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직업 정치인’…‘고용주’ 국민이 해고할 수 있어 [왜냐면]

한겨레 2024. 7. 17.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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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저녁 서울 숭례문 일대에서 열린 촛불대행진에서 한 참가자가 ‘윤석열, 넌 해고다’라고 적은 대형 깃발을 흔들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송백석 | 정치평론가

영국 총선을 보면서 지도자의 신임을 생각해 본다. 영국 보수당은 2010년 이후 14년 집권 기간 5명의 총리가 국정을 운영했다. 개인당 평균 임기는 2.8년이다. 영국 총리의 임기는 최장 5년에 한 번씩 개최되는 총선에 비례하여 5년이다. 하지만 고정적인 것은 아니다. 리즈 트러스처럼 1개월짜리 총리도 있었고 마거릿 대처, 토니 블레어처럼 10년 넘게 총리직을 역임한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이들 지도자의 임기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신임이다. 하원의 불신임안도 ‘이 하원은 폐하의 정부를 신임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 형식이다. 국가 지도자의 임기는 신임에 근거한다는 것은 영국의 전통적 관습이다. 신임을 잃으면 즉시 내려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단 점유자’라는 비판이 치솟고 사임 압력을 받는다. 그러나 신임이 계속되는 한 재임 기간은 사실상 제한이 없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신임은 이제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 윤석열 정부는 애초에 국정의 방향이 없었는지 모른다. 보수정권이던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와 같은 슬로건조차도 없다. 장기간 계속되는 20~30%대 지지율은 만성적 레임덕이다. 총선으로 새로운 국정 동력을 확보하는 것에도 실패했다. 김건희 여사 문제, 채 상병 사태의 처리 방향은 사회 저변에서 분노의 민심을 촉발시키고 있다.

신임에 따라 사임을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의원내각제만의 전유물인가. 그렇지 않다. 의원내각제이든 대통령 중심제이든 지도자는 국가에 의해 고용된 피고용인이다. 국민에게 신임을 잃고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지도자는 스스로 내려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국민이 해고를 강행하는 수순으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

막스 베버의 통찰대로 자본주의 시장경제 시대의 정치인은 국가와의 고용관계에서 급료를 받아먹고 사는 ‘직업 정치인’이다. 이것은 국왕, 제후 등의 정치권력이 경제가치 창출 수단을 사유화했던 근대 이전 시대와는 차별적인 시대사적 정치 현상이다.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는 국가 고위직 공무 담당자를 직업 정치인으로 선발하는 국가 발주의 용역시장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이라는 용역시장에서 국민투표라는 인증을 통하여 자신의 정치 노동력을 판매하는 데 성공했다. 이 결과 5년 동안 받는 급료를 주된 수입으로 하는 직업 정치인이 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헌법 제4장 제1절에 근거하여 대한민국 국가에 고용된 피고용인이다. 물론 명문화된 고용계약서는 없다는 점에서 일종의 관습적 고용관계라 할 것이다. 대한민국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고로 윤석열 대통령을 고용한 대한민국 국가의 권력을 가진 국민은 피고용인 대통령 윤석열을 해고할 수 있다.

사실 대통령은 의원내각제의 총리보다 국민의 신임에 더 민감하고 그것에 정치적 운명을 걸어야 할 이유가 있다. 총리는 정당 대표로서의 정체성이 강하지만 대통령은 국민이 선택한 리더십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하다.

의원내각제는 정당 중심의 권력 행사 방식이다. 의원내각제는 말 그대로 다수당 의원이 내각을 맡고 내각이 다수당 의원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행정부와 입법부의 권력이 융합된 구조다. 즉 동일 정치세력이 정부와 의회를 주도한다. 의원내각제에서 중요한 것은 정당이다. 총선거는 정부와 의회를 주도하는 정치세력, 즉 정당에 대한 심판이며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의 대표가 총리가 되도록 제도화되었다. 소속 의원과 당원이 뽑는 당 대표가 곧 총리이기 때문에 총리의 선출도 쉽고 사임도 쉽다. 대통령 중심제는 국민이 직선한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 신임을 기초로 작동한다. 이 제도는 삼권분립의 원칙을 모태로 하고 동일 정치세력이 정부와 의회를 주도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대통령 개인의 리더십으로 행정부세력을 구성하여 국정을 운영한다.

국민은 윤석열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고 그의 리더십에 국정 운영을 맡겼다. 대통령에게 행정부를 이끌 안정적인 임기와 행정 관료를 구성할 절대적 권한도 주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지표와 증상은 국민 신임의 회복이 기대난망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대통령제라는 것이 신임 없는 지도자의 임기를 보장하는 구실이 될 수 없다. 조기 국민투표를 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다. 신임 없는 대통령이 막무가내로 나간다면 고용주인 국민은 즉각 해고통지서를 발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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