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칼럼] 정치적 리더십과 책임
민주적 절차 계속 무시땐 준엄한 시민 심판받을 것
박철규 대한민국지식중심 공동대표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의 기본 요체인 적법절차와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을 좇아 환호하는 양상이 농후해지고 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적법절차와 과정을 무시한 데다, 소정의 결과를 얻지 못해도 책임을 추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양상은 사회 각계각층으로 퍼져 나가고 있으며, 단적인 예가 대한축구협회의 국가대표 감독 선임 과정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도 정치적 리더십들의 책임이 크다. 정치를 회복하라는 시민의 요구가 드높아지고 있음에도, 보편적 가치는커녕 헌법적 가치조차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 정치를 실종시키고 있다.
7월 17일은 조선왕조 건국일이자 제헌절로 5대 국경일의 하나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이 공포된 날이 조선왕조의 건국일이라는 점은 당시의 정치적 리더십, 제헌의원들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얼마 전부터 1987년 체제로 탄생된 제6공화국을 청산하고, 새로운 미래를 예비하는 제7공화국을 위한 개헌의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무엇이든지 오래되면 낡기도 하고, 시대에 뒤처져 수선하거나 바꾸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최근에는 특정 정당에서 ‘사회권 강화’를 담은 개헌을 주장하고 있다.
지금 전당대회가 한창 진행 중인데 우리를 즐겁게 하는 소식은 그다지 많지 않다. 지금의 정치 상황은 8·15 후 해방공간이나 특히 개항기를 방불케 한다. 왜 우리나라가 근대화에 실패하고 식민지로 전락했는가! 한때 리더십들은 백성들이 무지몽매하고, 하필이면 좋은 영국이나 미국이 아니라, 강도같이 나쁜 일본을 만나서 망했다고 주장하면서 그 책임을 회피했다. 지금은 전혀 통하지 않을 이와 같은 변명이 여전히 통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개항 후 식민지로 전락되기까지 우리에겐 30년이란 기회의 시간이 있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한다. 당시 ‘자주성’과 ‘근대성’을 강조하면서 각축을 벌인 결과 개화파 정권이 수립됐다. 근대화를 위한 일련의 개혁과 민중들의 노력이 있었음에도 결국은 식민지로 전락했다. 당시 정치적 리더십은 무능함을 자인하고, 망국에 대한 책임을 응당히 져야 했다.
국가는 인격체가 아니라 계급 간의 비화해성의 산물이며, 지배계급의 가장 강력한 도구다. 국가는 그 나라 총자본의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전쟁까지도 불사한다. 국제 사회에서 정의란 ‘강대국의 논리’로 작동한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물론 제국을 건설해 본 나라와 그런 경험이 없는 우리나라의 정치적 리더십 자체를 비교,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개항이란 항구를 연다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세계 자본주의 시장에 편입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의 리더십들은 근대화를 너무 미화한 나머지 열강들의 이권침탈 자체를 근대화의 과정으로 보았다. 결국 누구를 위한 근대화인가에 대한 성찰이 부족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점은 세계화에 대한 인식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세계적인 석학들이 세계화는 강대국이 그들의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한 신종 이데올로기라는 것을 지적했음에도 애써 무시했던 것이다.
국가를 유지 지탱시키는 가장 강력한 물리력은 군대이다. 군작전지휘권에 대한 것은 논외로 하더라도,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해서는 자주국방은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다. 부국강병을 지향한 개화파 정권은 군대개혁을 실시했다. 이렇게 탄생된 신식 군대는 국사범들과 작당하여 을미사변에 협조하기까지 한다. 이런 군대가 어떻게 나라를 지킬 수 있었을까. 한편 만국에는 ‘공법과 공도가 있다는 주장’에 동조하면서 열강들과 각종 조약을 맺어 나라를 지키려 했다. 그 결과 망국이라는 너무나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지금의 우리 외교와 군대, 안보 상황은 어떠한가. 개항을 전후한 시기부터 30여 년의 기간 정권을 차지하고 국정을 운영했으나, 식민지로 전락했다. 나라가 망한 것은 정치적 리더십의 무능 때문이지 백성들이 무지몽매해서가 아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적기라 했다. 이제부터라도 정치는 외면하면서 권력은 누리고, 책임은 지지 않는 정치적 인습은 척결돼야 한다. 정치적 리더십은 헌법적 가치를 가슴에 품고, 정치를 회복하여 시민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다는 희망을 선사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시대착오적인 정치행태를 계속해서 보인다면 시민은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시민의 준엄한 심판은 이미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 총선에서 나타났다. 그럼에도 척결하지 않고 정치적 인습을 지속한다면, 향후 어떤 일이 발생하는 지는 우리 현대사의 전개 과정이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그 책임도 정치적 리더십들이 당연히 감당해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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