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 편히 죽으러 이민간다”…한국부자 1200명 ‘엑소더스’, 자녀들도 안 말린다는데

김정환 기자(flame@mk.co.kr), 이희조 기자(love@mk.co.kr) 2024. 7. 17. 20: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진 = 픽사베이]
고액 자산가 A씨(80)는 최근 가족들과 캐나다 이민을 결정했다. A씨는 “상속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는 때가 됐다. 한국에서 죽으면 재산 절반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데 캐나다는 상속세가 없는데다 거주 여건도 좋다”며 “죽으러 이민간다”고 말했다.

최고세율이 50%에 달하는 상속세를 피해 고소득층이 대거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주식 매각차액을 제외하면 해외 이민을 갈 때 갖고 나가는 자산에는 세금이 매겨지지 않는다. 재산을 정리하고 상속세가 없는 캐나다, 호주, 싱가포르로 향하는 부자들이 부쩍 늘어난 이유다.

과도한 세 부담이 결국 고액 자산가들 ‘엑소더스’를 야기하면서 양질의 세원 기반마저 허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 소득과 자산이 크게 늘고 있는데, 세금은 24년 전 상황을 기준으로 그대로 매기는 바람에 세 부담이 중산층까지 광범위하게 확산됐다는 비판도 많다.

17일 매일경제가 법무부와 통계청 출입국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이민 등으로 외국 국적을 취득해 한국 국적을 잃은 사람(국적 상실자)은 2013년 1만9413명에서 지난해 2만5405명으로 30.9% 급증했다.

이 중에는 상속세를 피해 이민에 나선 경우도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세부 통계가 있는 2022년 기준으로 보면, 국적상실자 가운데 상속세가 없는 캐나다와 호주, 싱가포르를 비롯한 13개국으로 옮겨간 국민(8316명)은 최근 10년 새 2배 늘었다. 전체 국적상실자 10명 중 3명(32.7%)이 상속세를 매기지 않는 나라로 이주한 셈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과거에는 개인이 삶의 근거지를 해외로 옮기기가 어려웠지만 지금은 국가간 이동이 훨씬 활발해졌다”며 “상속세를 내지 않기 위해 해외로 이민 가는 사례가 급격히 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최근 영국 투자이민 컨설팅업체 헨리 앤 파트너스는 올해에만 국내 부자 1200명이 무더기로 한국을 떠날 것으로 봤다. 자산가 이탈 규모는 중국(1만5200명), 영국(9500명), 인도(4300명)에 이어 세계 4위 수준이다. 헨리 앤 파트너스는 금융 자산만 최소 100만달러(13억8000만원) 이상 쥐고 있는 부자들이 다른 나라에서 6개월 이상 머문 경우를 기준으로 삼아 자산가 이탈 규모를 추산했다. 자산가들이 가장 많이 정착하는 나라로는 아랍에미리트(UAE), 미국, 싱가포르, 캐나다, 호주가 손꼽혔다. 모두 개인 소득세나 상속세가 없거나 세 부담이 크게 낮은 나라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부자들이 해외로 빠져나간다는 것은 국내에서 걷을 수도 있는 풍부한 세원이 해외로 빠져나간다는 뜻”이라며 “세수 기반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상속세제 개편이 필요해진 상황”이라고 전했다.

더 큰 문제는 높은 세부담이 중산층으로도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는 점이다. 상속세 제도는 2000년 최고세율이 45%에서 50%로 높아진 후 변동이 없다. 반면 그동안 경제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2000년 1428만원에 불과했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지난해 4725만원으로 3배 넘게 뛰었다.

아파트를 보유한 중산층 타격도 덩달아 커졌다. 통상 10억원을 초과한 아파트부터 상속세를 매기는데, 최근 집값 상승세으로 지난달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12억218만원이다. 중산층 가구 거주지인 서울 3분위 아파트 평균 매매가(9억6188만원)도 과세 기준에 바짝 근접했다.

매일경제가 KB월간주택가격동향과 통계청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올해 서울지역 아파트 193만1000가구 중 10억원이 넘는 아파트 비중은 39.9%(77만2400가구)로 이미 상당수 국민이 과세권에 들었다. 이 같은 흐름이 계속된다면 2030년 서울에서 상속세를 부담해야 하는 가구 비중은 80%로 급증할 것으로 추산됐다. 과세대상이 되는 전국 아파트 비중도 올해 5.9%에서 2035년 32.6%까지 빠르게 증가할 전망이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팀장은 “자산가치의 상승으로 예전에는 부자라고 생각할 수 없는 사람들도 상속세 대상이 됐다”고 말했다.

정부는 최대주주 할증평가를 폐지하고, 가업상속공제와 배우자 공제 한도를 늘리는 방식의 세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주요국 대비 높은 세율 인하나 자본이득세 도입 같은 처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최근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여러 국가가 기업 상속시점에 세금을 매기는 것이 아니라 차후 기업을 더 안 하고 팔아서 현금화하는 시점에 세금을 매기는 자본이득세 형태로 전환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자본이득세로 전환하는 전반적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