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교사·학생 인권 ‘제로섬’ 벗어나 교육공동체 복원해야
지난해 7월18일 학부모 민원으로 고통을 겪던 서울 서초구의 20대 초등학교 교사가 순직했다. 수만명의 교사들이 주말마다 교사의 사망 원인 규명과 교권보호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집회를 열었다. 교원단체 주도 없이 교사 수만명이 자발적으로 집회에 참여한 건 유례없는 일이었다. 그 와중에도 죽음의 행렬이 이어졌다. 서울 양천구와 전북 군산, 경기 용인 등지에서도 교사가 숨졌다. 이후 교사의 교육활동을 보호하는 법·제도 개선 작업이 진행됐다. 교육부는 ‘교권 회복 및 보호 강화 종합방안’을 발표했고, 국회는 교육기본법과 초·중등교육법, 유아교육법, 교원지위법, 아동학대처벌법 등 이른바 ‘교권보호 5법’을 개정했다.
1년이 지났다. 그러나 일선 교사들은 별반 달라진 게 없다는 반응이다. 서울교사노동조합이 최근 교사 10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84.1%가 “교사 사망 후 교권 보호 법안이 개정됐음에도 현장 변화가 없다”고 답했다. 56.2%는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를 당할까봐 두렵다”고 했다. 법만 개정됐을 뿐, 예산과 인력 지원 등이 제대로 뒤따르지 못한 탓이다.
교사들의 무력감은 심각해 보인다. 17일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강원 지역 초등학교 6학년 교사는 “아이들이 화상을 입을까봐 요리 수업을 망설이게 된다”고 했다. 세종시 한 초등학교는 학생이 다치면 안 되기에 여름철 물총놀이를 중단하고, 딱딱한 농구공 대신 스펀지 공을 쓴다. 교사는 학생·학부모를 믿지 못한다. 10년차 교사는 아이들이 스마트폰으로 녹음할까봐 말과 행동을 스스로 검열하게 된다고 했다. 민원을 줄이려고 학교 전체가 위축·경직된 셈이다.
교사의 판단이나 중재로 해결되던 학내 폭력 사건은 경찰 수사나 소송으로 비화하기 일쑤다. 교사는 기록과 증거를 남겨야 하므로 서류 작업에만 매달린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다투는 건 늘 있는 일이고,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한 교육 과정이지만, 요즘은 기대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교사 권위는 물론이고 학교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교권 보호를 이유로 학생 인권을 격하한 것은 교육 주체 간 신뢰를 허물고 교육공동체 붕괴를 가속화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학생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우선시되면서 교권은 땅에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이 다수를 점한 서울시의회는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의결했다. 이 조례가 학생의 사생활과 자유를 강조하다 보니 학교에서 휴대폰 사용을 막지 못하고, 교사의 적극적인 지도·훈육이 어려워져 교권을 추락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교에서 학생의 권리를 억누르고 엄하게 가르쳐야 교권이 바로 선다는 주장은 시대착오적이다. 교사와 학생을 편 가르고, 교사·학생 권리가 ‘제로섬’인 걸로 접근해서는 교권도 학생 인권도 바로 설 수 없다.
한국의 민주주의와 경제 성장을 이끈 것은 교사들의 헌신과 훌륭한 공교육 시스템이었다. 교육 주체 간 신뢰를 회복하고 교사들의 사기와 자긍심을 되살려야 한다. 그것이 교육공동체를 복원하고 꽃다운 나이에 숨진 교사의 유지를 받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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