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마크롱의 도박이 성공한 이유

김광태 2024. 7. 1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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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태 디지털콘텐츠국 부장

미국에서 발생한 대선후보를 겨냥한 암살 시도 총격사건은 충격이었다. 증오정치가 불러온 미국사회의 비극이다. 극한의 갈등은 언제든지 평온한 삶을 삼켜버릴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격 장면이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초현실주의 영화 한편을 보는 듯했다. 피범벅의 트럼프 전 대통령은 주먹을 불끈 쥐고 "싸워라, 싸워라, 싸워라"를 외쳤다. 지지층을 똘똘 뭉치게 하고 중도층도 겨냥한 메시지였다. 생과 사 갈림길 그 와중에도 주눅들지 않는 검객의 모습이었다. 과연 트럼프 다웠다. 이 '세기의 장면' 하나로 백악관의 문이 활짝 열렸다는 소리가 들린다. 세계는 진영간 극한 대립으로 곳곳이 타오르고 있다.

유럽으로 눈을 돌려보면 프랑스도 극단의 증오정치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전격적으로 실시된 총선은 흥미로웠다. 누구도 예측 못한 대반전 드라마였다. 극우세상의 도래는 '일단 멈춤' 모드로 들어갔다.

프랑스 총선에서 그들 특유의 '공화국 전선'이 유감없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화국 전선'이란 극우 세력의 집권 저지라는 목표 아래 이념을 초월해 정치 세력이 하나로 연대하는 현상을 말한다. 한때 나치 치하의 치욕적인 역사를 경험한 프랑스에게 '공화국 전선'은 프랑스만의 독특한 연대의식을 일깨웠다.

임기가 3년이나 남은 마크롱 대통령이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이라는 극약처방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실마리는 프랑스 조기 총선에 앞서 마무리된 유럽연합(EU) 의회 선거에 있다.

유럽 의회 선거는 극우진영이 휩쓸었다. 특히 프랑스에 할당된 81석의 EU 의석 중 극우세력 마리 르펜이 이끄는 국민연합(RN)이 30석을 가져갔다. 반면 마크롱 대통령의 르네상스(RE)는 겨우 13석을 얻었다. 충격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차기 2027년 프랑스 대선을 극우정당에게 고스란히 갖다 바칠 판이었다.

결과만을 놓고 본다면 마크롱 대통령의 위험천만한 도박이 적중했다. 2024 파리올림픽을 2주가량 앞두고 치러진 프랑스 조기총선에 대한 여당의 우려는 컸다. 자살골 아니냐는 비아냥과 조소가 쏟아졌다.

그러나 투표함 뚜껑을 열어보니 기적적인 결과가 나왔다. 지지율 1위를 달리던 극우 국민연합은 3위로 내려앉았고 대신 2위에 머물러 있던 좌파연합 신민중전선(NFP)이 깜짝 1위에 올라섰다. 위기의 범여권은 2위로 기사회생했다. 마크롱은 '폭망'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반쪽짜리 승리'를 거뒀다.

극적 반전의 배경엔 '공화국 전선'이 있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일찍이 이걸 계산해뒀나 보다. 공화국 전선은 2002년 대선에서 마린 르펜 현 RN 의원의 부친이자 원조 극우의 상징인 장마리 르펜 후보가 연임에 도전한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의 결선에서 제대로 위력을 발휘했다.

또 2017년 마크롱 대통령과 마린 르펜 후보가 결선에서 맞붙었을 때, 2022년 대선에서 두 사람이 재대결을 펼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마크롱 대통령이 너무 밉상이지만 그래도 극우세력에게는 표를 주지 않겠다는 심리가 작동한 탓이다.

프랑스 정치제도는 우리와 사뭇 다르다. 대통령이 정부 운영을 맡을 총리를 임명하고, 총리는 함께 일할 장관들을 골라 내각을 꾸린다. 이원집정제 형태다. 이제 제1당은 극우당이 아닌 좌파연합이 거머쥐었지만 차기 총리자리를 놓고 지리멸렬한 상태다. 경우에 따라 마크롱은 자기 입맛에 맞는 인물을 총리에 지명할 수도 있는 가능성까지 생겼다. 그래서 "상습적 도박꾼 마크롱이 계속 (게임) 플레이를 할 기회를 얻었다"(리오넬 로랑 블룸버그 칼럼니스트)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똘레랑스의 위기'라고 하지만 프랑스는 극한대립으로 치닫기 전 크든 작든 출구를 찾았다. 극우파 1당 등극 저지도 그 산물이다. 반면 현재 우리의 정치를 보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팬덤화한 극단의 정치만 있는 것 같다. 한없는 대결국면과 편 가르기를 지속한다면 우리의 일상은 내재된 공포 속에 사는 것 과 다름 아니다. kt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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