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월급이 0.3 달러

이용수 논설위원 2024. 7. 17.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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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요즘 북한에서 월급과 배급이 나오는 유일한 업종이 군수 공장이라고 한다. 지난 5월엔 연말까지 8개월 치 식량을 한꺼번에 배급했다는 얘기도 있다. 러시아 특수로 포탄 수요가 폭발한 덕분이다. 전국 주요 공장이 밤낮없이 가동 중이다. 다른 기업소들이 개점 휴업인 것과 딴판이다. 요즘 김정은이 가장 자주 시찰하는 곳도 군수 공장이다. 작년 10차례, 올해 7차례 찾았다.

▶한때 북에선 개성 주민들이 선망 대상이었다. 개성공단에서 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20여 한국 기업이 지급하던 월급이 1인당 평균 120달러였다. 북 당국이 달러는 다 빼앗고 월급은 북한 돈 등으로 줬다. 그래도 일반 노동자 월급의 1.5~2배였다고 한다. 그 외에 장마당에서 팔면 북에선 꽤 돈이 되는 초코파이를 4개씩 받았다. 이런 노동자가 5만5000명에 달했다. 개성에선 사지 멀쩡한 성인 전체가 공단에서 일했다.

▶북에서 이런 ‘신(神)의 직장’은 희귀하다. 90% 이상 공장·기업소에서 받는 월급은 1달러가 안 된다. 쌀 1㎏도 살 수 없다. 그나마 대부분 월급을 안 준다. 그러니 너도나도 장사에 뛰어든다. 주로 여자다. 남자가 출근을 안 하면 노동단련대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장사로 남편 월급의 10배, 100배를 벌기도 한다. 요즘은 남자들도 직장에 돈을 바치고 몰래 장사한다. 직장이 월급을 주는 게 아니라 노동자가 돈을 바치는 곳이 북이다. 직장도 은근히 부추긴다. 할 일도 없기 때문이다. 이를 ‘8·3 벌이’라고 하는데 과거 가내수공업을 독려했던 ‘8·3 조치’에서 딴 말이다.

▶북한 공무원들은 이마저 어렵다. 쿠바에서 귀순한 리일규 전 참사는 최근 인터뷰에서 “북 외무성 부국장을 할 때 월급 3000원, 0.3달러를 받았다”며 “넥타이 맨 꽃제비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월급만으론 살 수가 없다는 뜻이다. 해외에 나가면 좀 나아지는데 대사가 600~1000달러를 받는다. 대사관 운영비는 자체 조달한다. 김일성 생일 등엔 충성 자금도 상납해야 잘리지 않는다. 밀수 밀매 등 불법이 일상이다.

▶북 외교관들은 마약, 금괴, 위조지폐를 유통시킨다. 아프리카에선 코끼리 상아를, 쿠바에선 시가를 행낭에 넣어 운반하다 적발되는 일이 다반사다. 외교 행낭이 아니라 밀수 행낭이다. 이렇게라도 달러를 벌 수 있으면 다행이다. 밀수하기 쉬운 후진국이 양지, 그렇지 못한 선진국이 험지다. 모든 것이 부조리하고 황당한 곳이 북한이지만, 그중에서도 ‘월급 0.3달러’는 놀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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