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리 특례대출이 '9억 키 맞춤' 부추겨···아파트 쏠림도 심화

신미진 기자 2024. 7. 17.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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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텝꼬인 부동산정책
<2> 매수심리 자극하는 정책금융
2030 대출자금 여력 커지자
노도강보다 마용성·송파 주목
7억 아파트 올 1억 이상 뛰어
매물도 줄어들어 불안감 자극
"정부가 집값 개입·교란 우려"
[서울경제]

저리 대출을 등에 업고 부동산 큰손으로 떠오른 20~30대가 주택 매수에 나서자 서울 일부 지역 중소형 아파트가 속속 9억 원에 ‘키 맞춤’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신생아 특례대출 등 정책금융이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원인이 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17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1~5월 서울 아파트를 매수한 20~30대 중 동대문구 아파트를 사들인 비중은 5.1%로 2020년 1~5월(4.6%)보다 상승했다. 같은 기간 영등포구(4.9%→5.6%)와 강동구(4.6%→5.3%)의 20~30대 매수자 비중도 늘었다. 이는 신생아 특례대출이 가능한 9억 원 아파트가 많은 데 따른 효과로 풀이된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동대문구와 영등포·강동구의 9억 원 이하 아파트 비중은 각각 50%대, 20%대다. 이처럼 젊은 층 매수 증가 폭이 높은 지역은 집값 상승률도 높았다. 올해 1월 첫째 주 대비 7월 첫째 주 영등포구의 아파트 값은 1.43% 올라 서울 평균(0.9%)을 웃돌았다. 강동구(0.85%)와 동대문구(0.73%)도 집값이 상승했다.

반면 노원구는 20~30대의 매수 비중이 12.5%에서 7.3%로 감소했고 도봉구도 5.4%에서 2.6%로 낮아졌다.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 지역의 9억 원 이하 아파트 비중은 약 80%에 달하지만 20~30대 매수세가 꺾이면서 아파트 값도 제자리걸음이다.

이는 신축 선호 현상과 함께 신생아 특례대출 등을 활용해 상대적으로 집값이 높은 지역으로 젊은 층의 매매 수요가 쏠린 데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신생아 특례대출은 2년 이내 출산·입양한 가구에 최저 1%대 금리로 최대 5억 원까지 대출해주는 제도로 올 1월 말부터 시행됐다. 매수 가능 주택 금액은 9억 원 이하다. 보금자리론(6억 원) 등 기존 정부 정책대출보다 담보 주택 금액이 높고 소득 기준도 부부 합산 연 1억 3000만 원으로 완화된 게 특징이다. 올 3분기부터는 소득 기준이 2억 원으로 상향 조정된다.

정책대출을 받기 위해 9억 원 이하 아파트로의 쏠림 현상이 심화하면서 가격을 밀어올리는 ‘키 맞추기’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중 시세가 9억 원 이하인 비중은 올해 초 42%에서 지난달 말 41%로 낮아졌다. 은평구는 56.7%에서 54.1%로, 동대문구는 54.7%에서 53.0%로 비중이 작아졌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이들 지역의 지난달 전용면적 84㎡ 기준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8억 원 후반~9억 원 초반대다. 은평구 ‘e편한세상백련산’ 전용 84㎡는 올 3월 7억 4000만 원에서 지난달 8억 7500만 원으로 뛰었다. 동대문구 ‘전농SK1차’ 전용 84㎡도 올해 초 8억 2000만 원에서 이달 8억 7000만 원으로 9억 원에 근접했다. 마포구 상암동의 A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올해 초 상암월드컵파크2단지 20평형대 시세가 8억 원 후반대에 형성돼 ‘신생아 특례대출’을 받을 수 있는 아파트로 각종 부동산 커뮤니티에서 입소문이 났고 실제 거래가 다수 이뤄지며 현재는 호가가 11억 원”이라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특례보금자리론 일반형과 신생아 특례대출 등 정책대출은 6억 원과 9억 원 등으로 집값을 표준화시키고 이에 호가가 가까운 아파트로의 매수 쏠림 현상을 동반하며 가격을 끌어올리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며 “결국에는 정부가 집값에 개입하는 시장 교란 결과를 양산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정책대출이 아파트 쏠림 현상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세사기 등 여파에 가뜩이나 빌라 등 비(非)아파트 포비아가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아파트를 선호하는 30대 출산 가구에 저리 대출 혜택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 5월 전국 주택 매매 거래량 5만 7436건 중 아파트 비중은 약 75%(4만 3278건)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달(73%)보다 약 2%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서울 아파트 매매 매물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이날 서울 아파트 매물은 8만 1167건으로 올 2월 17일(7만 7627건)보다 약 4.5%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공급 부족 상황 속 낮은 금리인 정책대출이 시행되고 있는 만큼 아파트 값 상승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또 다른 부동산 전문가는 “9억 원 이하 아파트를 매도한 수요층이 강남 3구 등 상급지로 갈아타기를 시도하면서 정책금융 나비효과는 9억 원 이하 아파트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미진 기자 mjsh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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