인조는 ‘사심을 극복하려 평생 노력했던 일념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들어, 정백창에게 내려진 관직을 물리고 이수광과 송상인을 복직시켰다.
비록 왕의 자존심에 금이 갔지만, 여기서 끝났으면 이 일은 권력자에 대한 비판과 언로 보장의 역사로 아름답게 결론 맺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인조는 신료들에게 무릎 꿇은 사실이 억울했던지, 좋지 않은 방법으로 프레임을 전환시켰다. 그는 언관들을 향해 ‘이치에 맞지 않는 말로 자신들과 의견이 다른 사람을 공격’한다며, 그들 역시 ‘사심’에 따라 행동한다고 비판했다. “사심으로 사심을 공격한다”는 인조의 말은 여기서 나왔다. 공적 영역에서 이뤄진 언관들의 비판을 자신의 사심 수준으로 끌어내렸던 것이다.
한 사회의 공적 가치는 공적 논의를 통해 모두가 동의하는 수준에서 형성된다. 이러한 공적 가치가 만들어지면 낮은 단계로서의 사적 영역, 즉 사심의 작동 역시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공적 가치를 기반으로 공과 사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조처럼 공적 가치마저 사적이라고 공격하면, 그 사회는 공과 사를 구분하는 기준을 잃어버린다. 어느 정치가의 말이 더 공적 가치에 부합되고, 어느 후보자의 말이 더 사적 가치를 추구하는지 판단할 수 없어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공적 경쟁은 단순히 힘을 기반으로 하는 ‘진영 싸움’ 또는 이른바 ‘진흙탕 싸움’ 수준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상호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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