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영우칼럼] 아기걸음만큼도 못 내딛는다면

노영우 전문기자(rhoyw@mk.co.kr) 2024. 7. 17.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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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예측과 경제 예측의 공통점은? 전망이 자주 틀린다는 것.

그럼 차이점은? 날씨를 예측하는 기상학자는 현재 날씨는 알지만 경제학자는 현재 경제가 어떤 상태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경제학자의 무능함을 얘기하기보다는 경제 예측이 그만큼 힘들다는 것을 얘기할 때 인용되는 유머다.

대내외 경제가 요동치는데 경제정책의 중요한 축인 통화정책이 아기 걸음만큼도 내딛지 못한다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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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금리 크게 움직이고
환율·성장률 요동쳐도
기준금리 최장기간 동결
선제적 통화정책 아쉽다

날씨 예측과 경제 예측의 공통점은? 전망이 자주 틀린다는 것. 그럼 차이점은? 날씨를 예측하는 기상학자는 현재 날씨는 알지만 경제학자는 현재 경제가 어떤 상태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경제학자의 무능함을 얘기하기보다는 경제 예측이 그만큼 힘들다는 것을 얘기할 때 인용되는 유머다.

경제 예측이 가장 필요한 곳 중 하나가 기준금리를 조절하는 통화정책이다. 현재도 알기 힘든데 미래를 예측하고 거기에 맞춰 기준금리를 올리고 내려야 하니 무척 어려운 일임은 분명하다. 과거 이성태 전 한국은행 총재는 통화정책을 큰 배를 운항하는 것에 비유했다. 작은 차를 운전할 때는 길을 확인하고 핸들을 틀어도 되지만 큰 배를 운항할 때는 항로를 확인한 후 키를 틀면 너무 늦어 항로를 이탈한다. 그래서 가야 할 길을 예측하고 미리 키를 움직여야 항로를 이탈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현재 경제 상태도 제대로 모르는 중앙은행이 키를 자신 있게 틀 수 있을까. 그래서 만든 것이 '아기 걸음마(baby step)'라는 개념이다. 한꺼번에 키를 너무 많이 돌리면 잘못된 방향으로 갔을 때 돌아오기 어렵다. 이 때문에 통화정책도 처음엔 아기 걸음 정도 내딛고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한 다음 또 아기 걸음만큼 내딛고 확인해 나가는 방식이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아기 걸음의 보폭은 0.25%포인트가 적당하다고 했다. 이 정도씩 금리를 조절하면 설사 예측이 틀렸더라도 경제 충격을 줄이고 방향을 고칠 수 있다고 봤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통화당국은 아기 걸음만큼도 발을 떼지 않는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2023년 1월부터 2024년 7월까지 19개월 동안 기준금리를 연 3.5%로 동결했다. 통화정책 역사상 가장 오래 금리를 움직이지 않은 기록이다. 연 3.5%의 금리가 우리 경제에 가장 맞는 금리라는 판단을 2년 가까이 했을 수도 있고 사방이 지뢰밭이어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측면도 있을 것 같다. 미국 연준을 따라 걷다가 연준이 2023년 7월부터 기준금리를 동결한 것도 이유 중 하나다.

경제는 시간이 지나면 윤곽을 드러낸다. 금통위가 금리를 동결한 기간 우리 경제는 어떻게 움직였을까. 먼저 시장금리는 비교적 큰 폭으로 움직였다. 단기 금리 기준인 3개월 만기 기업어음(CP) 금리는 금리 동결 기간 연 4.01%에서 연 4.96%까지 오르내렸다. 움직인 폭이 베이비스텝(0.25%)의 4배에 가깝다. 장기 금리인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도 연 3.148%에서 연 4.392%까지 움직여 진폭이 1.2%포인트가 넘었다.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조정하면 단기 금리, 장기 금리 순으로 움직여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일반적인 경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기준금리와 시장금리가 따로 놀았다. 금통위가 선제적인 기준금리 조절을 통해 시장을 이끌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항해사가 키를 움직이지 않으니 배에 탄 사람들이 방향성 없이 제각각 노를 저어 배를 이리저리 움직여가는 것과 같은 상황이 연출됐다.

거시경제 지표의 변동성도 작지 않았다. 기준금리 동결 기간 달러당 원화 환율은 1220원에서 1394원까지 174원이나 오르내렸다. 분기 경제 성장률(전년 동기 대비)도 1.1%에서 3.3%까지 움직였다. 실제 성장률이 잠재 성장률(2% 내외)보다 크게 낮아도, 잠재 성장률을 훨씬 웃돌아도 기준금리는 요지부동이다. 대내외 경제가 요동치는데 경제정책의 중요한 축인 통화정책이 아기 걸음만큼도 내딛지 못한다면 문제다. 무엇보다 이렇게 오랜 기간 한 걸음도 걷지 않으면 어느 순간 걷는 방법까지 잊어버릴까봐 걱정된다.

[노영우 국제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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